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 가구를 하나 사서 만들어 볼까...? 하니 아내가 "저주받을 손재주 가지고 괜한 낭비하지
말고 완제품 사시오" 합니다..
"손재주"라....손재주라...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납니다.
어느 초등학교나 다 그렇겠지만 각 학년에서 '특히' 대표적으로 우습게 보이고 놀림도 받는 아이가 있지요.
제 국민학교 시절에도 그런 아이가 있었지요.
저는 버스가 하루에 세번만 다니고 학교까지 가려면 4km나 걸어야 하는 시골에서 그때는 국민학교, 지금은 초등학교를 다녔는데 희안하게 가마가 이마 윗 근처에 하나 더 있어서 항상 그쪽 머리가 위로 솟아 있던 아이가 있었어요. 소가 핥아서 그렇다고 농담을 하곤 했지요.
이름도 다소 촌스러운데다 집도 '유별나게' 가난한터라 놀림을 많이 받았죠. 그 아이는 저희 옆동네에 있던 엽서에서나 볼 법한 언덕배기의 작고 고풍스런 장로교회 바로 아래 비탈밭의 정말 다 쓰러져가는 흙집에 외동아들로 살았어요.
아버지는 동네에서 유명한 주정뱅이에 주사가 심했고 엄마는 인상부터가 순종적인 분으로 거의 말이 없었는데 그 친구네 집에 놀러가면 그 작은집이 놀랍도록 깨끗했던 기억입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아이들과는 다르게 옷은 허름하지만 남들 이상으로 깨끗하게 입고 다녔고 그때는 잘 안 씻어서 목이나 손에 때를 달고 겨울에 손등이 쩍쩍 갈라지는 아이들이 꽤 되었는데 그 아이는 손은 텄지만 때는 달고 다니지 않았던것 같아요.
아마 그 아이보다 그 아이 엄마의 힘이겠죠.
그리고 그 친구는 누가 뭐라든, 무슨 짓을 하든 화를 내는 경우가 없었는데 지능에 문제는 없었다고 들었으니 아마도 성격이 그런 성격이었겠지요. 그 아이랑 저는 꽤 오랫동안 짝이었는데 반편성이 거의 없는 시골 학교라 많이 친한편이었죠.. 저나 그 친구나 공부에는 전혀 관심 없었지만 그 친구와 제가 다른 점은 저는 멍하니
공상을 하며 시간을 '낭비'하는쪽이었는데 반해 그 친구는 항상 뭔가를 쪼물딱 쪼물딱해서 뭔가 특별한것을 만들어 내곤 했다는 점입니다. 한번은 하루종일 다른 수업중에도 뭔가 뚝딱대고 만들었는데 하교할때 보니 물레방아더군요. 그런데 그 물레방아는 단순히 모형처럼 물레방아만 만들어진게 아니라 물레방아 바퀴살을
선풍기날개처럼 휘게 만드는 식의 대단히 창의적인 방식으로 '조합'이 되어 있고 너무 정교해서
선생님 조차도 놀랍다며 뭣도 만들어 봐라 뭐 해봐라. 앞으로 조각을 하든지 뭘 하든지 해도 잘하겠다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선생님도 그 이상은 힘들었겠죠.
사실 손재주라 할라치면 그정도는 해야겠죠.
그 후에도 몇몇 신기한 예를 들면 같은 자동차를 만들어도 뭔가 창의적이다 할법하게
다른 방법으로 그런걸 만들곤 했는데 친구들은 놀리는것 하고는 별개로 그 아이의 솜씨에 많이
감탄을 하곤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처럼 '영재'라는 단어를 쉽게 쓸 수 있다면 그야말로 영재로 보이는
그런 아이였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5학년때 윤봉길 의사와 이름도 비슷하고 얼굴도 비슷했던 아주 좋았던 선생님이 계셨는데 무슨일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교실 앞에서 이 아이의 따귀를 때렸고 아이는 떼구르르...화단을 굴러서 떨어졌어요. 그때가 딱 지금 처럼 쌓인 눈이 얼어 있던 방학중 비상소집일 즈음이었던가 봐요.
