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보다 잘해 준 갱단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6

by 이정미

시카고에는 스트레이가 자란 곳과 같은 멕시코계 슬럼가가 많다. 멕시코계 슬럼가는 다른 슬럼가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아이가 많고 손님에게 친절한 대가족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다만 서로 경쟁하는 갱단들이 있는 경우는 예외다. 스트레이의 동네에서는 서로 경쟁하는 두 갱단의 구역이 기찻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붙어 있었고, 그래서 그다지 안전하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멕시코인들이 대부분 독실한 카톨릭 신자이기 때문에, 멕시코계 슬럼가에서는 갱들도 모두 독실한 카톨릭 신자라는 것이다. 평일에는 다른 갱들이 저지르는 범죄를 전부 똑같이 저지르고 일요일에는 성당에 가서 고해성사를 한다.


미국의 슬럼가에서 갱은 일상의 일부라고 한다. 가족 중 한 명 이상이 갱단에 속한 경우가 흔하다. 갱단에는 어린아이들도 있고 여자들도 있다. 아마 다들 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먹이나 칼을 쓸 줄 아는 남자 어른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모양이다. 미국의 유명한 여성 래퍼 카디비가 열여섯 살 때 갱단에 있었다가 그 후에는 수퍼마켓 점원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런 배경을 몰랐다면 나는 아마 많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다만 그 중 대부분은 영화에 나오는 대단한 갱단과는 거리가 멀다. 언젠가 스트레이와 영화 <디파티드>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영화 속의 갱이 스트레이의 동네에 있던 갱과 비슷한지 묻자 스트레이는 전혀 아니라고, 그 영화에 나온 것은 체계적인 범죄조직organized crime이고 자신의 동네에 있던 것은 길거리 갱street gang이라고 말했다. 후자가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동네에서 마약을 팔고 경쟁 상대인 다른 갱단을 총으로 쏘는 것이다. 아마 예외적인 경우겠지만, 2020년 인종차별 반대 시위 초기에 약탈이 기승을 부렸을 때 시카고에서는 갱들이 나서서 약탈을 막고 가게들을 보호하기도 했다. 갱인 동시에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카디비처럼 래퍼가 되는 갱도 적지 않고, 스트레이의 동네에서도 여러 래퍼들이 나왔다. 누구나 집에서 음악을 만들고 스마트폰으로 뮤직비디오를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시대가 되고 나서는 래퍼가 되는 갱이 더욱 많아졌다. 그 중에는 중고등학생 정도의 어린아이가 적지 않다. 자신의 갱단을 과시하고 라이벌 갱단을 조롱하는 랩을 하는데, 목소리를 들어보면 아직 변성기조차 끝나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신만큼 어린 친구들과 함께 총과 마약을 자랑하는 뮤직비디오를 찍는다. 스트레이와 같은 동네 출신인 래퍼 중에는 그러다 만 열일곱 살에 라이벌 갱에게 살해당한 엘에이 카포네L’A capone, 마찬가지로 열일곱 살에 라이벌 갱을 살해해서 39년 형을 선고받은 론도넘바나인RondoNumbaNine이 있다.


스트레이가 처음으로 갱에 연루된 것은 만 일곱 살 때였다. 갱단에 들어갔다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갱단에 속한 친구들과 어울리다가 그 친구들이 하는 일을 가끔씩 같이 했다고 말하면 가장 정확할 것이다. 스트레이 다음으로 어린 ‘친구’가 스트레이보다 다섯 살이 많았다고 하니, 한국식으로 말한다면 동네 형들이었다.


스트레이가 마리화나를 처음 피운 것도 그 즈음이었다. 술보다도 1년 먼저 배웠다. ‘동네 형’들이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인 스트레이에게 재미로 마리화나와 술을 권하고, 취한 스트레이를 보면서 웃는 광경을 나는 머릿속에 그려 본다.


