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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Oct 06. 2018

성령장천(聖靈長千) 영장(靈長)산

제3구간 영장산길 - 깊은 숲 속 영장산, 모욕된 이름 매지봉

깊은 숲 속 영장산길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완연한 날씨에 영장산 정상으로 오르는 숲길바닥에는 도토리가 많이 떨어져 있다. 영장산의 우점 교목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갈참나무로 숲길은 울창한 나무로 깊은 숲을 이루며, 가을로 접어듬에 따라 도토리들이 깍정이를 쓰고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도토리가 다람쥐들을 위하여 가을산을 풍성하게 만들지만 비단 도토리뿐만 아니라 팥과 비슷한 열매가 잔뜩 여문 팥배나무가 새들이 가을산에서 향연을 열 수 있도록 도와준다. 팥배나무의 빨간 열매는 잎들이 떨어져 파란 하늘을 캔버스 삼아 수많은 빨간 점을 찍어 놓는다. 가을날 초록 잎사귀가 갈색으로 변색되며 황토색 흙길의 단조로움 속에서 팥배나무 열매는 빨간빛 천연 색상의 향연이다. 

가을로 접어드는 숲길에는 도토리가 바닥에 나뒹굴며 다람쥐를 기다리고 있다.
가을날 은행나무의 노란색이나 단풍나무의 빨간색 원색을 영장산길에서 도통 볼 수 없었다. 그 갈빛 천지 숲 속에 팥배나무 가지마다 새빨갛게 알알이 찍은 점들이 인상적이었다. 팥배나무 열매를 팥배라고 하며 사람도 먹을 수 있다. 당연히 새들도 즐겨 먹는다. 걸어오다 팥배나무 가지에 직박구리가 몇 마리 앉아 열매를 먹고 있는 것을 봤었다. 요란하게 지저귀며 팥배를 부리로 콕콕 찍었다. 요새 참새보다 더 흔한 직박구리는 새소리가 얼마나 떠들썩한 지 새 이름도 시끄럽게 우는 새라는 뜻이다. 신갈나무 높은 가지 위로 까마귀 서너 마리가 날아들며 ‘까악 까악’ 울고 있었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바닥에는 도토리뿐만 아니라 가시가 고슴도치처럼 솟은 밤알도 많이 나뒹군다. 영장산이 밤의 명상지로서 예전부터 유명하여 영장산 기슭의 율동이라는 지명은 밤나무 율(栗) 자가 들어간다. 그리고 마을 내 밤나무 밤알이 굵고 무게가 서 근이나 되어 삼근율이나 서근바미라 부르게 되었다. 영장산이 밤 명산지로서의 기원은 백제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장산 아래 많은 사찰이 있었다. 백제 각 지방에서 많은 사람이 몰려와 가난한 사람들까지 먹이다 보니 절도 빈곤해졌다. 그때 한 주지 스님이 밤나무를 구황작물로 심고부터는 밤나무가 잘 자라서 많은 밤을 수확하게 되어 궁핍을 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밤나무 숲이 율동에서 창곡동까지 이르렀었다. 그 산자락을 일컬어 밤나무 그늘 마을이라는 뜻의 율목음촌(栗木陰村)이라 부른다. 

영장산을 율목음촌이라 부르게 만든 밤송이가 가지마다 가득하다. 


영장산 정상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길에 야탑동 메모리얼 파크를 지나가는데, 여기 숲길은 행정구역상 야탑동에 속하는 길이다. 야탑이라는 명칭은 오야소의 ‘야野’ 자와 탑골의 ‘탑塔’ 자를 취해서 만들었다. 말 그대로 마을 앞 들이 넓고 주위에 오동나무와 탑이 셀 수 없이 많아 그리 불렀다. 하지만 이제는 들판이나 돌탑은 볼 수 없고 대신 탑보다 많은 아파트가 들어섰다.  

영장산 오르는 또다른 등산로에 세워진 돌탑. 