저는 우연히 교실에 있다 창너머로 그 장면을 봤는데 교실로 돌아온 아이가 전에없이 서럽게 막 울더군요.
그 친구는 더 큰 일에도 요즘말로 평상심을 잃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무척 놀랬는데 그 친구가 살던 동네의 다른 친구가 전해준 이야기로는 그 며칠전 그 친구가 <보는 앞>에서 술취한 아버지가 흉기로 어머니를 찔렀고(사실 제가 들은건 더 잔인하지만) 돈이 없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대충 치료받고 집에 계시는데 쌀씻고 밥짓고 모든 병수발을 혼자 다 한다더군요.
아마 서러웠을겁니다. 단순히 뺨을 맞아서가 아니라 내 인생의 시작은 왜 이 모양일까? 하는 정도의 자괴감과 회한이 들었을겁니다. (그리고 웬만한 공감이 될 나이가 되었을때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성장 수준을 생각해볼때 그 아이가 그때 느꼈을 공포가 얼마나 컸을지도 생각해봅니다.)
트라우마라는건 그런때 생기는거지요.
지금 그 나이의 아이들을 보면 어리고 연약하기 그지 없는데 그 충격과 고통은 말만 못할뿐이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을겁니다. 거기다 좋기만 했던 선생님이 따귀를 때렸으니 얼마나 놀랐겠어요. 사실 그때 더 위로를 했어야 했는데 그 시절 애나 어른이나 '정서적'관점은 무시하기 마련이라서 그런식의 Care는 요즘에 비할일이 아니죠. 그 이후에 그 아이가 돌변해보이지는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심리적으로는 상당히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어쨌거나 제가 외지로 중, 고등학교를 가고 정말 어쩌다 소식을 간간히 듣곤 했는데
대학 휴학을 하고 군대 가기 직전에 들은 마지막 소식으로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보일러 기사'를 한다고 했습니다. 보일러도 나름 손재주가 필요한것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으니 그 아이의 재주가 얼마나 아깝던지 그 아이와 같이 공고에 입학했던 다른 친구도 그 친구 생각할때마다 그 재주가 너무 아깝더라는 말을 몇 번이나 했던게 기억이 납니다.
흔히 '달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 틈틈히 재주를 살리는 사람들도 있으니 정말 재주가 있었다면 더 큰 일을 했을 수도 있겠다 할 수도 있겠지만 미루어 짐작컨데 그런걸 이겨내는 것 자체가 큰 모험이요 그러기에는 너무나 어릴때부터 너무 어려운 상황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말콤 그레드웰의 아웃라이어를 보면 비범한 천재는 개인의 역량만큼 중요한 '사회'나 '가정'의 역할을 통해 완성된다는 요지로 말하던데 '랭건'이라는 불세출의 천재도 결국 그 장벽을 못이기고 범인이 된것처럼 그 친구 또한 사회나 가정이 조금만 더 따뜻하고 세심하게 보살펴줬더라면 우리는 더 뛰어난 발명품, 조각품, 예술작품을 볼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물론 그 친구의 솜씨라는게 정말 영재까지는 아닐 수 있지만 그 친구처럼 '나름의 탁월'을 '최고의 탁월'로
만들지 못하고 사그라드는 솜씨와 재능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까 생각해보면 참 아깝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도 그렇고, 회사도 그렇고 때로는 '잉여감'이 있는 재능이 얼마나 큰 재산이 될지 한번 쯤
생각해볼만도 하더라는...그런 생각이 듭니다
문득, 사무실 창문 너머에 그 친구가 굴러떨어진 화단같은 언덕이 '눈쌓인 채' 있는걸 보니
더더욱 생각이 나네요.
*) 회사 게시판에 올린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