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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Oct 05. 2020

타지마할 Taj Mahal

이슬람이 표현하는 사랑과 죽음에 대한 또 다른 인식

이슬람이 표현하는 거대한 사랑, 타지마할


아그라 역에 도착하니, 많은 릭샤왈라와 택시 운전사, 그리고, 그들의 브로커들이 몰려왔다. 그들은 외국 관광객을 실은 델리발 특급 사타브디 익스프레스를 기다렸다가 개찰구에서 관광객이 나오면 한 명씩 흥정하며 역을 빠져나갔다. 

오토릭샤나 택시를 소유한 사람과는 흥정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타지마할을 관광할 때 매연이 심한 오토릭샤나 택시를 피해 달라는 안내를 미리 공지받았기 때문이었다. 심한 대기오염으로 타지마할의 화려한 대리석은 부식현상이 생기고, 돔의 일부에서는 탈색까지 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심지어, 심한 스모그와 해이즈 때문에 레드포트에서 타지마할이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인도 UP 주 정부에서는 대기오염에 의한 타지마할의 훼손을 부정하며 오히려 자치 정부의 대기오염 방지 정책을 홍보하였다.  


아그라 포트 앞에 서있는 마차


여러 왈라 중 특이하게 한국말로 ‘싸요’라고 말하는 왈라가 있어서 그를 하루 동안 고용하여 타지마할을 돌아보기로 하였다 왈라는 자신의 이름을 '라주'라고 소개하였다. 아침부터 하루 손님을 일찍 잡았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은 밝은 표정이었다. 그는 페달을 열심히 밟으며 타지마할에 대하여 이야기했다.  


타지마할은 인도 사람들도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건축물이다.
샤 자한 왕은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더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지 못하도록
공사인부의 손목을 잘랐다고 한다. 
타지마할이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지금보다 훨씬 호화롭고 아름다웠어.
하지만 영국이 인도를 침략했을 때 타지마할의 황금 돔부터
벽면에 박힌 많은 보석들을 빼어갔다.


그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설명하려 했지만, 이제 슬슬 사이클 릭샤를 끄는 것에 힘이 부치는지 숨을 헐떡이며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달리기만 했다. 


성문 입구에서 바라본 타지마할


타지마할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성곽의 문틈 사이로 언 듯 타지마할의 위용을 보았는데, 그 찰나 아찔한 느낌이었다. 타지마할의 웅장함은 기대 이상이었다. 한 뼘의 문틈으로 보이는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대리석 건물. 정면에 있는 분수 길을 따라서 그 타지마할로 서서히 다가가는 동안에, 햇볕에 반사되어 눈이 부신 타지마할의 규모는 고개를 좌우로 돌려도 그 건물이 시야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 웅장함과 화려함에 압도되어 조심스럽게 구조물을 배회하였다.


연못에 비친 타지마할


타지마할에서 요코하마 대학생인 리에와 마사에와 일행이 되었다. 그들은 인도 전통옷 사리를 입고 있었다. 여기 타지마할에서 돌아다닐 때 입으려고 일부러 바라나시에서 사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미리 타지마할에 얽힌 이야기를 많이 읽었는지 나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었다. 

타지마할의 주인공이 ‘궁전의 보석’이라는 뜻의 뭄타즈 마할이며,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이에 몹시 슬퍼한 왕은 세상에서 가장 화려한 무덤을 만들기로 했었다는 것이다. 타지마할 안에서 걸을 때도 순백색 대리석과 완벽한 대칭 구도의 건물에 압도되었으며, 가장자리에 서있는 네 개의 첨탑은 아름다움에 위용을 더했다. 리에가 걸어가며 말했다.

타지마할을 지은 샤 자한 왕은 자신의 아들에게 붙잡혀
8년 동안 아그라 포트에 갇혀 지내다 세상을 떠났데.
저기 야무나 강을 사이에 두고 아그라 포트에서 하염없이 타지마할을 보기만 했데. 자신의 여자에 다가가지 못하고 마냥 바라보기만 해야 했던 왕이 왠지 슬프다.
타지마할에서 바라본 정원


기단 네 모서리에 솟은 미나레트. 높이가 42m에 이른다.


순백의 대리석으로 만든 미나레트는 건물 중심으로 좌우대칭 솟아있다.


