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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아이’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4

by 이정미

스트레이는 항상 책을 좋아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릴 때 읽는 동화책은 별로 접해 보지 못했다.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스트레이는 백설공주가 사과를 먹고 잠에 빠졌다는 이야기도, 인어공주가 목소리를 잃었다는 이야기도 전혀 모른다. 신데렐라가 열두 시 전에 돌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만 대충 안다.


- 어릴 때부터 책 좋아했다면서. 이런 기본적인 책들은 안 읽은 거야? 하하.

- 디즈니 공주들에 내가 왜 관심이 있었겠어?

- 디즈니 만화영화에만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야. 어린애들이 잠들기 전에 읽어주는 아주 유명한 동화들인걸.

- 잠들기 전에 동화책을 읽어준다고? 그거, 영화에나 나오는 장면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하는 행동이야?


스트레이는 농담도 진담처럼 차분하게 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 질문도 정말로 몰라서 물어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런 보살핌과는 아주 거리가 먼 환경에서 자랐음을 나타내는 농담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둘 중 어느 쪽이든 나는 스트레이를 놀린 것을 후회했다.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가장 어린 시절부터 스트레이에게는 우울증과 불면증이 있었다. 새벽까지 잠이 오지 않아서 이리저리 뒤척이는 것이 일상이었다. 잠이 들어도 중간에 여러 번 깨거나, 일찍 깨서 다시 잠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아마도 우울증과 불면증의 중요한 원인이었을 부모는 스트레이가 왜 잠을 잘 못 자는지 결코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는 가끔씩만 아침에 스트레이를 깨워서 학교에 보냈다. 대부분은 스트레이가 혼자 일어나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갔다. 부모는 버스 요금을 주지 않았다. 스트레이가 버스를 탈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저소득층에게 식품 구매권인 푸드 스탬프를 나눠준 덕분이었다. 푸드 스탬프의 액면가보다 싼 식료품을 사면 잔돈을 거슬러 받을 수 있었고 그 돈으로 버스를 탔다. 스트레이가 주로 산 것은 한 팩에 15센트, 물에 녹이면 음료수가 되는 쿨에이드Kool-Aid 가루였다. 지금은 종이로 된 푸드 스탬프가 아니라 체크카드와 비슷한 EBT(Electric Benefit Transfer) 카드를 지급하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쓸 수 없다.


물론 정말로 먹을 것이 필요할 때도 푸드 스탬프를 썼다. 푸드 스탬프를 받아주는 가게에서는 대개 질 낮은 음식밖에 살 수 없었다. 피자에 올라가는 소시지도 자주 먹었는데, 정육점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집에 들어올 때마다 항상 가져왔기 때문이다. 이제 스트레이는 피자 소시지가 지겨워서 먹지 않는다.


스트레이는 학교에 대해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한 양면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머리가 좋고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성적은 항상 높았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나중에 고등학교를 자퇴할 때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항상 우수반honors class에 있었다. 그러나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트레이는 자신이 걸핏하면 다른 아이들과 싸우는 ‘나쁜 아이’였다고 기억한다. 3학년 때 가난하다는 이유로 놀림을 많이 당했는데, 아버지가 때릴 때 가만히 맞고만 있지 않았듯 아이들이 놀릴 때에도 가만히 참고만 있지는 않았다. 스트레이는 자신에게 못되게 군 아이들을 모두 때려눕혔다. 4학년이 됐을 때 아이들은 겁이 나서 더 이상 스트레이를 놀리지 못하게 됐다.


스트레이가 싸움이나 결석을 해서 학교 측이 부모에게 연락을 해도, 부모는 단 한 번도 학교에 오지 않았다. 외출금지는 미국에서 부모가 아이를 훈육하는 가장 흔한 방법인데 스트레이는 평생 동안 한 번도 외출금지를 당해 본 적이 없다. 부모가 집에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하다못해 스트레이에게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를 정리해야 한다고 가르쳐 준 적도 없다. 스트레이는 나이가 든 후 소년원에서 처음으로 침대를 정리하는 습관을 들였다. 부모가 제때 이발소에 데려가지도 않았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5학년쯤부터 자신의 머리를 직접 자르기 시작했다.


옷이나 신발이 작아졌을 때 부모가 새것을 사주는 일도 많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는 스트레이가 빈 배낭을 메고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신발을 훔쳐서는 배낭에 넣고 나왔다. 붙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사실은 위험한 행위였다. 열 살 때쯤 스트레이는 어른 두 명이 경찰과 차량 추격전을 벌이다가 죽는 현장을 목격했다. 아이들의 교복을 살 돈이 없어서 훔쳤다가 들킨 일이 원인이었다.


시카고에 사는 남자아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마이클 조던을 좋아해야 했다고 스트레이는 농담을 했다. 어릴 때 스트레이는 나이키 조던을 항상 가지고 싶어 했지만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한다. 살 돈이 없었던 것은 당연하고, 훔칠 수도 없었던 모양이다.


어른이 된 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몇 년간, 스트레이는 제대로 돈을 주고 조던을 여러 번 샀다. 그리고 한동안 신고 다니다가 낡기 전에 모두 기부했다. 자신이 기부한 신발을 누가 신을지는 알 수 없지만, 어쩌면 누군가가 깔끔한 조던을 신게 되어 기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렇게 했다고 한다. 싸움과 좀도둑질로 스스로를 지킬 수밖에 없었던 나쁜 아이는, 그 시절의 자신처럼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베풀 줄 아는 어른으로 자라났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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