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걷는다 VS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삶은 지속되어야 하건만, 어느 순간 벽이 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서 맴돌기만 할 때 마음 깊은 곳에서 날숨이 크게 나오기도 합니다. 그럴 때 적절한 치유법이 있습니다. 바로 걷기입니다. 두 다리만 있다면 마음은 머물러도 몸은 나아갈 수 있습니다. 비로소 마음도 따라 움직입니다.
프랑스의 한 신문사를 은퇴했던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그랬습니다. 지난 시간 뒤돌아보면 기자로서 바쁘게 취재현장을 누볐지만, 퇴직한 뒤로 존재감을 잃고 우울증에 시달렸습니다. 집 정원에서 무기력하게 화초를 가꾸던 그는 문득 결심합니다. 실크로드를 따라 두 발로 걸어보겠노라고.
주변에서 무모하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결국 배낭을 메고 떠납니다.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 소개
1938년 프랑스 망슈 지방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학교를 그만둔 뒤 열여섯 살 때부터 토목공, 항만 노동자, 가게 점원, 포도주 외판원, 체육 교사 등 손대 보지 않은 일이 없었다. 그 후 강건한 독학자로 삶에 복무하여 30여 년간 〈파리 마〈르마탱〉,〈르피가로〉 등 유수의 프랑스 신문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리고 예순이 되었다. 아내의 죽음, 자식들의 독립, 고독 그리고 마침내 사회로부터의 폐기 처분……. 이 모든 나락으로부터 그를 구한 것은 걷기였다. 이윽고 철저히 고독한 도보여행자로 4년에 걸쳐 1만 2000킬로미터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으며 다만 눈으로, 몸으로, 생각으로 세상을 흡수하며 전진하는 자유를 누렸다. 예순 이후 시작된 그의 진짜 인생은 도보여행을 통해 비행 청소년에게 재활의 기회를 주는 ‘문턱’ 협회의 탄생으로 또 하나의 충만함을 얻었다. 여전히 걷고, 움직이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일흔의 그는 어른으로서 세상에 아름다움을 더하는 오롯한 방식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지은 책으로 실크로드 여행기 『나는 걷는다』(전3권)와 수채화판 실크로드 여행수첩 『베르나르 올리비에 여행』『떠나든, 머물든』 등이 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출발하여 이란을 거쳐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 시안까지 걸었습니다. 사막의 더위와 산악의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알렉산더와 칭기즈칸의 말발굽을 따라 걷습니다. 동서양의 문화 교류가 이루어지던 실크로드에서 서구의 문명은 동양에 크게 빚을 졌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직접 두 발로 걷는 여행은 역사 언저리 놓인 사람들 삶의 흔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친 여행자를 먹여주고 재워주는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인생을 접하고 교감의 눈빛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때론 강도에 쫓기고 이질에 걸려 죽음 문턱까지 이르렀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고 마침내 11,000km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마르코폴로 이래 실크로드 첫 완주였으며, 장장 4년이 걸렸습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여행 중 겪었던 모험과 사유를 기록한 책이 바로 ‘나는 걷는다’입니다. 세 권으로 이루어진 책은 두께만 해도 한 뼘이 됩니다. 첫 장을 넘기기 부담스럽지만, 그와 벗 삼아 실크로드 대장정에 나선 듯 몰입하여 읽게 되고 어느새 마지막 3권 책장을 덮게 됩니다.
훗날 걷기의 치유 효과를 경험한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비행 청소년 재활단체를 설립합니다. 소년원에 갇힌 청소년이 도보 여행하면 조기 석방해주는 단체입니다. 그는 잘못을 저질렀던 아이들이 교도소가 아니라 길 위에서 스스로 성찰하길 바랐습니다. 걷기 여행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땅만 바라보며 걷던 아이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깨닫고 고개 들어 당당히 걷게 됩니다. 걷기 교정 프로그램은 재범률을 85%에서 15%로 크게 낮추고 아이들을 범죄의 늪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우리나라 제주 올레길도 찾았습니다. 그는 살면서 많은 것을 깨닫고 싶어 계속 걷는다며 우리에게 걷기를 전도합니다.
참고로 ‘나는 걷는다’란 책을 모티브로 한 책이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입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걸었던 7개국 11,000km의 여행길이 성남 둘레길 63km와 어떻게 견줄 수 있는 것인지 갸우뚱합니다. 그렇다고 ‘소확행’으로서 소소한 자기만족은 아닙니다. 베르나르가 실크로드 여행에서 가졌던 감동과 치유 못지않게 누비길에서도 자연과 사람과 역사 이야기에 큰 울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톨스토이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주가 되고자 한다면 당신의 마을을 노래하라.
당신은 당신의 마을을 알아야 하고 사랑해야 한다.’
담당 업무로 시 경계 산릉선을 걷게 되었습니다. 떠밀리듯 가는 것이라 볼품없다고 투덜댔지만, 봄에 진달래 꽃망울을 보기 시작하여 여름에는 떡갈나무 큰 잎이 햇살을 가려주고, 겨울에는 박새가 얼어붙은 팥배나무 열매를 쪼는 소리를 들으며 걸었습니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예찬한 것처럼 구도이며 치유의 과정임을 경험합니다. 성남에서 나고 자란 사람으로서 마음 구석에 똬리 튼 응어리가 신기하게 풀어집니다.
성남시는 광주대단지 사건을 거쳐 남한산성 자락 황무지로 사람들이 자의든 타의든 내몰리면서 만들어졌습니다. 폭력으로 터전이 옮겨진 사람들은 상처를 받았고 상처는 반발심이 되었습니다. 태평동이라는 지명조차 나라님 근심 안 생기게 태평하게 살라고 작명했고, 은행나무도 척박한 곳에서 잘 자라니 시 상징으로 걸맞겠다고 조소했었습니다. 이배재고개 넘을 때는 성남에 당도했으면 성남에다 절해야지 왜 저 멀리 서울을 보며 절하냐고 비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걷기는 그런 구부러진 상처를 치유합니다.
누비길을 걷다가 신흥동 산기슭에서 쉬나무 숲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신흥동은 새롭게(新) 부흥(興)하라고 관에서 지은 이름이라 그런지 터전을 빼앗긴 사람들은 훈령으로 들립니다. 하지만, 이곳 옛 이름은 독정(讀亭)으로 책 읽는 마을이었습니다. 쉬나무는 예로부터 선비들이 가까이 두고서 열매 기름으로 호롱불을 밝히며 책을 읽었습니다. 독정의 쉬나무 잎사귀 흔들리는 것이 옛 선비들 책장 넘기는 소리 같습니다.
길에서 역사의 상흔도 마주칩니다.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 안에서 척화니 화친이니 말싸움할 때 성벽 밖 백성들은 나라를 지키고자 피를 흘려 고개가 붉게 물들었고(단대丹臺), 주인 잃은 말들은 울부짖으며 숲을 달립니다.(돌마突馬)
길에서 자연과 역사를 배웁니다. 그리고 우리가 황량한 곳에 내몰린 것이 아니고 오래전부터 치열한 삶의 이야기가 있던 터전에 뿌리를 내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잡목으로 불리던 아까시나무 가득 찬 야산이 어느덧 극상림에서나 자라는 서어나무 숲이 되어 자연을 회복한 것처럼 말입니다.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걷는다는 것은 꿈을 이루는 과정이라며 주위에 걷기를 채근합니다. 아마 그의 책을 덮고 난 후 귓가에서 작가가 외치는 소리가 쟁쟁하게 들릴 것입니다.
‘당장 걸어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