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떠오른 산 성부산, 칠성신앙와 사찰
영장산은 성남시에 분당구와 수정구 두 곳에 있습니다.
먼저 분당구 율동과 서현동에 위치한 영장산은 해발 높이 414.3m로 정상은 제법 가파릅니다. 산 이름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하남 위례성에 나라를 세우고 이곳 영장산이 아름다워 자주 사냥을 나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올 때마다 백성들은 길 주변 몰려나와 왕의 보살핌이 영원하게 하여 달라며 성령장천(聖靈長千)을 외쳤다고 합니다. 훗날 이 산은 성령장천의 준말인 영장(靈長) 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반면, 수정구에 소재하는 영장산은 남한산성이 위치하는 청량산이 탄천 쪽으로 뻗어 내린 줄기에 위치하는 구릉성 산입니다. 높이는 분당구의 영장산 절반 높이인 193.6m이고, 산 정상은 멀리서 보면 평평한 지형입니다. 그리고 이곳 영장산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1호인 봉국사 대광명전과 제102호인 망경암 마애여래좌상이 나란히 위치하고 있습니다. 두 사찰은 영장산과 떼어놓을 수 없을 만큼 인연이 깊고 서로 얽힌 이야기도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습니다.
수정구 복정동 영장산 기슭에 있는 망경암입니다. 사찰 중앙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삼성각과 5층 석탑, 미륵대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신 전각이고, 삼성각은 산신(山神)과 독성(獨聖) 그리고 칠성(七星)을 함께 모신 건물로 우리 고유의 토착신앙을 받아들인 것이기에 건물 이름은 전(殿)이라 하지 않고 그 보다 격을 낮춰 각(閣)으로 부릅니다. 미래불이라고 불리는 미륵대불 아래 절벽에는 우묵하게 파낸 자리에 불상이 부조로 새겨져 있는데 바로 마애여래좌상입니다.
산은 높지 않으나 서울을 바라보니 석등 가운데로 탄천이 흐르고 한강이 맞닿는 곳에 123층 롯데타워가 보입니다. 구름과 닿은 곳에 북한산도 볼 수 있습니다. 북한산을 배경으로 롯데타워가 불쑥 뚫고 나왔지만, 저리보여도 우리나라 최고 높이 건축물 롯데타워가 555m라면, 북한산 높이는 837m입니다. 인간이 세운 바벨탑보다 자연이 빚은 산이 더 웅장합니다.
북한산 옛 이름은 삼각산입니다. 최고봉 백운대를 중심으로 인수봉, 만경대의 세 봉우리가 뿔처럼 높이 서 있다고 해서 삼각산입니다. 특히 북한산의 만경대는 삼라만상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어서 만경대라고 불렀습니다. 또한 조선 초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을 받고 이 봉우리에서 나라를 다스릴 도읍터를 바라보았다고 해서 국망봉이라고 합니다. 망경암도 무학대사가 들렸던 절이라고 전해지며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망경암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조선 초 임금은 친히 망경암에 찾아와 나라와 백성이 잘 되도록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망경암의 인연은 조선말까지 이어집니다. 조선 후기 조정은 개화파와 보수파가 싸우고, 밖으로는 일본, 청, 러시아 등 주변 강대국의 다툼으로 나라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러다가 러시아에 기울던 명성왕후를 일본이 시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고종 임금은 경복궁을 떠나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하였습니다. 그 후 고종은 다시 궁궐로 돌아오면서 외세에 더 이상 휘둘릴 수 없다고 생각하여 나라 이름을 대한제국으로 고치고 왕을 황제로 칭하면서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대한제국이 들어서자 당시 왕실 사당을 관리하던 이규승은 폐허가 된 망경암을 다시 고치고 중수비를 세우면서 비석에 고종 황제의 만수무강과 명성황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였습니다. 조선의 개국을 기원한 것도 망경암이고 조선을 버리고 새로운 대한제국의 출발을 알린 것도 망경암인 것입니다.
한편, 이 중수비에는 대한제국 황실과 나라의 번영을 영장산 신령께 기원한다고 하여 그 후 이곳 산은 영장산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영장산으로 불린 이곳 산 이름은 원래 성부산이었습니다. 성부산은 별(星)이 떠오른(浮) 산이란 뜻입니다. 이 산에서 한때 고구려와 신라가 부딪혀 서로 통일 전쟁을 벌였습니다. 신라 태종 무열왕은 백제를 멸망시키고 한강 이남 성남의 영장산 지역까지 군사를 배치하자 고구려는 큰 위협을 느끼고 이곳에 주둔하고 있는 신라군을 포위합니다.