영장산의 모욕된 이름 매지봉


영장산 정상쯤에 다다라 가파른 경사로와 계단이 다시 나타나며, 그 계단을 용을 쓰며 올라가니, 드디어 해발 414.2m의 영장산 정상에 올랐다. 쉬지 않고 오르면 몸은 땀범벅이 되어 옷은 젖기 마련이며, 외투를 벗을라 치면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시원함도 잠시 몸이 으스스 떨린다. 

해발 414.2m의 영장산 정상

영장산은 분당 시가지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어 자연 생태계가 잘 보전된 편이다. 영장산은 내동 숲 안과 된섬말에 걸쳐 있다. 마을 뒤에 있는 산이라 뒷뫼라 부르기도 한다. 

영장산은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건국 이후에 하남 위례성에 거처를 정하고 여기 산이 아름다워 자주 사냥을 나왔다고 할 정도로 유명했다. 온조왕의 선정이 영원하게 하여 달라는 성령 장천(聖靈長千)이라는 산말을 그때부터 가지며 영장산으로 불렀다. 대동여지도에도 영장산으로 엄연하게 표기되어 있고, 동국여지승람에 재주남이십리(在州南二十里)라 하여 남한산성 남문에서 20리가 되는 산을 영장산으로 표시했다.

영장산 서쪽 자락엔 매지봉이 있으며, 남쪽으로 옹달평산이 이어진다. 영장산의 유래에 대하여 간혹 매지봉이나 맹산으로 소개하는 경우가 있다. 옛날 매를 훈련해 산 정상에서 매사냥한 것에서 매지봉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고, 천지가 개벽할 때 세상이 모두 물에 잠겼어도 이 산봉우리에 매 한 마리가 앉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이 남았으므로 매지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또 다른 이름인 맹산은 조선 시대 세종대왕이 명재상인 맹사성에게 이 산을 하사해 불리게 된 이름이라고 한다. 

한 겨울 눈발이 내리는 어스름한 저녁에서 바라본 영장산 정상. 산이 높아 바람이 거세다.

 매지봉이니 맹산이니 하는 유래는 일제 강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은 1914년 행정구역 변경 당시 영장산이라는 신령스러운 산말을 망아지 ‘구駒’ 자를 써서 구봉으로 바꾸었다. 발음도 일본식으로 하여 매이지봉이라고 부르도록 강요했다. 광복 후에는 망아지란 뜻의 매이지 글자에 ‘매’ 자가 들어갔다고 매 사냥터란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돌았다. 나중에는 이야기가 덧붙여져 천지개벽할 때 매 한 마리가 앉아 있을 만큼만 남아서 매지봉이 되었다는 낭설이 유포되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산말은 이 일대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청주 한씨 원주민의 청원으로 2002년 6월 20일 자 대한민국 관보에 해발 414.3m 높이 영장산으로 공시되면서 정리되었다. 


영장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 멀리 문형산이 보인다.


내려가는 길도 올라오는 길 못지않게 가팔랐다. 비탈진 등산로 정 가운데 소나무 한 그루가 떡 하니 버티며 길을 막고 있었다. 밑동은 그리 굵지 않고 반듯하게 자라나지도 않았지만, 봉우리에서 내려가는 길목 중앙에 한 그루 서 있는 폼이 매우 당당해 보였다. 산봉우리 거센 바람에도 묵묵히 견디며 자라난 모습이 대견했다. 소나무 솔잎 밑으로 산 능선이 첩첩이 겹쳐져 있는 모습도 운치가 있었다. 첩첩산중이라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광주 방면은 산 능선 너머 또 다른 능선이 겹겹이 쌓여 하늘과 맞닿은 곳까지 펼쳐져 있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저자 유홍준 교수의 책에서 외국인들과 만나면서 한국의 산을 영어로 깊은 산 (Deep mountain)으로 표현하니 외국인들이 오역한 것이 아니냐고 했다. ‘Deep’은 강물이나 호수에 쓰는 것이고 산의 경우에는 ‘High’를 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고 한다. 그때 유홍준 교수는 우리나라 첩첩산중의 도감을 보여주자 다들 사진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는데 그 이야기가 매우 동감이 되었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영장산의 비탈길을 내려오는 길에서 다시 마주치는 문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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