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완연한 중년의 감정 변화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바람처럼 사라지기를 벌써 몇 달째예요. 대부분 우울함이 실려오고 체념을 받아 가지요.
20대 초 중반, 제 인생을 열렬하고 강렬하게 압도했던
연인과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지고 나서 미친 듯이 일을 했어요. Arbeit macht frei, 노동이 그대를 자유롭게 하리라는 격언이 마치 저를 두고 한 말처럼 그랬죠.
그리고 일을 안 하면 걸었어요. 길가에 피는 꽃에도 추억이 묻어 있을법한 강원도의 산골 구석구석을 걸으며 종종 슬퍼하다가 또. 미친 듯이 일을 했어요. 순간순간 엄습하는 기억들은 종종 제정신을 온통 지배했고 이러다 정말 죽는 것 아닐까? 스스로 자각할 즈음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 항구에 서 있더군요.
아.. 노동이 나를 자유롭게 하리라.
얇은 로프에 줄줄이 매달린 갸프라고 불리는 어구들을 다듬는 어르신에게 저를 자유롭게 해주십사 요청 드렸어요.
몇 번의 거절 끝에 배를 타고 너울거리는 파도에 매달려 정신없이 일을 했어요. 사랑보다 더 깊은 자기애.
자칫 잘못하면 다치거나 바다에 빠질 위기에 처하거나 그보다 못하지만 손이 얼얼하게 힘을 줘야 하는 어구와 씨름을 하고 보니 저를 그토록 괴롭히던 연인의 기억은 오징어가 뿌린 먹물에 스며들 듯 사라졌어요. 마치 사랑의 상실이 바닷물에 빠져 죽는 것보다 낫다는 듯 말이죠.
그렇게 하고도 죽는 것보다 더 죽을 것 같은 기분을 이겨내는 데 일 년이 걸렸어요. 그 번민의 정체는 당연히 '상실'이었고
하루키가 말한 상실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 믿고 살았죠.
2.
수십년 후, 더 잔인하고 괴로운 상실이 몰려왔어요.
어떻게 열병을 앓듯 나이를 앓을 수 있을까?
어쩌자고 사랑의 열병보다 나이의 상실이 더 괴로운 걸까?
문득문득 배신감을 느끼다 갑자기 숨을 헐떡거리며 일어나 냉수를 마시고 겨우 진정을 하고는 또 노동이 나를 자유롭게 할 것을 떠 올렸어요. 그런데 할 게 없군요. 출근을 하고 오늘도 지방을 차곡차곡 채우는 의자에 앉아 건들거리다 집에 옵니다. 그리고 또 숨을 헐떡 거렸죠.
그렇게 오춘기가 폭풍처럼 밀려왔어요.
그러고는 저를 사정없이 갈기갈기 찢어놓고는 저녁 슬그머니 지는 땅거미처럼 사라지더군요.
아... '존나' 힘들었어요.
오춘기... 그냥 '존나' 힘들어요.
결국 이겨내게 마련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