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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와 숨겨진 노숙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6

by 이정미

대학교에 가서 프로그래머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 언제였는지 질문했을 때 스트레이는 만 열일곱 살 때라고 대답했다. 실제로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한 대학교의 컴퓨터학과에 입학한 것은 2007년 12월, 열아홉 살 때였다. 보통은 12월에 학기가 시작되지 않지만 그 대학교는 주로 사회인들을 대상으로 한 곳이었기 때문에 커리큘럼이 유연했다. 스트레이는 학교와 동시에 직장 두 곳에 다니면서 집세와 생활비를 벌었다.


미국의 여러 지역에 캠퍼스가 있는, 마치 체인점과 같은 대규모 학교였다. 사립에 영리였기 때문에 등록금이 비쌌다. 그래도 모든 수업이 공학 분야와 관련되어 있는 것을 보고 스트레이는 그 학교를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입학하고 보자 원래 목적이었던 프로그래밍 수업에서는 별로 배울 것이 없었다. 이미 독학으로 알고 있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스트레이는 대학교에서 프로그래밍 수업은 하나밖에 듣지 않았다. 그나마도 수업에서 사귄 친구들의 프로그래밍을 도와주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대신 수학 수업을 많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이 대학교는 학생들을 모집할 때 허위과장광고를 했다는 이유로 집단소송을 당했다. 스트레이도 연락을 받고 소송 명단에 이름을 올렸는데, 몇 년째 아무 소식이 없다. 승소한다 해도 한 명 당 돌아가는 돈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불행히도 대학교에 다니면서 직장 두 곳에서 일하는 생활은 오래 갈 수 없었다. 스무 번째 생일을 맞이하기 전, 대학교에 들어간 지 1년을 채 넘기지 못했을 때 결국 한계가 왔다.


어느 달에 지출이 수입을 초과했고 거기서 모든 것이 무너졌다. 무엇이 구체적인 원인이었는지는 모른다. 스트레이도 정확히 기억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하게 돈이 나갈 일이 생겼을 수도 있고, 며칠 일을 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을 수도 있다. 갑자기 몸이 아팠거나, 피자 배달을 할 때 쓰던 낡은 중고차가 고장 났다면 둘 다였을 것이다.


수입이 전부 집세와 생활비로 나가 버리는 생활을 오래 해 왔기 때문에 완충 작용을 해 줄 여윳돈이 없었다. 전기 요금, 휴대전화 요금, 인터넷 요금 중 무언가를 제때 내지 못했고 거기서 연체료가 발생했다. 이미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상황에서 연체료만큼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생활비에서 더 아낄 수 있는 부분도 없었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식으로 다른 곳에 써야 할 돈을 연체료로 내면, 그 다른 곳에서 또 연체료가 발생했다. 집세로 낼 돈의 일부를 연체료로 내면 결국 집세가 모자랐다.


스트레이는 집세를 내기를 포기하고 주로 차에서 생활하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수많은 친구와 지인의 집을 전전했고, 차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남의 집에서 신세를 지는 일이 자주 있었지만 이제는 그보다도 불안정한 삶이 되었다. 집 없이 지내는 동안에도 전기 요금과 인터넷 요금의 연체료는 계속 불어나서 스트레이를 따라다니는 빚이 되었다. 몇 년 후 노숙을 끝내고 정착했을 때, 자신의 이름으로 다시 전기와 인터넷을 쓰기 위해 수천 달러를 지불해야 했다.


주변 사람들의 집을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생활을, 영어에서는 남의 소파에서 소파로 옮겨 다니며 잔다는 뜻에서 카우치 서핑couch surfing이라고 한다. 길거리에서 지내지 않기 때문에 흔히 노숙 통계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집이 없다는 점에서 노숙의 한 형태이기 때문에 ‘숨겨진 노숙hidden homelessness’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많은 경우 곧 길에서 생활하는 노숙으로 이어진다.


몇 달 동안 그렇게 버티던 스트레이는 결국 차마저 팔아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차를 잃게 됐을 때 이제 완전히 끝장났다고 생각했는지, 아니면 일시적인 어려움일 뿐이고 다시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스트레이에게 물어봤다. 스트레이는 당시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고 그저 눈앞에 닥친 상황을 받아들일 뿐이었다고 대답했다. 대학교도 그 즈음 그만둔 듯하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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