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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n 29. 2021

성남누비길  Epilogue 3.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_그 뒷 이야기_청계산 산림욕장

청계산에 산사태가 발생했습니다.


청계산은 청룡이 산기슭에서 승천했다 하여 청룡(靑龍)산이라고 불렀다. 풍수지리학적으로 청룡이 승천한 청계산을 좌청룡, 군포에 있는 수리산을 우백호로 부른다.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있는 주인은 청계산과 수리산 사이 해발 629m의 관악산이다. 

수십 개 바위 봉우리가 들어찬 관악산의 모습은 보기에도 위풍당당하다. 일만 이천 봉 금강산과 비교되어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관악산이 바위가 많은 악산이라고 하면 청계산은 흙산, 즉 육산(肉山)으로 불린다.


청계산에서 바라본 관악산

산 정상 노두 바위를 제외하면 비옥한 흙으로 덮인 청계산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나 숲이 깊다. 산 계곡마다 깨끗한 물이 흐르니 청룡산을 청계(淸溪)산이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청계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망경대로 해발 618m에 이른다. 고려가 멸망한 후 고려 유신 조견 선생이 이곳에서 고려의 옛 수도 개경을 바라보았다고 해서 망경(望京)대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곳에 산사태가 발생했다.

청계산 주봉 망경대


망경대에서 흙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2018년 8월 마지막 주 비가 여러 날 세차게 내리던 날 밤이었다. 새벽에 청계산에서 산사태가 발생했다고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청계산 정상 망경대에 자리 잡은 군부대에서 당직실로 다급하게 연락했다. 

날이 밝자마자 모두들 등산로를 폐쇄할 짐을 챙기고 산으로 올라갔다. 며칠 몇 날을 그리 폭우가 내리더니 기어코 물 머금은 흙이 무너져 내렸다. 청계산은 흙이 많아 산길 걷는 사람 발을 편안하게 해 준다고 했는데, 폭우에는 흙산이 산사태에 취약하다. 


이른 아침 산사태 발생 후 모습


망경대 아래 공터에는 산기슭에서 쓸려내려 온 토사와 바위, 그리고 나무 여러 그루가 쓰러져 나뒹글고 있었다. 대략적으로 피해 사항을 보니 유실된 토사가 160㎥되고 훼손된 수목이 15주가량 되었다. 성남누비길 제6구간 청계산길 망경대 하부 등산로도 진흙에 일부 구간 파묻혔다. 비 오는 날 새벽에 청계산에 오르는 이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산사태가 지나간 흔적은 처참했다. 뿌리 뽑힌 나무는 부러져 쓰레기처럼 널브러져 있고 사방이 진흙 투성이었다. 토사가 쓸려내려 가고 남은 산기슭에는 바위가 드러났다. 폭우가 할퀴고 지나간 생채기다.


산사태 후 널브러진 수목


풍수지리는 자연을 사람 몸과 같다고 한다. 땅속 암반은 몸을 지탱하는 뼈요, 지표의 흙은 피부고 지하수는 피, 초목은 털로 비유한다. 산사태가 일어나 흙이 쓸려내려 가 바위가 드러난 모습은 흡사 피부가 벗겨져 뼈가 드러난 생채기다. 더구나 시뻘건 진흙이 줄줄 흘러내리니 마치 핏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가 상처를 입고 신음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땅은 인간 이전 태초부터 존재하였으며, 생명이 자라는 만물의 근원이 된다. 동양의 풍수지리나 그리스 신화의 가이아든 지구를 살아 있는 한 생명체로 바라본다. 자연을 대함에 있어서 사람을 대하듯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이며 살아있는 존재로 대한다. 


청계산 등산로 따라 훼손된 숲


멀리서 보는 청계산은 아름답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 따라 속살이 파헤쳐져 훼손된 곳이 많다. 특히 이수봉 정상에서 망경대와 매봉으로 오가는 등산로 구간이 많이 훼손되었다. 사람들 이용 빈도가 높을수록 숲길은 침식되고 토사는 유실되어 세굴 현상이 심각해진다. 흙이 쓸려내려 간 곳은 암반이 고스란히 노출되었다. 

