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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가족이 성당에 가는 줄 알았지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5

by 이정미

- 난 학교 숙제를 한 적이 없어. 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할 만한 장소가 없었거든.


스트레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어린 스트레이의 집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어른들이 돌보지 않는 집. 보금자리가 아니라 쓰레기장에 훨씬 가까웠을 것이다. 스트레이를 위한 책상이 있었을 것 같지도 않다. 때로는 연필과 지우개조차 없었을지 모른다.


스트레이가 집을 싫어한 것도 당연했다. 원래 밖에서 노는 것을 좋아하기도 했기 때문에 더욱 집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매일 놀러 나갔고, 많은 시간을 친구들의 집에서 보냈다. 집에 케이블 TV가 없었기 때문에 친구들의 집에서 봤다. 포켓몬스터, 바이오하자드, 젤다의 전설처럼 당시에 유명했던 게임도 모두 친구들의 집에서 했고 특히 젤다의 전설 – 시간의 오카리나를 이후로도 오랫동안 좋아했다.


스트레이는 자주 친구들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잤다. 스트레이가 살던 동네는 슬럼가 중에서 멕시코계 인구가 많은 곳이었다. 그곳 사람들은 아주 가난했지만, 히스패닉들이 흔히 그렇듯 손님을 잘 대접하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여겼다. 스트레이처럼 어린 손님이라도 마찬가지였다. 또 그곳 사람들은 히스패닉들이 흔히 그렇듯 아이를 많이 낳았다. 그래서 그 틈에 스트레이 한 명이 더 끼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었다. 집집마다 아이가 너무 많아서, 그 정도면 아이들에게 이름이 아니라 번호를 붙여야지 싶을 정도라고 한다.


스트레이는 한 친구의 할머니를 아직도 기억한다. 그 할머니는 스트레이를 볼 때마다 식사를 했는지 물었고, 스트레이가 안 했다고 대답하면 왜 끼니를 거르느냐고 나무라면서 요리를 해 줬다. 하지만 그것은 히스패닉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할머니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와 스트레이의 공통된 친구 중에는 미국 중서부의 백인 동네에서 자란 백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의 할머니도 비슷했다고 한다. 어릴 때 한 남자아이와 놀고 있었는데 할머니가 그 아이에게 왜 그렇게 말랐느냐고, 엄마가 먹을 걸 안 주느냐고 물으며 요리를 해 줬다는 것이다. 미국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듣는다. 전 세계의 많은 할머니들이 가진 공통점 같아서 재미있다.


어릴 때 친구들의 집에서 멕시코 음식을 많이 얻어먹었기 때문인지 스트레이의 입맛은 확실히 멕시코계다. 대부분의 음식에 핫소스를 뿌려 먹는다. 타코에 토마토와 양상추를 넣는 것은 미국식이고, 양파와 고수를 넣어야 진짜 멕시코식 타코라는 사실을 나는 스트레이에게 처음 배웠다. 어른이 된 후 스트레이가 잘 가던 타코 가게에서는 스트레이가 아무리 토마토와 양상추를 빼 달라고 해도 한동안 자꾸 넣어서 줬다. 백인처럼 생겼고 주문도 영어로 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에게 요리를 해 주던 그 할머니는 아마 스페인어로 묻고 스페인어로 나무랐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친구가 스트레이를 위해 통역을 해 줬을 것이다. 친구들의 가족 중 절반은 영어를 할 줄 모르고 스페인어만 했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스페인어를 엄청나게 빨리 말했고 그 중에서도 조부모들이 가장 심했다. 스트레이의 멕시코계 친구들은 대부분 영어뿐만이 아니라 스페인어도 유창하게 했지만, 스트레이는 친구들의 집에서 따발총같이 빠른 스페인어를 듣는 것만으로는 스페인어를 제대로 배울 수 없었다. 그저 대충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눈치로 알아듣는 정도였다.


그곳의 멕시코계 사람들은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일요일에는 항상 온 가족이 성당에 갔다. 외할머니는 스트레이가 아기 때 세례를 받게 했지만 그 후로 성당에 데려간 적은 없었고, 스트레이와 종교의 인연은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부모는 일요일에도 대체로 집에 없었다.


종교가 무엇인지 잘 몰랐던 어린 스트레이는 이 세상의 모든 가족이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는 줄 알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제대로 된 가족이 있었다면 자신도 일요일마다 가족과 함께 성당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스트레이는 모든 종교를 싫어하는 확고한 무신론자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하지만 금방 슬퍼지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스트레이는 남들이 가진 ‘제대로 된 가족’이 자신에게는 없다고 어린 나이에 이미 인식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가족도 스트레이의 가족처럼 매우 가난했고, 그래서 구성원 중에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공통점은 그것뿐이었다. 친구들의 가족에는 스트레이의 가족에 없는 사랑과 유대가 있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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