고구려의 공격에 신라는 곧 함락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때 신라의 김유신 장군은 군사들의 사기들 북돋우기 위하여 하늘에 기도하였고, 그랬더니 산에서 커다란 별이 떠오르고 곧 고구려 진지를 내리쳐 고구려가 물러났다고 합니다. 물론 김유신 장군이 꾀를 내어 연에 숯불을 달아 하늘로 올려 보낸 것이었지만, 마치 별똥별이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여 북두칠성이 신라를 보호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습니다.
이때부터 신라가 고구려를 물리칠 때 산에서 별이 떠올랐다고 하여 별 星, 떠오를 浮 써서 성부산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김유신 장군은『삼국유사(三國遺事)』에 따르면
“김유신은 칠요(七曜)의 정기를 타고났으므로 등에는 칠성(七星)이라는 무늬가 있다.”라고 기록된 것처럼 하늘의 별이 수호하는 장군이었습니다. 또한 별을 섬기는 신앙은 우리나라 칠성신앙과 맞닿고 있는데, 칠성신앙은 불교나 도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우리 고유의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북두칠성을 묘사한 암각화가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토착신앙이었으며, 칠성신은 북두칠성을 신격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새벽에 깨끗이 길은 첫 우물물을 정화수로 정성스레 더 놓고 밤하늘에 뜬 칠성신이 비치는 정화수를 바라보며 두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빌곤 했습니다. 칠성신에게 주로 소원성취나 자녀들 입신양명을 빌었으며 특히 인간의 목숨을 관장하는 신이라 무병장수를 빌곤 했습니다. 왜냐하면 동양에서 북두칠성의 형상을 관을 끌고 가는 사람으로 보기도 했는데, 국자를 이루는 별 4개가 마치 관처럼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북두칠성이 인간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런즉 북두칠성의 정기를 받은 김유신 장군이 성부산에서 삼국 통일 전투할 때 별이 하늘로 올라가 장군을 도와줬으니 성부산이야말로 칠성신앙의 중요한 기도처였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민속신앙에서 인간의 삶이란 삼신할머니로부터 명줄을 받아 세상에 태어나 죽으면 북두칠성이 그려진 관을 지고 북망산천에 가야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삶의 길이는 북두칠성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배척한 유교국가 조선에서도 자손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절의 칠성각은 종종 찾곤 했습니다.
특히 조선 초 세종대왕은 일곱 번째 아들인 평원 대군이 천연두를 앓다 17살 젊은 나이에 죽어버리자 너무 슬퍼한 나머지 망경암을 찾아 칠성단을 만들어 왕자의 명복을 빌기도 했습니다.
한편, 평원 대군의 장례는 영장산 기슭 지금의 수진동 지역에 장례를 지냈는데, 수진동이라는 이름은 평원 대군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한 수진궁이 지어졌다고 하여 수진동이 된 것이라 합니다. 또한 망경암 부처님 제단 앞에서 염불소리가 끊이지 않게 되자 망경암에 샘이 솟기 시작했습니다. 부처님이 내려주신 감로수라는 물 맛이 좋아 사람들은 복 우물이라 불렀습니다. 훗날 복 우물이 있는 동네는 한자로 하면 복(福) 자에 우물(井) 자를 써서 복정동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드론으로 망경암과 영장산 주변을 둘러봅니다. 수령 200년 된 느티나무가 아담하게 보입니다. 영장산은 나지막해 성남 본 도심 주민들이 자주 찾고 있으며 절반은 근린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영장산은 도심 주택 밀집지역에서 그나마 보존된 산림녹지입니다.
드론을 더 높이 날려보면 영장산 옆 탄천을 건너 청계산을 볼 수 있습니다. 푸른 계곡이 흐른다는 청계산에는 국사봉, 이수봉, 망경대, 매봉의 산봉우리가 연달아 있으며 그중 정상이 망경대입니다. 영장산의 망경암과 이름은 같지만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숲이 우거진 청계산에는 고려 말기 고려 유신들이 개경을 떠나 은거하였습니다. 유신들은 청계산 높은 봉우리에 날마다 올라 고려의 옛 수도 개경을 바라보며 나라가 망한 것을 슬퍼하곤 하였습니다. 훗날 사람들은 고려 유신들의 충성심을 기리고 그들이 울던 이 산봉우리를 망경대라고 불렀습니다.
즉 영장산의 망경(望京) 대는 새로 개국한 조선의 수도 한양을 바라보며 새로운 국가에 대한 찬양이 담겨있다면, 청계산의 망경(望京) 대는 멸망한 고려 수도 개경을 바라보며 없어진 나라에 대한 비탄이 스며있습니다. 망경암에서 망경대를 본다는 것, 그것은 한 나라의 멸망과 한 나라의 개국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것이며 세상은 종이 한 장 차이로 알파와 오메가가 반복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