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제1구간 남한산성길
제가 태어난 곳은 성남시 단대동입니다. 지금은 면적이 1㎢ 채 되지 않아 성남 50개 동에서 세 번째로 작은 동네지만, 예전에는 단대라는 지역은 꽤 넓어서 단대1동부터 4동까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차츰 단대천을 경계로 지역이 쪼개지면서 단대4동은 산성동으로, 단대 2, 3동은 금광 1, 2동으로 단대1동이 지금의 단대동으로 바뀌었습니다. 단대천은 1998년 복개하기 전까지 남한산성 계곡에서 탄천까지 흘렀던 하천으로 단대동이라는 지역이 얼마나 넓은 지역이었던지 길이 5.6km의 하천을 단대천이라 불렀습니다.
단대동 지명 유래는 지금의 태평동인 탄리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는데, 그 고개의 흙이 붉은 데서 붉을 단(丹), 고개 대(垈)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합니다.
흙이 붉은 고개. 저는 당연히 붉은 흙은 황토라고 생각했고, 단대동 어느 한 장소에 붉은 흙길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숲길을 조성하는 일을 할 때 길에 테마를 부여하면 재미있겠다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등산로 흙길만 걸으면 재미가 없으니까요. 마침 성남누비길 제1구간 남한산성과 연결되는 숲길이 단대동에서 오르는 길이라 이곳 단대동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갈 수 있게 만들면 참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단대동의 유래가 되는 붉은 흙길입니다. 황톳길 맨발로 걸으며 건강과 힐링을 찾으세요.’
이렇게 홍보하면 사람들이 관심 갖고 많이 찾아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단대동에 있는 여러 숲길을 다녀봤습니다. 그런데 당최 붉은 흙길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흙이었습니다. 한참을 찾아도 단대동의 지명 유래가 되는 붉은 흙은 발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고민을 했습니다. 혹시, 붉은 고개는 흙이 붉은 것에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고 붉게 단풍 든 숲의 언덕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사실 단대동 앞 동네 은행동은 가을에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에서 이름이 따왔습니다. 그렇다면 은행나무 은행동처럼 단풍나무 단대동일까? 단풍나무가 얼마나 붉게 물들길래 붉은 고개라고 했을까 싶어 단대동에서 식생조사를 했습니다. 단풍나무 군락지를 찾아 그곳을 명소화하면 단대동은 이름도 예쁜 동네가 될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도 단풍나무 군락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혹시 단풍나무 대신 잎이 붉게 물드는 신나무나 복자기나무, 심지어 갈참나무 군락지도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가을에 단풍 드는 나무는 단대동 일대에서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공원에 조경수로 심은 단풍나무 몇 주 빼고 말입니다. 실망이 컸죠. 은행나무 은행동, 단풍나무 단대동, 좋았는데.
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그러면 혹시 붉다 라는 표현은 무슨 메타포 metaphor가 아닐까? 김동인이 지은 단편소설 ‘붉은 산’에서 삵이라는 주인공이 만주에서 악덕 지주에게 맞아 죽을 때 ‘붉은 산을 보고 싶어요’ 그랬잖아요. 붉은 산은 당시 일제에 수탈당하여 황폐해진 우리 조국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여기도 황폐해지어 나무 한 그루 자라지 못해 붉은 흙먼지가 날린 고개 였었나?
사실 성남이라는 도시의 출발은 경기도 광주의 일부 지역에 나무를 모두 벌목하고 땅을 파헤쳐 만든 황무지에서 시작하였습니다. 도로나 상하수도 같은 기반시설은 전혀 조성하지 않고 나무 한 그루 없는 허허벌판으로 만든 민둥산을 군사정부는 서울의 인구 분산을 위해 만든 신도시라고 거짓 선전하여 사람을 이주시켰습니다. 막상 신도시에 온 사람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보고 한탄했습니다. 나무 한그루 없는 붉은 황무지 고개. 영락없는 단대(붉을 丹, 언덕 垈)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단대동이라는 이름은 광주대단지나 일제 강점기 훨씬 이전 조선시대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붉은 산'과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일에 봉착했습니다.
지명의 다른 사례를 보았습니다. 붉은 고개라는 지명은 서울에도 있습니다. 고개 흙이 붉은색을 띠고 있어서 붉은 고개라고 부르다가 한자명으로 표기하면서 바뀐 이름 홍현동입니다. 붉은 紅, 고개 峴. 눈에 띄는 것은 성남시 단대동의 붉은 고개는 '紅'자를 안 쓰고 '丹'자를 썼습니다. 丹이라는 글자는 단순히 붉다 라는 뜻뿐만 아니라 결코 변치 않는 마음을 뜻하기도 합니다. 일편단심 할 때 그 단자가 붉은 '단'입니다.
탄천에서 남한산성으로 이어진 고개. 성남누비길 숲길을 따라 복정동 탄천에서 남한산성 방면으로 걷습니다. 그리고 불현듯 병자호란 당시 한양에서 남한산성으로 급하게 피난을 떠나는 조선 인조 임금과 1만 4천 명의 조선 군사 행렬이 생각납니다. 그 뒤 탄천 벌판에서 조선의 임금을 잡으러 달라오는 12만 명의 청나라 기병의 말발굽 소리도 들립니다. 한겨울 엄동설한 남한산성으로 들어간 조정은 성문을 걸어 급히 잠급니다. 성안에는 단지 50일분의 식량만 비축되어 있을 뿐입니다.
조선의 임금을 잡으려고 미친 듯이 달려왔던 청나라 군은 조선 임금을 눈앞에서 놓치자 미처 피난 가지 못한 조선의 백성을 분풀이하듯 끔찍하게 학살합니다.
병자호란에 대한 기록 ‘병자남한일기’ 등을 살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남한산성 아래 계곡마다 조선 사람이 쓰러져 죽고
시체가 구름처럼 쌓이면서 피가 수십 리까지 흘러 탄천까지 이어졌으며
말들은 언덕의 흙이 피 때문에 끈적거리니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그 참혹했던 전쟁에 대한 기억이 사람들 머릿속에 트라우마로 오랫동안 남아 탄천에서 남한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피로 붉게 적셔져 '붉은 고개'라는 이름으로 남은 것이 아닐까?
붉을 단(丹), 고개 대(垈)
그 길에 ‘맨발로 붉은 흙을 밟으면 발바닥이 자극돼서 건강해져요!’ 란 팻말을 세우려고 했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