타지마할의 벽면은 모두 대리석을 파내어 색깔이 아름다운 돌이나 보석으로 채워 넣었는데, 꽃과 잎사귀의 문양으로 벽면 전체를 치장했다. 상감기법으로 기하학적 무늬를 넣은 것으로 우리나라 고려창자와 같은 기법이다. 우리나라가 도자기 표면에 아름답게 새겼다면, 타지마할은 이 건물 전체가 모두 상감기법으로 꾸몄다. 


타지마할 묘 건물과 부속 모스크
타지마할 정문에는 남북과 동서로 가로지른 수로 정원이 있다.


아그라 포트는 타지마할을 지은 타지 왕이 그의 아들에 의해 유폐된 채로 타지마할을 하염없이 지켜보기만 하였던 성이었다. 성곽이 웅장하고 붉은색의 돌이 쓰여 있어서 레드 포트라는 이름이 붙기도 했다. 아그라 포트는 높이 20m, 길이 2.5km의 이중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해자도 설치되어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성안은 다양한 크기의 궁전으로 정원과 분수대가 화려하게 조성되어 있고 붉고 벽과 하얀 대리석 벽의 건물들은 아름다웠다. 아그라 포트에서 바라보이는 타지마할 또한 하얀 대리석의 건물과 그 주변의 첨탑이 더욱 애련한 감수성으로 아름다웠다.  


이티마드 우드 다울라 묘


타고르 시인은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찬미하는 시를 지었다.


어느 날 흘러내린 눈물은 영원히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맑고 투명하게 흐르리라.
그것이 타지마할이라네.

오, 황제여! 그대는 타지마할의 아름다움으로
시간에 마술을 걸려 하였다네.
그대는 경이로운 꽃다발을 짜서 
우아하지 않은 주검을 죽음을 모르는 우아함으로 덮어버렸다네.

무덤은 자기 속으로 파묻고 뿌리내리어 
먼지로부터 일어나 기억의 외투로 
죽음을 부드럽게 덮어주려 한다네.




이슬람의 죽음에 대한 또 다른 표현


타지마할을 건설한 타지 왕의 아들 아우랑제브는 형제들 간 동족상잔을 겪고 아버지마저 유폐시키고 왕위에 올랐다는 점 때문에 무굴제국을 철저한 이슬람 제국으로 만들며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웠다. 이로 인하여 힌두교를 포함한 불교, 자이나교 등 여러 종교의 사원은 파괴되었다. 그나마 이슬람 이외의 사원이 남아있는 것은 도시 외곽 황무지에 있어 눈에 띄지 않았던 동굴 사원뿐이었다. 

다른 종교에 적대감을 가진 아우랑제브 황제는 충실하게 이슬람교도로 살았으며 죽어서도 매우 검소한 무덤에 안치되었다. 

이슬람교도에게 있어 죽음이란 인간 세상에서 알라 세상으로 가는 관문으로
장례식은 매우 간소하고 단순하다.


 설령 그가 부자든 거지든 죽으면 모두 알라 앞에서 동등한 모슬렘이기에 똑같이 공동묘지에 매장된다. 이슬람 국가 국왕이 생전에 아무리 화려하게 살았어도 죽어서 매장될 때는 여느 사람들과 같이 관에 담기지 않고 양탄자로 둘둘 말려 공동묘지에 일반인들과 같이 묻힌다. 어떤 비석이나 기념 조각 없이 다만 흙더미 앞 작은 돌에 그의 이름만 새겨질 뿐이다. 아우랑제브 황제의 무덤은 이슬람 창시자인 모하메드의 옷과 수염과 같이 안치되었고 이에 많은 모슬렘이 순례차 방문한다.


오늘 뉴스에도 쿠웨이트를 통치했던 에미르 이슬람 군주의 조촐한 장례식이 해외 토픽으로 나왔다. 막대한 부를 갖고 있음에도 죽은 후에는 일반인이 매장되는 공동묘지에 소박하게 묻혔다는 기사다. 장례식도 간소하게 차려졌고, 유해는 평소 입던 차림 그대로 천에 쌌으며, 관도 따로 없었다고 한다. 묘지도 흙이 얕게 북돋았을 뿐 커다란 비석이나 장식이 없었다. 무슬림에게 죽음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종교적 가르침을 철저하게 따른 것이다. 


쿠웨이트 군주 에미르 사바의 무덤. 공동묘지 한 뼘 무덤만 남겼다. [출처 AFP 연합뉴스 사진, 2020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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