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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Nov 17. 2020

꾸뜹 미나르 - 이슬람과 힌두

델리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즈, 꾸뜹 미나르

델리 여행자 거리 빠하르간즈


인도 수도 델리는 행정청이 있는 뉴델리와 옛 유적지가 남아 있는 올드델리를 중심으로 11개 구역으로 나눠져 있다. 넓고 다채로운 국가 인도를 여행하는 첫 관문으로 델리에 도착한 여행자들은 올드델리와 뉴델리 사이 여행자 거리로 불리는 빠하르간즈(Pharganji)에 몰려간다. 그곳에서 잠시 머물며 인도가 어떤 나라인지 앞으로의 여행이 어떨지 오리엔테이션을 몸소 겪는다. 다른 여행자들과 친구가 되어 그들과 인도 여행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빠하르간즈는 뉴델리역에서 가까워 교통도 편리하고 근처 시장에서 여러 생필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으며 저렴한 숙소도 많아 젊은 배낭객들에게 무척 인기가 많다. 빠하르간즈는 뉴델리 기차역에서 매우 가까워 도로 하나를 건너면 바로 갈 수 있다. 호객꾼이나 브로커들이 길을 건너려는 사이 접근하여 택시나 오토릭샤를 타야 한다고 해도 모두 무시해야 한다. 환전을 도와준다고 해도, 여행 예약을 해준다고 해도 모두 거절해도 좋다. 단, 정중하게.


델리 시내 풍경


델리에 머물 때 시내를 관광한다면 단연 올드델리의 유명 관광지 레드 포트를 제일 먼저 선택한다. 레드 포트 왕궁은 타지마할을 건설한 무굴 왕조(Mughal Empire) 제5대 황제인 샤자한이 10년에 걸쳐 지은 성이다.  세포이 항쟁 때 영국군과의 전투에서 성곽 많은 부분이 허물어졌지만, 아직 거대한 성벽과 궁전이 남아있다. 그것만으로도 당시 위대한 무굴제국을 느낄 수 있다. 레드 포트라고 이름이 붙여진 것은 성벽을 쌓은 재료가 붉은 사암이라서 성벽 전체적으로 붉게 빛나기 때문이다. 특히 석양에 레드포트의 붉은색은 더욱 강렬해진다. 


올드델리 델리 포트 파크


올드델리 레드포트. 성곽 전체가 붉은빛이 감돈다. 


델리 남쪽으로는 꾸뜹 미나르 유적군이 볼만하다. 이곳은 13세기 인도 최초 이슬람 왕조 노예 왕조(Slave Dynasty)의 중심지였다. 술탄의 노예였던 쿠트브 웃 딘이 델리를 수도로 하는 이슬람 정권을 세웠고, 힌두교 국가 인도를 점령한 이슬람교도 지배자로서 델리에 이슬람 사원 모스크와 미나르를 세웠다. 노예 왕조는 채 100년을 채우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졌지만, 그 후 인도 대륙은 투르크와 아랍계 이민족들이 침입하여 이슬람 국가가 지속적으로 세워졌다. 

꾸뜹 미나르 유적군에는 꾸뜹 미나르를 비롯해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 알라이 미나르 등 유명한 유적이 있다. 유적지 안 정원은 공원으로 잘 조성되어 인도인들의 피크닉 장소로 인기가 높아 주말에는 가족 나들이하는 사람으로 붐빈다. 종종 젊은이의 데이트 장소로 애용되기도 한다.


꾸뜹 미나르 유적군 정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피크닉을 온다.


알라이 미나르는 꾸뜹 미나르 북쪽에 있는 미완성의 탑이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꾸뜹 미나르와 같은 모양으로 높이는 2배인 웅장한 탑이 되었겠지만, 탑을 지은 사람이 죽는 바람에 탑은 약 25m 정도밖에 완성되지 못했다. 그의 사후 어느 누구도 공사를 진행하지 않아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다.     


알라이 미나르(Alai Minar)




승리의 탑 꾸뜹 미나르


다음 코스는 꾸뜹 미나르였다. 술탄 왕조의 궁전답게 잔재만 남은 건물이라고 해도 기둥과 벽에 새겨진 조각은 화려하고 정교하여 한참 동안 눈길을 사로잡았다. 건물마다 새겨져 있는 코란 문구는 글자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었으며, 창문과 벽면마다 건물을 장식한 부조들은 모두 예술품이었다.  폐허가 되어 일부만 남겨져 있는데도 아름다운데, 옛 시대 궁전이 온전하게 서 있을 때는 얼마나 휘황찬란했을까! 


