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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케이터 보이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8

by 이정미

스트레이는 운동을 좋아했고 잘 했다. 중학교에서는 축구부와 야구부에 있었다. 축구부에서는 특별히 정해진 포지션이 없었고 야구부에서는 외야수와 투수를 맡았다. 투수를 할 때는 게임 전체에서 단 한 명의 타자에게만 공을 허용할 정도로 잘 던진 날도 있었다. 운동할 때 상대 팀과 싸운 적은 없는지 스트레이에게 물었더니 딱 한 번 있다고 말했다. 부잣집 백인 아이들과 경기를 한 후였고, 상대편이 먼저 말로 시비를 걸었다고 한다.


운동부에서는 유니폼 값 외에 다른 돈은 들지 않았고, 유니폼도 별로 비싸지 않았다. 슬럼가의 아이들에게는 운동이 유일하게 건전한 여가인 경우가 많다. 운동선수가 되는 것만이 성공하는 길이라고 생각해서 운동을 아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아이들도 많다고 한다. 실제로도 가난 속에서 자라난 스타 운동선수가 드물지 않다. 그러나 알고 보면 미디어가 포장하는 것만큼 많지도 않다. 스트레이의 주변에는 운동으로 가난을 탈출한 사람이 없었고 스트레이도 운동선수가 될 생각은 특별히 없었다.


중학교 때는 스케이트보드도 열심히 탔다. 처음에는 친구들이 준 보드를 쓰다가 고등학교 때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새 보드를 샀다. 스트레이는 과감한 기술이 아니면 시도하지 않았다. 발의 반동만으로 공중에서 보드를 앞뒤양옆으로 모두 뒤집는 하드플립을, 계단 열두 개를 점프하면서 시도하기도 했다. 보드를 탄 채 난간이나 벤치 모서리를 미끄러지는 그라인드를 특히 잘 했고, 이름이 K로 시작하기 때문에 별명이 K-그라인드였다. 우연히도 에이브릴 라빈의 스케이터 보이Sk8er Boi가 유행하던 때와 비슷한 시기였다. 스케이트보드에 대한 대화를 하던 때, 스트레이와 나는 그 오래된 노래 이야기를 하면서 웃었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방치된 지 오래됐지만 아직 전기가 들어오던 쿠키 공장을 찾아내 스케이트보드장으로 바꿔 놓았다. 램프를 만들고, 서류 캐비닛을 눕혀 그라인드를 했다. 그러나 어느 날 공장에 화재가 나면서 스케이트보드장도 사라져 버렸다.


스케이트보드 팀들은 흔히 자신들이 보드를 타는 모습을 담은 비디오를 만든다. 스트레이도 지역 팀이 만든 비디오테이프에 출연했다. 지금처럼 누구나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찍어서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었다면 프로 팀에 들어가려 시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프로 스케이트보드 팀이 전부 캘리포니아에 있었고, 팀에 들어가고 싶으면 일단 캘리포니아에 살아야 했다.


한 번은 스케이트보드를 타다가 넘어져서 손톱이 통째로 떨어져 나갔다. 제대로 돌봄을 받지 못하고 자랐기 때문에 아무리 아파도 병원에 간 적이 없었지만 그때는 응급실에 가야만 했다. 응급실에서는 손톱의 뿌리 부분을 손가락에 세 바늘 꿰매서 붙였다. 마치 옷감 두 장을 겹쳐서 꿰매듯 바늘과 실이 손가락 전체를 관통했다. 아주 아프면서 이상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실밥을 풀어 준 의사는 봉합을 한 의사와 다른 사람이었는데, 스트레이의 손가락을 보면서 왜 굳이 봉합을 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붕대만 감아 뒀으면 손톱이 새로 자라났을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병원 측이 돈 때문에 불필요한 시술을 한 것이라고 스트레이는 확신한다. 실제로 의료보험도 없었던 스트레이에게는 수천 달러의 치료비가 청구되었다. 도저히 지불할 능력이 없었기에 스트레이는 청구서를 계속 묵혀 뒀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병원 측은 청구를 포기했다. 병원비와 의료보험이 비싼 미국에서는 드물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응급 환자의 치료를 거부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일단 치료를 한 후, 몇 년을 기다려 봐도 환자가 치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보이면 받아내기를 포기하는 것이다.


스트레이는 스노보드를 타는 것도 좋아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라서 물었다.


- 그렇게 가난했는데 스노보드를 타러 갔다고? 누구랑 갔어?

- 어디 산 같은 데에 가서 탄 건 아니야. 동네 공원에 큰 언덕이 있었어.


시카고가 있는 미국 중서부에는 산이 별로 없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도 스노보드는 잘 타지 않는다고 한다. 스트레이의 친구 중 딱 한 명이 스노보드를 가지고 있었다. 눈이 많이 올 때마다 스트레이는 친구들과 몰려가서 언덕 밑이나 계단 옆에 눈을 쌓아 램프를 만들었다. 그리고 보드 하나를 다 같이 돌려가며 탔다. 스키복이 없어서 그냥 옷을 여러 겹 입었고, 보드를 타다 보면 그 여러 겹의 옷이 모두 젖었다. 넘어져서 뇌진탕을 일으킨 적도 있었다.


스트레이는 복싱도 스노보드와 비슷한 방법으로 즐겼다고 한다. 한 친구의 집 지하실에 직접 만든 복싱 링이 있었고 글러브도 있었다. 제대로 복싱을 배울 기회는 한 번도 없었지만 스트레이는 그곳에서 자주 친구들과 복싱을 했다. 슬럼가의 취미생활은 대부분 그런 식인 모양이다. 직접 만들거나, 친구의 물건을 빌리거나, 친구가 직접 만든 물건을 빌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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