인간은 자연에 있어서 훼손의 요인으로만 간주될 일인가? 

물론 사람이 없어도 태풍이나 산사태로 나무가 쓰러진 자리에는 다시 어린 나무가 새롭게 자란다. 나무가 못 자라면 풀이라도 돋아서 숲은 다시 푸름을 회복할 것이다. 미국 국립공원 옐로스톤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나 공원 3분의 1이 완전히 타버렸을 때 미 공원관리청은 산불진화를 하지 않았고, 불타 흉하게 남은 산에 조림사업도 하지 않았다. 실화나 방화가 아닌 벼락이 내리쳐 시작한 산불이라 저절로 꺼지게 놔두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치유할 도록 내버려둔다. 


토사가 쓸려내려 간 등산로에 암석이 노출되어 있다.


그런데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옐로스톤 대형 산불로 소실된 숲 면적은 우리나라 충청남도 면적이다. 우리나라에 그런 산불이 발생해서 그 넓은 면적의 숲이 다 타버려도 자연스럽다고 하여 놔둬야 할 일인가? 온난화로 소나무재선충병이나 참나무시들음병이 확산되어도 자연의 섭리라고 방치해야 하나? 

그러면, 자연에 대하여 인간 개입이 어느 정도까지 용인되어야 할까? 그에 대한 대답은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오겠지만, 구약 창세기 편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기 전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
비로소 사람을 지으시고 신의 땅을 의탁하고 다스리게 하자
모든 것이 보기에 참 아름다웠다. 




청계산을 보존하자. 산림욕장으로 개발해서!


민선 7기 새롭게 시작한 성남시장(은수미)은 청계산이 주는 혜택을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청계산 휴양공간 조성을 공약사항으로 내세웠다. 숲 휴양공간 조성은 산림과 자연 생태계가 보전되어야 가능한 사업이다. 인간과 자연의 공존, 지속 가능한 개발이 숲을 지키고 사람을 지키는 일이다. 


먼저 훼손된 산을 복구했다. 기존 등산로에서 토사가 쓸려 내려가거나 관목이 훼손된 곳을 정비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이라면 편하고 안전해야 한다. 길이 좋지 않으면 사람들은 기존 등산로를 피하여 옆으로 또 길을 만들며 거닐게 된다. 그러면 점점 풀은 밟혀 죽고, 흙이 쓸려가 나무뿌리가 드러나 결국 산림이 훼손된다. 사람 편하게 다니라고 등산로를 정비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등산로만 다니고 숲에는 들어가지 말라는 목적이 있다. 


산사태가 발생한 지역 주변 정리 작업


흙이 쓸려내려 간 자리에 거대한 암반이 드러났다. 망경대 정상 부근임에도 바위 위로 물이 졸졸 흘러 내려왔다. 하늘이 흙을 벗겨내고 산 정상에 거대한 폭포를 만든 것이다. 게다가 산사태로 굴러내려 온 커다란 바위는 영락없이 거북 모양이다. 이 바위를 옮겨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를 먹고 있는 거북이 모습으로 연출했다. 

쓰러진 나무를 대신해 수목을 식재했다. 

청계산에 자생하고 있는 산사나무와 산벚나무, 산딸나무, 소나무 등 수백 그루 교목을 심고 관목으로 덜꿩나무, 노린재나무, 좀작살나무, 산수국 등 수천 그루를 심었다.  

  

토사가 벗겨진 숲길 따라 피복재로 야자매트를 설치한다. 


흙이 쓸려내려 간 등산로에는 야자매트를 깔아 흙 유실을 막았다. 산을 찾는 사람이 푹신하게 밟고 갈 수 있어 길 이외 다른 숲은 들어가지 않는다. 급경사지는 지반안정을 위하여 매트를 설치하고 식생 피복작업을 했다. 길이 넓어진 등산로에는 축대목을 쌓고 사람이 다니는 길과 산짐승이 다니는 길을 구분했다. 

