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 익명의 미국인 이야기 - 12
스트레이는 9학년, 만 열네 살이 되어 고등학교에 갔다. 한국에서는 중학교 3학년에 해당하는 시기이지만 미국에서는 대부분 고등학교를 한국보다 1년 먼저 들어가고 4년 동안 다닌다.
미국에서는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주로 교외에 살고, 도심에는 대개 가난한 사람들이 산다고 한다. 스트레이가 다닌 고등학교는 도심에 더 가까운 다른 학교들보다는 나았지만 그래도 전형적인 슬럼가 학교였다. 백인보다 멕시코계와 흑인 학생이 훨씬 많았다. 스트레이의 학교가 속한 학군에는 작은 백인 동네가 두 개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곳의 부모들은 대부분 그 학교를 피하기 위해서 아이들을 비싼 사립학교에 보냈다.
학교는 슬럼가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인 공공 임대 주택 단지, 소위 프로젝트projects에서 여섯 블록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프로젝트는 갱과 마약상과 마약 중독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서 가깝다는 것은 마약이 풍부하게 공급된다는 뜻이었다. 프로젝트라는 말 자체가 마약 소굴을 뜻할 때도 많은 모양이다.
학교 복도를 걸을 때면 항상 한 학생이 다른 학생에게 마약을 팔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학교 안에서 온갖 마약을 다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학생들이 학교 바깥에 있다가도 마약을 사러 학교에 올 정도였다. 스트레이는 주로 2교시와 3교시 사이에 학교에서 마리화나를 샀다.
스트레이에게는 LA의 멕시코계 슬럼가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지인이 있다. 그 지인은 학교 안에서 마약을 파는 학생을 학생처장이 쫓아가서 바닥에 쓰러뜨리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스트레이는 이렇게 대답했다.
- 내가 다닌 학교에서 학생처장이 그렇게 했으면 아마 학생들한테 두들겨 맞았을 거야.
마약을 파는 아이들은 모두 갱단에 속해 있었다. 스트레이가 다니는 동안 학교에서 총기 사고는 없었지만, 누군가가 주먹다짐을 하다가 사물함에 부딪쳐서 쾅 소리가 나면 다들 총소리인 줄 알고 놀라는 일이 많았다. 싸움은 대부분 서로 다른 갱단에 속한 학생들 사이에 일어났다.
스트레이는 자신이 어릴 때는 슬럼가 아이들이 몸싸움을 많이 했는데, 요즘 슬럼가 아이들은 싸우지를 않고 바로 총질을 해댄다고 가끔 말한다. 이제 여러 슬럼가 학교들은 입구에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학생들에게 투명한 비닐로 된 백팩을 메도록 요구한다. 다만 한두 명의 학생이 불특정다수의 다른 학생들에게 앙심을 품고 아무나 쏴 대는 총기난사 사건은 슬럼가 학교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중산층 백인 아이들이 다니는 교외의 학교들에서 주로 일어난다. 학교도 포함해 슬럼가 전반에서 일어나는 총격 사건은 주로 갱단들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학교 시설은 낙후되어 있었고 교재도 오래됐다. 교사들은 박봉을 받으면서 일했고 갱을 크게 두려워했다. 대부분은 의욕이 전혀 없었다. 교사를 먼저 때려서 교사와 몸싸움을 하게 되는 학생도 드물지 않았다. 맞서서 잘 싸우는 교사들도 있었다고 한다. 미국에서는 정당방위가 한국보다 폭넓게 인정되기 때문에, 상대방이 먼저 싸움을 시작한 것이 확실하다면 맞서 싸워도 문제될 것이 없다. 학생을 먼저 때리려 드는 교사는 없었다. 만약 그런 시도를 했다면 반대로 학생들에게 몰매를 맞았을 것이라고 한다.
- 너도 선생이랑 싸운 적 있어?
- 아니. 내가 어릴 때 멍청한 짓을 많이 하긴 했지만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았어.
학교에는 항상 경찰이 근무하고 있었고 그런 ‘멍청한’ 학생을 체포해 갔다.
