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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자퇴와 독립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4

by 이정미

스트레이는 9학년 때, 열다섯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가볍게 내린 결정은 아니다. 그래도 스트레이가 아직까지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학교를 계속 다니기 위해 무엇이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한다.


당시 스트레이는 첫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데 머물 곳이 없어져서 그 헤어진 여자친구의 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여자친구의 부모는 좋은 사람들이었고 스트레이에게 잘 대해 줬다. 그래도 스트레이는 자신의 상황을 마음 편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직 어른도 아닌데, 더 이상 사귀는 사이도 아닌 이성의 집에서 지낸다는 것이 이상했다. 이 집 저 집을 옮겨 다니며 남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처지도 아마 지겨웠을 것이다. 그래서 스트레이는 학교를 그만두고 스스로 집세를 벌기 시작해서 여자친구의 집에서 나왔다.


불과 만 열네 살의 나이에, 좋아하던 스케이트보드도 더 이상 타지 못하고 바쁘게 일하는 삶이 시작되었다. 잠시나마 남동생을 부양하며 둘이서 생활하기도 했다. 흔히 말하는 소년가장이었다.


동생이 조부모의 집으로 완전히 들어가고 나서 스트레이는 거의 항상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집 하나를 혼자서 빌릴 만큼 충분한 돈을 벌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집세를 나눠 낼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미국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어린 나이부터 룸메이트들과 부대껴야만 했던 스트레이는 그 생활이 꽤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훗날 프로그래머가 되어 돈을 충분히 벌게 되었을 때, 스트레이는 집세가 아무리 올라도 결코 룸메이트를 들이지 않았다.


스트레이는 자퇴한 후 미국의 고등학교 검정고시인 GED에 금방 합격했다. 이후에는 대학교도 한동안 다녔으니 실제 학력은 대학교 중퇴다. 그런데도 자신의 학력을 항상 고등학교 중퇴라고 말한다. 자퇴한 후 스스로 생활을 책임질 때의 힘든 기억이 깊이 남았기 때문은 아닐지 나는 추측한다.


열네 살 때부터 스물네 살 때 전업 프로그래머가 되기 전까지 스트레이는 온갖 종류의 육체노동을 다 해봤다. 쉬운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여름에 땡볕 아래에서 지붕 공사를 하기도 했다.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는 밤새 트럭에 짐을 실었는데 엄청나게 힘들었다고 한다. 아마 한국에서 악명 높은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와 비슷했을 것이다.


스트레이가 처음으로 가진 풀타임 직업은 중학교 청소부였다. 만 열다섯 살이었다고 하니 자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스트레이는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커피로 잠을 쫓고 출근했다. 일은 힘들고 지저분했다. 스트레이는 아직까지도 그 이야기를 할 때면 몸서리를 친다. 게다가 중학교 아이들은 자신들과 나이가 그다지 차이 나지 않는 스트레이를 얕봤다.


열일곱 살 때는 한 번에 직장이 세 개였던 적도 있다. 소위 쓰리잡을 뛴 것이다. 중학교 청소부와 공원의 운동경기장 관리 일을 계속 했고, 피자헛에서 피자를 배달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대학교에 들어간 후에도 피자헛에서는 계속 일했다.


피자 배달을 위해 스트레이는 차를 장만했다. 한국에서 음식점, 특히 피자헛과 같은 대형 체인에 직접 고용되어 배달을 하는 사람들은 가게가 소유한 오토바이를 사용하기 때문에 내게는 신기했던 부분이다. 그 말을 듣고 스트레이는 내게 물었다.


- 기름 값도 가게가 내?

- 그렇다고 알고 있어.

- 여기서는 가게가 절대로 기름 값을 안 줘.


한 가게에만 소속된 배달원이었는데도 마치 요즘의 배달 앱 기사와 같은 방식으로 일했던 모양이다.


스트레이의 차는 당연하게도 간신히 굴러가는 낡은 중고차였다. 미국에서는 많은 십대들이 자기 차를 가지고 있고, 부잣집 아이가 아닌 이상 흔히 저렴한 중고차를 산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스스로 번 돈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돈을 저축해서 차를 사야 했기 때문에, 다른 십대들보다도 선택의 폭이 좁았다.


피자 배달도 좋은 직업이 아니었다. 그 일을 하면서 ‘완전히 사이코처럼’ 운전하는 법을 배우게 됐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운전을 못 하는지 알게 됐다고도 했다.


시급이 최저임금보다 낮지 않아서 팁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국의 많은 서비스업은 최저임금보다 적은 시급을 주고, 부족한 부분은 근로자가 각자 팁을 받아 메우도록 한다. 서비스에 특별한 불만이 없을 경우 전체 가격의 최소한 15%를 팁으로 주는 것이 예의다. 그러나 스트레이의 손님들 중에는 100달러어치를 넘는 주문을 해 놓고 팁을 한 푼도 주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부자 손님들일수록 팁에 인색했고 요구사항만 까다로웠다. 진입로가 아주 긴 집에 살면서 진입로에 주차하지 말고 걸어 들어오라고 하는 식이었다. 스트레이는 곧 무리한 요구사항을 모두 무시하게 됐다. 슬럼가 손님들이 오히려 팁을 더 잘 줬다. 다만 돈 대신 마약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스트레이는 호텔 방에서 열리는 파티에 배달을 많이 해 봤는데, 높은 확률로 술이나 마리화나를 팁으로 받았다.


피자헛에서 스트레이는 이십대의 매장 매니저와 사귀게 되었다. 일리노이 주에서는 만 열일곱 살부터는 성인과 연애를 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스트레이는 배달원이었기 때문에 주방에 들어가서는 안 됐지만, 여자친구인 매니저가 눈감아 준 덕분에 마음대로 들어가서 피자를 만들어 먹었다. 나중에야 매니저가 싱글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고 한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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