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5
스트레이는 몇 년의 독학을 거쳐 프로그래밍으로 용돈 벌이를 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미국에서는 마이스페이스가 한창 유행이었다. 마이스페이스는 흔히 한국의 싸이월드에 비교되는데, 싸이월드와 다른 점은 프로필 페이지를 정해진 형식 없이 자유롭게 꾸밀 수 있다는 것이었다. 스트레이는 다른 사람들의 마이스페이스 프로필 페이지를 만들어 주고 한 건당 100달러 정도를 받았다. 술이나 환각제를 돈 대신 받는 경우도 많았다. 어린 나이에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지게 되었을 뿐 아니라 우울증과도 싸워야 했던 스트레이에게, 술과 환각제는 가장 쉽게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우울증과 한 몸인 불면증도 매일같이 스트레이를 괴롭혔다. 아주 가끔이기는 하지만 수면유도제의 부작용으로 일시적인 정신 혼란인 섬망을 겪은 적도 있다. 친구의 자취집에서 함께 살던 열다섯 살 때의 어느 밤, 잠들기 위해 수면유도제를 먹은 후 기억이 끊겼다. 새벽 다섯 시쯤 정신이 돌아왔을 때 스트레이는 옷을 전부 입은 채 빈 욕조 속에 누워 있었다. 품에는 친구의 물건인 커다란 냄비와 국자를 끌어안고 있었다. 꿈속에서 수프라도 만들고 있었던 모양이라고 말하며 스트레이는 웃었다.
열일곱 살 때는 술 때문에 큰 곤경에 처한 적이 있다. 가짜 신분증으로 주유소에서 맥주를 사다가 경찰의 눈에 띄어 공문서 위조 혐의로 체포된 것이다. 미국에서는 1년 이상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 다만 만 스물한 살까지 합법적으로 술을 마실 수 없는 미국에서 가짜 신분증으로 술을 가장 많이 사는 사람은 대학생들인데, 경찰은 대학생에게는 관대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행동이 중범죄라는 사실을 모르는 미국인도 적지 않다. 실제로 스트레이는 대학교에 다니던 스무 살 때 똑같은 일을 한 번 더 겪었는데, 그 때는 경범죄인 미성년자 주류 소지로 처리되었다.
경찰이 합법적으로 몸수색을 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동의나 현행범이라는 확실한 증거, 또는 영장 중 한 가지가 필요하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스트레이는 자신이 몸수색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항의했다. 경찰이 문제 삼을 여지를 주지 않기 위해서 물리적인 저항은 하지 않았다. 스트레이와 친했던 주유소 직원들도 모두 스트레이의 편을 들었다. 직원 중 한 명은 법정에서 스트레이가 몸수색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증언까지 해 줬다. 재판에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경찰의 몸수색이 불법이었음이 인정되었고, 스트레이는 교도소에 가는 일을 피할 수 있었다.
미국인들과 교류하다 보면 ‘공권력은 우리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뿐이다. 특히 경찰은 제복 입은 깡패일 뿐이기 때문에 경찰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 평화로운 환경에서 평범하게 자란 사람 중에도 그런 경우가 적지 않은데, 소외계층에서 자라 무정부주의자가 된 스트레이는 말할 것도 없었다. 어른이 되기도 전에 경찰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지킬 준비가 되어 있었고, 실제로 지켜낸 것이다. 한국인인 데다 온실 속에서 자란 내게는 낯설기도 하고 흥미롭기도 하다.
바쁘고 굴곡 많은 삶 속에서도 정치, 특히 급진적인 무정부주의는 스트레이의 삶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차지했다. 지역의 정치 모임들에 참여하고 주말에는 시위에 나갔다. 항상 화가 나 있었을 뿐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세상의 어두운 면을 많이 봐 온 스트레이에게 급진주의는 잘 맞았을 것이다.
열일곱 살 때쯤 스트레이는 공장식 축산에 반대하는 의미로 채식주의자가 됐고, 채식주의 생활을 위해 요리를 배웠다. 처음에는 동물성 음식을 전혀 먹지 않는 비건이었다. 비건 식단은 제약이 많기 때문에 시간과 돈이 충분한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이 흔하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가난하고 바빴음에도 비건 생활이 할 만했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는데, 항상 식사를 직접 계획하고 매일같이 요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할 여건이 되지 못할 때는 잠시 비건 식단을 포기하고 일반적인 채식을 하다가 다시 비건으로 돌아갔다. 처음 비건 식단을 중단했을 때는 한동안 유제품을 소화하지 못해 고생했지만 그 후로는 문제가 없었다. 몇 년 후 떠돌이 생활을 시작했을 때에도 비건 식단을 중단했고, 그 후로는 영영 비건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채식을 시작한 것은 식도염으로 인한 가슴 쓰림 때문이기도 했다. 술과 붉은 고기 중 하나는 끊어야 했는데 술을 끊을 수는 없었다. 붉은 고기를 끊자 가슴 쓰림이 사라졌다. 술은 계속 매일같이 마셨는데도 괜찮았던 것을 보면 스트레이는 어지간히도 튼튼한 몸을 타고난 모양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