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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해체되다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1

by 이정미

스트레이가 만으로 열세 살 때쯤 원래도 엉망이었던 가족이 결국 해체되고 말았다. 아버지가 집을 나가 딴살림을 차리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어머니가 시집 식구들과 항상 잘 지냈기 때문에 할머니는 아버지에게 크게 화를 냈다. 그래도 상황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부모는 법적으로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따로 살게 되었다. 아버지는 스트레이나 남동생을 데려갈 의사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둘은 어머니와 함께 남겨졌다. 그러나 어머니는 언제나 그랬듯 부모의 역할을 해 주지 못했다. 계속 마약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 번에 열흘씩 집에 들어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중학생인 스트레이와 초등학생인 동생 단 둘이서 어떻게든 생활해 나가야 했다. 스트레이는 아직 만 열네 살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적으로 일을 할 수 없는 나이였다. 갱 친구들이 공급해 주는 마약성 진통제를 팔아서 버는 돈은 스트레이와 동생의 생명줄이 되었다.


-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아남은 거야?

- 되는 대로.


내 질문에 스트레이는 그렇게만 대답했다.


집세를 내지 못해 갈 곳이 없어질 때마다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던 모양이다. 그럴 때 남동생은 조부모와 함께 지냈지만, 조부모의 집은 너무 작았기 때문에 스트레이까지 같이 머물 수는 없었다. 스트레이는 수많은 사람의 집을 전전했다. 친구 한 명과 함께 산 적도 있다고 한다. 아마 열여덟 살쯤 된 친구, 한국식으로 말하면 아는 형이 독립해서 살고 있었고 거기에 얹혀살았던 것이 아닐까 싶다.


조부모는 모두 멕시코계 미국 시민이었다. 할아버지는 스트레이가 십대였을 때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지금은 없어진 미국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할머니는 영어를 잘 하지만 할머니의 가족들은 영어를 하지 못했다고 한다. 친가 쪽 친척들은 전형적인 멕시코계다. 할머니는 지금 다른 주에서 살고 스트레이의 생일마다 약간의 돈을 수표로 보낸다. 스트레이는 그 수표들을 현금으로 바꾼 적이 한 번도 없다. 스트레이는 할머니에게 더 자주 전화하고 싶어 하지만, 원래 남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데에 서툰 편인데다 우울증 때문에 더 쉽지 않다.


스트레이의 남동생은 스트레이와 마찬가지로 스페인어도 잘 하지 못하고 피부도 희다. 멕시코계 조부모와 함께 오래 살았으면서도 라이프스타일은 오히려 스트레이보다도 더 백인에 가깝다. 하지만 스스로를 백인이 아니라 멕시코계라고 생각한다. 스트레이와 함께 지낸 시간이 길지 않은데도 그 점이 스트레이와 비슷해서 재미있다.


떨어져 살게 된 후로 스트레이는 동생을 사랑하면서도 동생을 항상 피했다. 그렇게 해야만 어머니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동생은 어머니와 가깝게 지내는 편인데, 스트레이는 어머니와 말도 섞고 싶지 않을 정도로 어머니를 싫어한다. 가족이 모이는 명절인 추수감사절과 크리스마스에도 일부러 동생을 만나지 않은 적이 여러 번 있다. 명절에 동생은 어머니와 함께 있고, 스트레이는 어머니와 마주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스트레이의 우울증은 겨울마다 더 심해진다. 11월 말인 추수감사절 즈음에 상태가 눈에 띄게 나빠지기 시작해서 크리스마스에 바닥을 친다. 둘 다 가족을 위한 명절인데 자신의 가족은 엉망인 것이 어릴 때부터 우울했다고 한다. 이제 어머니는 예전보다는 제대로 살고 있고 매년 명절도 그럴싸하게 챙긴다. 그러나 가족에 항상 아무 문제도 없었고 자신도 평생 동안 아무 잘못을 저지른 적이 없는 양 행동한다. 동생은 거기에 장단을 맞춰 준다. 스트레이는 그런 위선을 견디지 못한다.


동생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나쁜 기억이 자신만큼 많지 않을 것이라고 스트레이는 추측한다. 반대로 스트레이에게는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에 대해서 온통 나쁜 기억밖에 없다. 가정이 가장 망가졌을 때 동생은 아직 그 상황을 이해하거나 기억하기에 너무 어렸지만, 스트레이는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가족이기 때문에 어른이 된 후로도 어머니와의 교류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다. 어머니가 살던 트레일러의 지붕에 타르칠과 코팅을 해 준 적도 있다. 아이러니다. 부모에게 사실상 버림받고 어린 나이에 독립할 수밖에 없었던 때, 스트레이가 스스로 집세를 벌기 위해 배운 여러 일 중 하나가 지붕 공사였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시기에는 어머니에게 돈을 주기도 했고, 빌려줬다가 떼이기도 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돈 요구는 스트레이가 어머니를 가능한 한 피한 이유 중 하나였다.


아버지가 같이 살기 시작한, 스트레이의 새어머니라고 할 수도 있는 여자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멕시코계였다. 새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열세 살 스트레이도 데려와서 함께 살자고 강력하게 권했다. 일말의 주저도 없이 스트레이를 거부한 쪽은 아버지였다. 스트레이는 새어머니가 아주 좋은 사람이고, 그렇게 좋은 사람이 왜 자기 아버지 같은 남자를 만났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스트레이는 새어머니의 권유대로 잠깐 같이 살았지만, 아버지와 사이가 너무 나빴기 때문에 곧 떠났다. 그 후로 스트레이와 아버지는 어쩌다 마주칠 일이 있어도 서로를 피했다.


이후 새어머니는 딸과 아들을 한 명씩 낳았다. 스트레이는 이 배다른 동생들을 예뻐해서 아기 때 곧잘 돌봐 줬다. 동생들도 스트레이를 좋아한다. 스트레이가 예전처럼 많이 찾아가지 못하게 된 후로도 자주 전화를 걸어 학교생활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스트레이를 방임하고 두들겨 팼던 아버지는 새 가족과 있을 때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다. 술과 마리화나는 계속 했지만 그 외의 모든 약물은 끊었다. 게다가 스트레이의 이복동생들에게 아주 잘해줬다. 혹시 그 사실이 슬프지 않았느냐고 스트레이에게 묻자 스트레이는 전혀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저 자신이 겪었던 힘든 상황을, 사랑하는 동생들은 겪지 않아도 돼서 기쁠 뿐이라고 했다.


스트레이는 노숙을 하던 시절에도 시카고에 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새어머니의 집을 찾아가서 이복동생들을 만났다. 이십대 초반에 동생들과 찍은 사진 한 장을, 노숙을 마치고 정착한 후 오랫동안 냉장고에 붙여 뒀다. 내게도 보여줬다. 동생들은 스트레이가 어린 시절 가져본 적이 없을 알록달록한 장난감들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다. 그 옆의 스트레이는 어둡지는 않지만 동생들만큼 밝지도 않은 표정으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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