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7
영어권에서는 만 열세 살부터 나이 뒤에 ‘틴teen’이 붙어 틴에이저가 된다. 갓 틴에이저가 된 시기를 전후로 스트레이에게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났다. 그 중 어떤 사건들은 스트레이가 점점 더 전형적인 슬럼가의 삶을 살도록 만들었다. 반면 어떤 사건들은 스트레이가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인생의 조용한 전환점이 되었다.
슬럼가에서 열세 살은 이미 어린 나이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가 살던 지역에서는 만 열두 살인 7학년과 열세 살인 8학년이 중학교에 해당했는데, 군대 모병관이 미래의 신병들을 모집하러 중학교까지 찾아왔다. 가난한 동네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학교에 온 모병관들은 아이들에게 일대일로 접근했다. 모병관들이 슬럼가 아이를 꼬드기는 수법은 항상 비슷했다. 너, 나이에 비해서 참 어른스럽구나. 군대에 가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부모님은 아시니? 저런,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힘들었겠는걸.
모병관들은 스트레이에게도 여러 번 말을 걸었다. 스트레이는 실제로 나이에 비해 어른스러웠다. 부모와 한 집에서 살았지만 부모 없이 자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모병관들이 하는 말이 의미 없는 사탕발림인 것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스트레이는 모병관들을 상대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모병제이지만 군대의 규모가 크기 때문에 군인이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군인이 힘들고 위험한 직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돈이 필요해서 지원할, 또는 거기까지 생각해 보지도 않고 무작정 지원할 가난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한다. 군대의 가장 큰 혜택은 대학교 등록금을 내 주는 것이다. 미국의 대학교 등록금은 매우 비싸기 때문에, 대학교에 가고 싶지만 그럴 형편이 되지 않는 아이들이 군대에 많이 지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나름대로 실리적인 생각으로 입대해도 삶이 쉽게 나아지지는 않는다. 게다가 운이 나쁘면 전투원으로 파병되어 몸과 마음을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을 수도 있다.
스트레이가 운전을 배운 것도 열세 살 즈음이었다. 친구들 중 나이가 많은 몇 명이 차를 가지고 있었고, 그 친구들이 가르쳐 줬다. 미국에서는 고등학생들도 흔히 자기 차를 몰고 다닌다. 스트레이처럼 어릴 때 주변 사람들에게 운전을 배우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스트레이는 운전에 항상 자신이 있었고, 법적으로 면허를 딸 수 있는 나이가 되자마자 면허도 쉽게 땄다. 운전을 일찍 배웠고 잘 한 것은 몇 년 후 어린 나이에 자립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콘서트에 간 것도 열세 살 때였다. 펑크 밴드 랜시드Rancid와 타이거 아미Tiger Army의 공연이었다. 스트레이는 항상 펑크와 힙합을 좋아했다. 펑크를 좋아하는 다른 십대들처럼 머리를 어두운 파란색으로 물들인 적도 있었다. 힙합 중에서는 우탱클랜Wu-Tang Clan 같은 90년대 힙합을 많이 들었고, 지금도 많이 듣는다. 가난, 마약, 갱에 대한 미국 힙합의 가사는 스트레이에게는 모두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었을 것이다.
부모는 용돈은 고사하고 학교에 갈 차비도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콘서트 입장권도 용돈으로 산 것은 아니었다. 열세 살은 아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었다. 돈은 약을 팔아서 벌었다. 주로 히드로코돈처럼 마약 성분이 있는 진통제였다. 스트레이는 열한 살 때부터 갱단과 거리를 뒀지만, 어린 갱들과 여전히 친구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 친구들이 약을 공급해 줬다.
한 번은 비싸고 품질이 좋은 히드로코돈이 스트레이의 손에 들어왔다. 약을 좋아하는 아버지에게 팔아 보려고 했는데, 약이든 술이든 무조건 싼 것만 찾던 아버지는 히드로코돈의 가격을 듣고는 스트레이에게 꺼지라고 했다. 어머니에게는 약을 판다는 사실을 숨겼다. 혼날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자신에게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 어머니가 빼앗아 가서 혼자 써 버릴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는 부모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일찍 배웠다.
