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8
스트레이가 나를 포함한 친구들과 대화하다가 툭툭 던져놓았던 이야기들을 내가 혼자서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뒤섞인 에피소드들을 이어 붙여 글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이에게 질문을 해 가며 순서를 파악해야 했는데, 스트레이가 노숙을 하던 시절에 대해 쓸 때는 이 일이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시절에 대한 스트레이의 기억에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기억하는 사건들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시간을 두고 여러 번 되풀이해서 이야기해도 항상 일관성이 있고 인과관계도 뚜렷하다. 하지만 사건의 뼈대가 아닌 세부사항은 분명하지 않거나 뒤섞인 경우가 많다. 어떤 일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 잘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서로 무관한 사건들의 경우는 무엇이 먼저 일어났고 무엇이 나중에 일어났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스트레이는 4년 정도 노숙을 하면서 보통 사람이 평생을 살아도 겪지 못할 일들을 한꺼번에 겪었다. 서로 이질적인 사건들이 무질서하게 뒤섞여서 일어났기 때문에, 그 중 무엇이 먼저이고 무엇이 나중인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또 미국 전국을 떠돌다가 마음에 든 지역은 여러 번 찾아갔기 때문에, 어느 지역에서 일어난 일인지는 기억해도 몇 번째로 찾아갔을 때 일어난 일인지는 기억하지 못하기도 한다.
그리고 노숙을 하게 되면 시간의 흐름에 신경을 덜 쓰게 되는 듯하다. 오늘이 며칠인지, 몇 월인지, 심지어는 몇 년도인지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기억이 뒤섞인 데에는 생활이 불안정하고 기복이 심했던 까닭도 클 것이다. 술이나 약에 취해 있던 시간이 많았던 탓도 있다. 많은 노숙인이 당시의 스트레이와 마찬가지로 술과 약물을 자주 사용한다. 소일거리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가장 큰 이유는 아니다. 당장 다음 끼니를 때울 수 있을지, 잘 곳이 있을지 알지 못하는 스트레스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거기에 건강하게 대처할 수단도 없고, 앞으로 생활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도 없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에 스트레이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한 사람의 청자였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빈틈이 있고 순서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은 쓰는 입장에서나 듣는 입장에서나 혼란스럽고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운 대로,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스트레이가 풀어놓은 이야기에 의지해서 글을 거의 완성했다고 생각했던 때였다. 그때 스트레이에게는 불운이지만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스트레이가 삭제했던 페이스북 계정이 누군가에게 해킹을 당해 되살아났고 그 계정을 내가 우연히 발견한 것이다(스트레이는 비활성화가 아니라 분명히 삭제였다고 말했는데, 삭제된 계정조차 남이 되살릴 수 있다니 생각해 보면 무서운 이야기다). 아마 버려진 페이스북 계정들을 해킹해서 보유하고 있다가, 돈을 낸 사람에게 그 계정들로 ‘좋아요’를 눌러 주는 전문 업자의 짓인 것 같았다.
스트레이의 페이스북은 열여덟 살 때부터의 기록이 산발적으로, 그러나 시간 순서대로 남아 있는 아주 귀중한 자료였다. 스트레이는 해킹을 당했다는 사실은 기분 나빠 했지만 내가 게시물을 보는 것은 개의치 않았다. 덕분에 나는 내 글과 스트레이의 기록을 비교할 수 있었다.
스트레이가 말해 줬던 사건들 중 상당수가 페이스북에 실시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 우선 반가웠다. 그리고 그 사건들이 어느 정도의 시간에 걸쳐 어떤 순서로 일어났는지, 수수께끼가 풀렸다는 점도 반가웠다.
예를 들어 스트레이는 자신이 필라델피아의 버려진 고층빌딩에서 6개월간 지낸 적이 있다고 말했고, 나는 그 말을 스트레이가 그 빌딩에 6개월간 쭉 머물렀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페이스북을 보면 스트레이가 필라델피아에서 한 번에 머무른 시간은 길어 봐야 몇 주였다. 그 빌딩은 스트레이를 포함한 노숙인들의 아지트와도 같은 곳이었고, 스트레이는 여러 번에 걸쳐 필라델피아를 찾아갈 때마다 그곳에 머물렀다. 그 시간을 다 더하면 몇 달 정도 되고, 스트레이가 체감한 시간은 실제보다 약간 더 느리게 흘렀기 때문에 그 결과로 6개월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이다.
한편 나는 스트레이의 페이스북을 보며 내 글의 방향 자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관계 때문은 아니었다. 사건이 일어난 순서와 기간을 수정하고 세부사항을 보충하는 작업은 지엽적이고 간단한 편이었다. 그보다 훨씬 중요하고 근본적인 요소는 스트레이의 노숙을 전반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었다.
스트레이는 그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난했기 때문에 노숙 외의 다른 선택이 없었다고, 너무나도 거칠고 고생스러운 생활이었다고 자주 말했다. 자연히 나도 주로 그런 시각에서 스트레이의 노숙 경험을 바라보게 되었다. 스트레이의 인생에서 가장 큰 고난, 드라마틱하지만 어두운 시절이라는 다소 부정적인 관점은 내 글에도 반영되었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당시 스트레이가 남긴 글들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고난과 어둠도 물론 있었지만 반짝이는 순간들도 있었다. 심지어 노숙 첫 해에 스트레이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자신처럼 전국을 떠돌아 보기를 권한다고,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삶이 달라졌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마 페이스북을 액면 그대로 백 퍼센트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리 힘들고 비참할 때에도 괜찮은 척 하는 것이 스트레이의 성격이자 오래된 습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점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도 스트레이의 페이스북을 보며 나는 다소 놀랐고 많은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어떤 사람들에게는 현실일 뿐 아니라 신념인 삶이 그곳에 있었다. 어쩌면 현실과 신념이 복잡하게 뒤엉킨 결과물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단순하게 그려낼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 보면 자신의 노숙에 대한 스트레이의 태도도 항상 일관되지는 않았다. 후회밖에 남지 않았다고 말하면서 그 시절을 생각하는 일조차 우울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노숙을 하면서 많은 일이 일어났고, 그 중 어떤 것들은 아직까지도 스트레이를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악몽이다. 그 때문에 글을 쓰기 위한 질문을 하는 일조차 조심스러울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반대로 멋지고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말하는 때도 있었다.
- 무슨 수를 써서든 절대 다시 가난해지거나 노숙하지 않을 거야.
스트레이는 이렇게 몇 번 말했다.
- 가끔은 돌아갈 수 있으면 돌아가고 싶기도 해.
그러나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스트레이에게 그 시절은 어떤 때는 자기혐오의 원천, 어떤 때는 애정과 향수의 대상이다.
스트레이의 태도가 좀 더 일관되었다면 이야기를 듣는 입장이자 글로 쓰는 입장인 내가 더 편했을 텐데, 라고 실없이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러나 복잡한 마음은 복잡했던 삶의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일 것이다. 그 복잡함을 정리해서, 그러나 지나치게 단순화하지 않고 차근차근 이해해서 전달하는 일은, 한 사람의 삶을 글로 옮겨 공개하는 일을 허락받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몫이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