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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무정부주의자들의 보금자리

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7

by 이정미

집과 차를 모두 잃은 후 스트레이는 한동안 시카고의 어느 무정부주의 코뮌(생활 공동체)에서 지냈다. 해킹을 통해 권력에 저항하는 핵티비즘hacktivism 운동가, 제레미 해먼드Jeremy Hammond가 소유한 공동주택이었다. 우연이지만 나중에 프로그래머가 된 스트레이는 당시 코뮌이 있던 자리에서 몇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오랫동안 살았다. 부자 동네는 아니지만 환경이 괜찮았다.


스트레이는 열일곱 살 때부터 제레미와 친한 친구였다. 둘은 콘서트에서 우연히 만났다. 제레미가 리눅스의 마스코트 펭귄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것을 보고 스트레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제레미는 스트레이보다 세 살밖에 많지 않지만 스트레이와 만나기 전부터 이미 유명한 해커였다. 지금은 더 유명해져서 영문 위키피디아에 이름이 올라 있을 정도다. 해킹을 통해서 얻은, 미국 정부와 인텔의 비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정보를 위키리크스에 제공한 2011년의 사건이 특히 잘 알려진 모양이다. 제레미는 그 일로 체포되어 10년 형을 선고받았고 연방 교도소에서 복역했다. 스트레이도 한때 핵티비즘에 활발하게 참여했지만 제레미가 붙잡힌 후로 손을 많이 뗐다. 제레미가 복역하는 동안 편지는 여러 번 보냈다.


제레미에게는 쌍둥이 형제 제이슨Jason이 있다. 두 사람은 일란성 쌍둥이이면서도 서로 정반대였다. 제레미는 매사에 진지한 프로그래머였던 반면, 제이슨은 펑크 밴드에서 트롬본을 연주했고 항상 장난기가 넘쳤다. 그러나 음악을 좋아하는 것과 정치적인 동기로 교도소에 갔다온 것은 형제가 똑같다. 제이슨은 KKK 모임을 습격했다가 폭행죄로 3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스트레이는 제이슨이 그런 일을 감행했다는 데에 솔직히 놀랐다고 말한다.


스트레이는 한 타투 샵의 웹사이트를 만드는 일을 맡아서 코뮌의 공용 컴퓨터로 일했다. 그 일을 하며 받은 돈으로 3개월분의 방세를 낼 수 있었다.


코뮌은 아주 ‘흥미로운’ 곳이었다고 스트레이는 말했다. 일주일에 사나흘은 공연이 열렸다. 아나코 펑크anarcho-punk나 힙합 등 정치적인 음악 공연이었다. 시카고에서는 다세대 주택에서 소규모 공연을 여는 일이 매우 흔하다고 한다. 공연이 있는 밤에는 사람이 많고 시끄러웠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자주 옥상으로 나가서 잤다. 모기에 잘 물리지 않는 체질이었기에 가능했다.


누군가가 버려두고 간 것 같은 영화 DVD가 딱 두 장 있었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볼 것이 없었기 때문에 코뮌에서는 항상 그 두 영화를 틀어놓았다. 하나는 러쉬모어Rushmore(한국에는 <맥스군 사랑에 빠지다>라는 제목으로 수입되었다), 다른 하나는 브레이킨 2: 일렉트릭 부갈루Breakin’ 2: Electric Boogaloo였다. 후자는 최악의 영화 중 하나로 인터넷에서 유명하다.


그래도 스트레이는 코뮌에서 아주 편안하게 지냈다. 사람들은 모두 착하고 책임감 있었다. 꼭 돈이 아니더라도 저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통해 코뮌에 기여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체조 모임과 정신건강 모임이 열렸다. 정신건강 모임에 정신건강 전문가가 따로 있지는 않았다. 그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서로 보듬어 주는 자리였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코뮌의 이 소박한 모임이, 경제적 여유가 생긴 후 전문 상담사에게 비싼 돈을 내고 받은 심리치료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정신건강에 대한 대화를 할 때는 전문성보다 공감이 더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뮌 모임의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기 때문에 진정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3개월을 지내고 나자 더 이상 코뮌의 방세를 낼 돈이 없었다. 스트레이는 말 그대로 길바닥에 나앉게 됐다. 코뮌에 공짜로 머물게 해 달라는 부탁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릴 때부터 주변 사람들의 집에 얹혀 지낸 세월이 길었기 때문에, 그렇게 눈칫밥을 먹는 생활은 지긋지긋했는지 모른다. 지금도 스트레이는 남의 신세를 지는 일을 끔찍하게 싫어한다. 친구들에게 생일선물조차 받지 않으려 할 정도다. 생존하기 위해 타인의 호의에 의존해야만 했던 시절의 반동 작용일 수도 있다고 나는 짐작한다.


헤어졌던 첫 여자친구와 다시 사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최소한 교류는 계속 하고 있었을 텐데, 여자친구의 집에서도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한 모양이다. 여자친구는 처음에는 스트레이의 처지를 가슴 아파했다. 그러나 스트레이가 본격적으로 떠돌이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는 스트레이가 스스로 그런 생활을 선택한 것이라고 여기는 듯했다고 한다.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다. 연인 사이가 쭉 유지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스트레이는 자주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시카고에 들를 일이 있으면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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