중학교에서 스트레이는 여전히 우수반에 있었다. 책을 읽는 것도 여전히 좋아했다. 우수반 수업에서는 책을 아주 많이 읽어야 했다. 대부분은 소설이었다. 스트레이는 그 중 <기억 전달자The Giver>를 특히 좋아했다. 지금도 한 권 사서 다시 읽고 싶지만 자꾸 미루게 된다고 한다.
한국에서 자란 내게는 항상 낯선 부분인데, 미국 학교에서는 공부를 잘 하면 공부벌레라고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흔하다고 한다. 슬럼가에서는 더욱 그렇다. 스트레이는 우수반에서 한 번도 괴롭힘을 당하지 않은 유일한 아이였다. 싸움도 잘 했고 쉽게 화를 내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오히려 두려워했다. 스트레이는 항상 무언가에 화가 나 있었다. 아마 우울증이 가장 큰 원인이었을 것이다. 성인기 우울증과 구분되는 소아우울증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우울함이 분노와 과격한 행동이라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스트레이는 전형적인 우수반 학생은 아니었다. 결석이 잦았고, 숙제도 하지 않았고, 따로 공부도 하지 않았다. 정학도 여러 번 당했다. 스트레이가 우수반에서 쫓겨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시험 성적이 항상 좋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의 말로는, 자신이 다닌 형편없는 학교의 기준에서 볼 때 너무 좋은 성적이었다.
심지어 8학년 때 마리화나 때문에 퇴학을 당한 후에도 시험 성적이 스트레이를 구해 줬다.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 쫓겨난 스트레이는 불량학생들이 다니는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다. 원래 다니던 학교도 특별히 좋은 곳은 아니었지만 새 학교는 훨씬 열악했다. 그곳에 반 학기 정도 다닌 후 첫 시험을 봤을 때 성적이 너무 좋아서 교사들이 놀랐다. 교사들은 청원을 내서 스트레이를 더 제대로 된 학교로 보냈다. 퇴학과 전학이 나중에 특별히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에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진학했다.
이 이야기를 생각할 때면 항상 재미있다. 도대체 어떤 학교였기에 시험 성적이 너무 좋다는 이유로 학생을 전학 보냈을까. 스트레이와 관계없는 다른 미국인에게 들은 이야기인데, 이 미국인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화장실에서 교사 세 명과 함께 마약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아무리 미국이라고 해도, 심지어 슬럼가에서도 흔한 일은 아니다. 스트레이가 전학을 갔던 학교도 아마 그 정도이지 않았을까 싶다.
담배는 만 열네 살 때쯤, 8학년에서 9학년 사이에 피우기 시작했다. 일곱 살 때 마리화나를, 여덟 살 때 술을 배운 것에 비하면 한참 나중이었다. 다른 슬럼가 아이들과 비교해도 담배는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슬럼가에는 아이들에게 푼돈을 받고 기꺼이 술이나 담배를 사다 주는 어른들이 항상 있다고 한다. 아이들은 가게 주변에서, 그러나 가게 점원이 내다볼 수 없는 위치에서 무리를 지어 어슬렁거린다. 그러다가 심부름을 해 줄 것 같은 어른이 눈에 띄면 제안을 한다.
열네 살 때는 직접 문신도 했다. 워크맨에서 떼어낸 모터로 타투 건을 만들어, 오른팔 안쪽에 항해의 별nautical star을 큼지막하게 새겼다. 열네 살 때는 이미 스트레이가 알고 지내던 사람 중 상당수가 소년원이나 교도소에 다녀온 뒤였다. 그 사람들은 타투 건을 만드는 법을 배워 왔고, 스트레이에게 가르쳐 줬다.
인터넷에서 항해의 별 문신에 대해 검색해 봤더니 먼 길을 떠나더라도 항상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뜻이라고 한다. 스트레이는 몇 년 후 그 뜻대로 시카고에서 아주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 펑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문신이었기 때문에 따라한 것이고, 특별히 의미를 생각하지는 않았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