잘 정돈된 수목 사이 잔디를 밟으며 따가운 햇볕을 손으로 가리며 가이드를 따라 걸었다. 그러자 붉은 거대한 탑이 나타났다. 형태가 무슨 탑 같았는데 허물어져 있어도 매우 위압적이었다. 가이드는 인도 최초의 모스크인 꾸와뜨 울 이슬람 모스크라고 했다. 이슬람의 힘이란 뜻으로 델리를 점령하고 많은 힌두교 사원을 파괴하고 그 잔해를 모아서 이 모스크를 세웠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인도 힌두 극우세력들이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외벽이나 미나레트를 훼손시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꾸뜹 미나르 유적군


가까이 다가가자 멀리서도 붉고 화려하게 장식된 높은 탑이 보였다. 꾸뜹 미나르는 이슬람 왕조의 술탄 꾸듭이 델리의 힌두 왕조를 패배시킨 기념으로 건설한 승리의 탑이라 했다. 높이가 무려 73m에 이르렀다. 1층은 힌두 양식으로, 2,3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만들어져 있고 화려한 장식들이 잘 보존되어 당시 힌두와 이슬람 문화의 융합된 기교를 알 수 있다. 

말로는 다른 문화의 융합이라고 하지만, 사실 이슬람 노예 왕조가 당시 인도를 정복하고 힌두교 사원을 허물고 그 돌로 쌓아 올린 이슬람교 승리의 기념탑이었다. 힌두교에게는 약탈과 패배의 상징일 뿐 융합은 있을 수 없다.


꾸뜹 미나르 형태는 이름처럼 미나르 모습을 띠고 있는데, 미나르란 모스크의 부수적인 건물로 알라에게 예배할 때 시간을 알릴 때 이용하는 탑으로 터키어 미나레(minare)에서 유래했다. 굳이 힌두교 잔재를 찾으려면 하부 기단에 사용된 돌이 무너진 힌두교 성전이라는 것 밖에 없다. 


꾸뜹 미나르(Qutub Minar)

인도에서 이슬람과 힌두교의 갈등은 해묵은 보복전이다. 

상대방 사원을 훼손하는 것부터 버스나 열차 테러까지 서슴지 않고 저지를 정도로 서로에 대한 원한이 깊다. 서로 상대편이 자기를 공격했기 때문에 복수하는 것뿐이라고 하며 그 시기를 그들도 모르는 먼먼 옛날 옛적 이야기부터 꺼낸다. 하지만, 다들 당한 이야기만 주장할 뿐 상대에게 해를 끼친 이야기는 말하지 않는다.  요즘은 정치가 개입되어 극우세력과 과격세력을 부추기며 서로를 증오하고 편을 갈라 자기 내 집단 세력을 공고히 한다.


굳이 서로 다른 두 종교의 특색을 꺼내자면 힌두교가 여러 신을 모신 다신교라면 이슬람교는 유일신 알라만을 믿는 종교다. 다양한 신을 모신 힌두교는 코끼리, 원숭이, 소 등 여러 동물과 자연을 숭상하며 신도 인간처럼 감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교의 알라신은 절대적 권능과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신성을 갖추고 있다. 그래서 사원도 힌두교 사원은 형형색색 다양한 모습으로 치장되는 반면 이슬람 사원 모스크는 순백색에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늬만 있다. 


인도의 종교별 인구 분포는 힌두가 80%로 대다수고 무슬림은 13%, 기독교가 3%, 시크교가 2%, 나머지 기타 종교다. 힌두교가 절대다수이고 표가 권력인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은 힌두교인들이 거머쥐고 있다.

즉 힌두교인들이 먼저 힌두의 핵심인 종교적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힌두는 생명이 있건 없건 모두가 신의 창조물로 가치가 있고 자신과 우주를 구분하지 않았다. 인도에 남은 무슬림들은 이슬람 국가 파키스탄 대신 인도를 선택하고 남은 인도를 사랑하는 인도 국민이다. 가끔 카슈미르의 정치불안과 파키스탄과의 대립으로 인도 내 무슬림들의 입지가 불안한데 인도 정치 집단이 그들을 궁지에 몰아넣고 충동질하여 자기 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이런 일은 국민들이 경계해야 한다. 힌두는 오랜 역사 속에서 다른 종교에 대하여 관대하고 포용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꾸뜹 미나르 앞 녹슬지 않는 철기둥(Iron pillar)


꾸뜹 미라르 앞에는 유명한 철기둥이 하나 있다. 표지석을 보자면 4세기에 만들어진 유물로 높이는 7.21m이며 철기둥을 덮고 있는 보호막으로 철이 녹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지금도 이 철기둥의 성분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고대 국가에서 아직까지 녹슬지 않는 철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운 일이다. 

수천 년 지나도 녹슬지 않는 미스터리한 철기둥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또 있다. 기둥을 등에 대고 양팔을 뒤로 감싸 안을 수 있다면 그 사람에게 신이 행운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힌두를 믿지 않는 외국인에게는 인도로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한다. 지금은 철책으로 막아놔서 그런 재미있는 실험을 할 수 없지만, 그 말이 맞다면 나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뒤로 안을 수 있다면 행운을 가져다준다. 그들은 어떤 행운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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