어린아이들은 갱단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스트레이에게 묻자, 기본적으로 어른과 똑같은 일을 한다고 대답했다. 갱단의 입장에서 보면 어른만큼 신뢰할 수 있는 일원은 아니지만, 외부에서 어른보다 의심을 덜 받기 때문에 편리한 점도 있다고 한다. 여자들은 갱단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물어봤다. 대부분은 앞에 나서기보다 뒤에서 돕지만, 웬만한 남자보다 무서운 여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여자를 보스로 둔 갱단들도 있다.


스트레이도 마약을 몇 번 운반해 봤다. 큰돈을 벌지는 못했다. 총을 다루는 법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쏴 볼 기회가 두 번 정도 있었다. 흔한 권총인 글록이었다. 스트레이보다 나이가 많은 갱단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 공터에서 멈춤 표지판을 향해 쐈다. 스트레이가 사람을 향해 총을 쏜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이 스트레이를 향해 총을 쏜 적은 있다. 갱단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 라이벌 갱단이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총을 난사했다. 스트레이가 맞지는 않았다.


그 외에 대단한 사건은 없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가 갱단 친구들과 함께 한 일은 대부분 그저 어울려 놀고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이었다. 갱단 사람들 전부가 스트레이를 그저 동생처럼 대해 줬다.


- 갱단이 네 부모님보다 더 네게 잘해준 거 아니야?

- 훨씬 더 잘해줬지.


스트레이가 본 바로는 갱단의 어린아이들은 대개 돌보는 사람이 없는 문제 가정에서 온다. 그리고 갱들은 어린 구성원을 친동생처럼 대한다. 달리 의지할 곳이 없는 아이들은 갱단에 철저히 충성하게 되고, 많은 경우 갱단에 점점 더 깊이 들어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된다.


다행히 스트레이는 그 길로 가지 않았다. 열한 살 때 스트레이는 갱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면 제 명에 죽지 못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자기 자신까지 포함해서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이 교도소에 있거나, 아니면 죽었거나. 그것이 갱의 삶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스트레이는 갱단에서 발을 빼기 위해 갱 친구들과 점점 적게 어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 갱단에 들어간 사람은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나이가 많이 어렸기 때문에 보복을 당하지 않고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갱 친구들과는 여전히 가끔씩 만나서 놀았지만 갱과 관련된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갱단의 입장에서도 열한 살짜리 막내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었던 모양이다.


어릴 때의 습관이 남아서 스트레이는 20대 초반까지도 사진을 찍을 때 가끔 갱 사인을 만들었다. 양손의 특정한 손가락을 펴거나 굽혀서 정해진 모양을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속하거나 지지하는 갱단을 나타내는 것이다. 스트레이의 갱 사인이 정확히 어떤 모양이었는지 여기서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갱 사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저 조금 특이한 포즈를 취한다고 생각하고 넘어갈 만한 모양이었다. 갱단에 따라서는 어떻게 손으로 저런 모양을 만들 생각을 했나 싶을 만큼 복잡한 사인도 있다. 호기심이 생겨서 스트레이의 사인을 검색해 봤는데 아무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인터넷에 나올 만큼 큰 갱단이 아니거나, 지금은 없어졌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다만 갱단이 많은 시카고에서 장난으로라도 손으로 갱 사인을 만드는 것은 사실 아주 무모한 행동이라고 한다. 한 갱단의 구역에서 다른 갱단 소속임을 드러냈다가는 곧바로 총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각 갱단마다 자신을 상징하는 색이 있는데, 스트레이가 어릴 때는 한 갱단의 구역에서 다른 갱단을 상징하는 색의 옷을 입는 것도 위험했다고 한다.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


지금 스트레이는 갱 친구들의 소식을 거의 모른다. 자신을 갱과 처음으로 연결해 준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형이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안다. 2022년에 한 친구가 인생에서 두 번째로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병원에서 연락한 적이 있다. 나머지는 전부 죽거나 교도소에 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