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3
시카고에서 1100 해밀튼Hamilton에 다녀왔다는 한 마디면 남들이 우습게 보지 못한다고 스트레이는 말한 적이 있다. 1100 해밀튼은 일리노이 주 쿡 카운티(시카고를 포함하는 행정구역) 소년원이 있는 곳이다. 스트레이도 그곳에 다녀왔다.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지는 않는다.
슬럼가에서 스트레이와 가깝게 지내던 사람들은 대부분 소년원에 다녀왔다. 슬럼가는 외부와는 다른 규칙들이 존재하는 곳이어서, 전과가 있어야 더 존중을 받는다. 스트레이도 그 덕분에 십대 때 불필요한 싸움을 많이 피할 수 있었다. 소년원에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다고 말하는 것만으로 상대방이 겁을 먹고 물러서는 일이 흔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는 훗날 노숙을 하면서 구치소에 여러 번 다녀오게 되었지만, 어떤 성인 구치소보다도 소년원이 더 지내기 힘들었다고 한다. 가장 나쁜 점은 하루도 빼놓지 않고 싸움이 일어나는데 교도관들이 전혀 말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싸움이 붙은 아이들을 감시 카메라가 없는 곳으로 안내해 주기도 했다. 싸움을 발견하면 그 일에 관한 서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애초에 싸움을 발견하지 못한 척 하는 것이었다.
미국의 하층 계급에서 자라면 몸싸움을 피하기 어렵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사람들은 언제나 몸집이 작은 스트레이를 만만하게 보고 싸움을 걸어왔다. 소년원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이는 사실 그 상황을 즐겼다. 항상 무술을 배우고 싶었지만 따로 배운 적은 없었다. 그래도 싸움에는 자신이 있었고 대부분 이겼다. 또 청소년기 우울증의 증상으로 항상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분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작은 몸집으로 싸움에서 이기는 비결을 묻자 스트레이는 몇 가지를 가르쳐 줬다. 상대방의 손아귀에 붙잡히지 않는다. 얼굴을 보호한다. 주먹을 뻗을 때는 상대방을 뚫어버릴 기세로 끝까지 뻗는다. 한 번 주먹이 닿으면 멈추지 않고 계속 휘두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일단 웃옷부터 벗는다.
나는 항상 남녀 합반인 학교들만 다녔기 때문에 남자아이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지만, 웃옷을 벗고 싸우는 아이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스트레이가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본 모든 남자들은 싸움이 시작될 것 같으면 일단 웃옷부터 벗었다고 한다. 아이건 어른이건 예외가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상대방이 옷자락을 움켜쥐거나, 옷을 잡아당겨 눈을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옷 대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것은 ‘여자 같은’ 행동이라는 이유로 암묵적인 금기다. 하지만 스트레이는 싸움을 잘 하는 여자들을 여러 명 봤기 때문에 그것은 우스운 고정관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는 남자가 없다는 뜻도 아니다. 한 남자가 스트레이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얼굴에 니킥을 해서 코를 부러뜨린 적도 있다.
소년원에서 처음 일주일 정도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누군가가 싸움을 걸었고 스트레이는 기꺼이 모두 싸웠다. 그러다가 스트레이에게 갱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그 후로는 더 이상 싸움을 거는 아이가 없게 되었다.
싸움 외에 또 한 가지 힘든 점은 시설 통제가 너무 자주 있다는 것이었다. 소년원 내에는 아이들이 출석하는 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펜이나 커터가 없어지는 일이 흔히 있었다. 그럴 때마다 모든 아이들은 방에 갇혀서 수색이 끝날 때까지 몇 시간이고 기다려야 했다.
소년원에서는 아침에 침대를 정리하지 않으면 벌로 하루 동안 방안에만 있어야 했다. 스트레이는 소년원에 오기 전까지는 침대를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가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운동 시간에 나가서 농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소년원에서 매일 침대를 정리했다. 농구 외의 또 다른 낙은 책이었다. 스트레이는 당시까지 출판된 해리포터 전권을 모두 소년원에서 읽었다.
소년원에 오기 전 스트레이는 우울증과 불면증 때문에 학교 상담사를 만나고 있었다. 당시 스트레이는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었고, 상담사는 그 사실을 소년원 측에 알렸다. 그래서 스트레이는 소년원에 들어간 후 약물치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약물치료인 동시에 신약 임상시험이기도 했다. 항우울제이자 수면제로 작용하는 신약이었다. 우울함은 크게 낫지 않았지만 잠드는 데에는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효과가 지나치게 좋아서, 복용하고 나면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든 기절하듯 잠들어 버린다는 것이었다. 소년원에서 나온 후 술을 마신 상태에서 약을 복용했을 때는 그보다도 훨씬 심했다. 평소의 열 배 정도로 술에 취했고, 곧바로 기억이 끊겼다. 스트레이는 소년원에서 나온 후로는 상담사를 다시 찾아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약도 더 이상 처방받지 않았다.
비록 치료가 오랫동안 계속되지는 못했지만 슬럼가의 고등학교에도 상담사가 있었고, 상담사가 소년원과 협력해서 약물치료를 제공했다는 것이 내게는 놀라웠다. 스트레이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나는 2000년대 초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외국어고등학교였으니 소위 ‘좋은’ 학교였지만 상담사는 없었다. 다른 학교에 상담사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다. 학교를 통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그 치료가 소년원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본 적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말하자 스트레이는 반대로 내 이야기에 놀랐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