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0
8학년, 열네 번째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스트레이에게는 첫 여자친구가 생겼다. 여자친구는 10학년이어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아일랜드계 백인이고 중산층 집안의 모범생이었는데, 순전히 학군 때문에 슬럼가 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둘은 공통의 친구들을 통해서 서로 알게 됐다.
여자친구가 학교를 무서워하지 않았는지 스트레이에게 묻자, 모든 과외활동을 다 한 것을 보면 아마 아닐 거라고 대답했다. 미국에서는 좋은 대학교에 가려면 고등학교 때 공부뿐만이 아니라 운동, 동아리, 봉사활동 등의 과외활동도 열심히 해야 한다. 실제로 여자친구는 나중에 미국 전국에서 10위 안에 드는 명문대에 갔다.
스트레이는 여자친구가 아버지에게 반항하고 싶어서 슬럼가 아이인 자신과 사귀기 시작한 것 같다고 추측한다. 그러나 여자친구의 부모는 보수적인 면이 있기는 해도 사람 좋고 친절한데다 스트레이를 예뻐했다. 스트레이도 여자친구의 가족들 앞에서 항상 잘 처신했다.
스트레이는 여자친구와 1년 정도 평범하게 사귀다 헤어졌다. 그 후로는 다시 사귀었다 헤어졌다를 여러 번, 어른이 되고 나서도 한참 동안 반복하는 애증의 관계가 된다. 2년 후 여자친구가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었을 때에는 다시 사귀고 있을 때였는지 함께 졸업무도회에도 갔다. 미국의 졸업무도회에 가는 다른 모든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스트레이도 턱시도를 대여해서 입고 갔다. 여자친구는 본인의 졸업무도회였으니 아마도 사진을 가지고 있겠지만, 아쉽게도 스트레이에게는 사진이 없다. 평소에 스트레이는 오로지 티셔츠와 청바지만 입기 때문에 턱시도를 입은 당시의 모습이 남아 있다면 볼만할 것이다.
스트레이가 가지고 있는 어릴 적 사진은 말 그대로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사진을 찍을 기회 자체가 드물었다. 아기 때 사진을 어머니가 조금 가지고 있지만 스트레이는 어머니에게 가능한 한 말을 걸지 않는다. 스트레이가 가지고 있는 자기 자신의 가장 오래된 사진은 열여섯 살 때, 친구의 집에 컴퓨터를 설치해 주는 모습을 친구가 찍은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 둔 덕분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열네 살 때쯤 일어난 또 하나의 새로운 사건은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부시 정권과 이라크 전쟁에 많은 미국인이 반발하면서 저마다 목소리를 내던 시기였고, 스트레이도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논의들을 접하기 시작했다. 스트레이가 예전부터 좋아하던 펑크 밴드들도 정치색이 더욱 강해진 곡을 내놓았다.
스트레이는 원래도 책을 좋아했지만, 예전에는 학교에서 읽어오라고 한 소설책을 학교에서 정해준 범위보다 많이 읽는 정도였다. 그러다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소설에서는 멀어지고, 비록 균형이 잘 잡힌 독서는 아니었지만 전보다 훨씬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스트레이는 어린 무정부주의자가 되어갔다. 여자친구도 스트레이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어쩌면 스트레이의 이런 면도 반항에 대한 여자친구의 욕구를 충족해 줬는지 모른다.
무정부주의는 스트레이의 정체성 중 일부가 되었고, 어른이 된 후로도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훗날 스트레이가 노숙을 시작한 것은 가난 때문이었다. 그러나 노숙을 할 때 한정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드넓은 미국을 떠돌게 된 데에는 무정부주의의 영향이 컸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