만 열네 살이 된 스트레이는 비로소 합법적으로 일을 하고 돈을 벌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구한 아르바이트는 공원에서 운동경기장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미식축구 필드에 땅을 파고 골대를 세웠다. 축구 필드를 정리하고 골대를 세웠다. 야구 필드의 베이스를 관리했다. 가끔은 축구와 소프트볼 심판을 봤다. 어린 나이에는 좋은 일자리였고 시급도 최저임금보다 많았다. 그래도 특별히 재미있거나 보람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저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일했다고 한다.
친구들과 모여서 놀 때는 환각제인 엑스터시를 했다. 엑스터시를 하면 어떤 기분인지 스트레이에게 묻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느낌이 들었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원래의 심한 우울증이 돌아온다고 대답했다. 스트레이가 어린아이 때부터 앓아 왔던 우울증과 불면증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깊어지고 있었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술도 엄청나게 마셨다. 스트레이는 어른이 된 지금도 술이 세지만, 십대 때는 그보다도 더 셌고 숙취도 몰랐다.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서너 시간 잔 후 곧바로 스케이트보드를 타러 나가도 멀쩡했다.
나중에 고등학교를 자퇴한 후에는 사이드워크 슬램스Saidewalk Slams라는 폭탄주를 즐겨 마셨다. 40온스(약 1.2리터) 맥주를 3분의 1에서 절반 정도 마신 후, 거기에 포 로코Four Loko라는 싸구려로 악명 높은 술을 섞는 것이었다. 길에서 맥주를 마실 때는 흔히 맥주병을 갈색 종이봉투에서 꺼내지 않은 상태로, 병 주둥이만 봉투 바깥으로 내놓고 마셨다고 한다. 길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 엄밀히는 불법이기 때문에 술병을 가리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주변에 보는 사람이 없어도 다들 습관처럼 그렇게 하는 모양이다. 나중에 생활이 안정된 후에는 40온스 맥주에서 멀어졌고, 포 로코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마리화나도 자주 피웠다. 종종 다 같이 마리화나에 취한 채로 치킨을 먹으러 갔다. 마리화나를 피우면 배가 고파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스트레이의 집에서 몇 블록 거리에 있는, 한 흑인 가족이 운영하는 이름 없는 가게였다. 스트레이와 친구들은 프로젝트의 한가운데, 슬럼가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에 있는 그 가게의 야외 테이블에 항상 자리를 잡았다. 나쁜 일은 한 번도 겪지 않았다. 그래도 그 슬럼가의 주민이 아닌 이상은 그러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스트레이는 슬럼가에서 흑인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들의 치킨이 가장 맛있다고 항상 이야기하고, 지금도 가끔 테이크아웃을 하거나 배달 앱으로 배달시켜서 먹는다.
스트레이는 프로그래밍을 계속 배웠다. 항상 공립도서관 인터넷을 통한 독학이었다. 고등학교에서는 웹 프로그래밍에 대한 수업을 하나 들은 것이 전부였다. 출석을 4분의 1도 하지 않은 채로 나중에 학교를 자퇴하게 됐지만, 출석할 때마다 아주 잘 했기 때문에 자퇴한 뒤 A를 받았다.
시험을 아무리 잘 봤어도 무단결석을 너무 많이 했고,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도 들켰기 때문에 스트레이는 결국 소년법원에 가게 되었다. 소년법원 판사들은 아이들의 태도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또 태도가 나쁜 아이에게 불이익을 줘서 본보기를 보이기를 좋아했다. 스트레이는 대답 뒤에 존칭인 ‘sir’를 붙이지 않았다가 판사에게 한 마디 들었고, 공손하게 굴어야 자신에게 이롭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스트레이는 학교에 잘 나가고 마리화나를 끊는 조건으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지키지 못해서 소년원에 갔다. 약물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리화나를 계속 피운 것은 멍청한 짓이었다고 스트레이는 말한다.
2020년 1월 1일부터 시카고가 있는 일리노이 주에서는 마리화나가 완전히 합법이 되었다. 그러나 스트레이는 그보다 훨씬 전에 마리화나에서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어릴 때는 속이 메슥거릴 때 마리화나를 피우면 진정되었기 때문에 자주 피웠지만, 이제는 마리화나를 피우면 그냥 피곤하고 배가 고파질 뿐이라고 한다.
(*예전에 '스트레이, 미국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글을 수정 보완해서 다시 연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