중장비가 들어가는 길은 굴삭기와 덤프트럭을 동원해 길을 정비했고, 깊은 숲은 헬기를 이용해 부지런히 자재를 운반했다. 그것도 힘들면 직접 작업자들이 운반하고, 시민들도 흙 나르는 것을 도우며 유실된 토사를 북돋기도 했다.


청계산을 가꾸기 위한 노력들


인간으로 말미암아 훼손된 자연은 인간으로 말미암아 복원되었다. 


사람들의 작은 노력들이 이어져 자연이 복원되는 순간이 왔다. 산에 흩어진 돌은 모아 돌계단을 만들었다. 사람 발자국으로 뿌리까지 드러난 비탈면은 데크계단을 설치했다. 더 이상 나무뿌리는 밟히지 않게 되었다.

숲길 곳곳 포켓공간에 쓰러진 나무를 이용해 통나무 의자를 만들고 벤치도 놔두었다. 쉴 곳이 정해지면 숲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지 않는다. 

전망 좋은 곳은 쓰레기가 버려진 칡 덤불을 제거하고 전망데크를 조성했다. 사람이 모이면 머문 자리도 깨끗해진다. 이듬해 1월 1일 추운 겨울 새벽, 일출을 보러 많은 사람이 청계산으로 올라왔다. 

산과 인간은 공존하는 것. 인간의 손길이 산을 더럽히는 것만은 아니다. 

쓰레기 버려진 덤불을 걷어내니 일출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자리가 나왔다.


청계산 휴양공간 조성작업 전(위) 후(아래) 사진(매봉, 매봉~혈읍재, 석기봉)


청계산 휴양공간 조성작업 전(위) 후(아래) 사진(석기봉, 망경대, 석기봉)


청계산 휴양공간 조성작업 전(위) 후(아래) 사진(옻샘, 망경대, 석기봉)


청계산은 예부터 울창한 소나무림으로 유명했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보존하기 위해 시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기세 등등한 참나무 활엽수림에서도 소나무는 생존해나갔다. 특히 이수봉 고봉이 연결되는 산릉선은 소나무 숲이 발달하여 큰 바위와 함께 수려한 경관을 보여준다. 그곳을 지날 때마다  높다란 소나무 우듬지 사이로 박새 여러 마리가 푸드덕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것을 본다. 


소나무 숲 아래 쉼터. 지난 태풍 때 쓰러진 나무를 가공하여 벤치로 만들었다.


청계산 산림욕장 개장 준비


청계산 깊고 울창한 산림이 복원되어 새로운 산림휴양공간으로 거듭났다. 지속적인 보존은 지속적인 관심으로 이루어진다. 여러 사람들이 자연에 관심을 갖고 숲에서 받는 이로운 혜택만큼 자연을 배려하게 하게 위하여 산림욕장을 조성한다.  선의의 개발이다. 

청계산 산림욕장에 숲 해설사를 배치하고, 산림 치유·청소년 숲 해설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인간이 자연에게 받는 혜택은 무엇인지 배우고, 자연에 고마워하는 마음,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갖추게 한다. 

다시 사람은 자연과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다. 


청계산 산림욕장 조성 신문기사


청계산 산림욕장에는 여러 숲길이 있다. 

치유의 숲길은 청계산 혈읍재에서 옻샘 약수터까지 1.4㎞ 구간으로 울창한 소나무와 참나무가 뿜어내는 피톤치드와 음이온으로 힐링할 수 있게 평상, 산림욕대, 벤치가 있는 염원·명상·사색·원기의 숲 공간이 마련된다.

휴양의 숲길은 망경대와 매봉을 잇는 2.3㎞ 구간이다. 해돋이 명소가 있는 전망대, 천연계곡, 습지를 활용해 하늘 맞이 숲, 하늘 봐주기 숲 공간을 꾸민다. 

자연체험의 숲길은 상적동 옛골마을에서 망경대까지 1.6㎞ 구간이다. 청소년 숲 체험장과 야외무대, 오감체험의 숲, 도전의 숲 공간을 마련한다.


철쭉이 아름답게 자라난 청계산


아름드리 낙엽송으로 울창한 청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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