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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pr 13. 2022

영춘정지에 피어난 개나리

더불어 영춘화와 장수만리화, 히어리까지 이른 봄 노란 꽃

금년 새해는 남한산성 영춘정에서 맞이하였다. 

간밤에 진눈깨비가 내렸는지 성곽 기와마다 하얀 잔설이 얼어붙었다. 남한산성은 산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져 있는데, 한 겨울 헐벗은 나무 탓에 성곽의 위용이 드러났다. 그래도 그 모습이 산줄기를 닮아 자연스러웠다. 우리나라 옛 건축물은 자연을 거스르는 법이 없다. 처마나 성벽 모두 부드러운 곡선이다. 

하얀 눈이 쌓인 성곽은 조지훈의 「승무」에서 나오는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하얀 외씨버선의 라인이다. 하얀 눈 사이로 듬성듬성 보이는 침엽수 푸른빛은 박사 고깔에서 올라온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되겠다. 


잔설로 덮인 남한산성 성곽. 멀리 영춘정이 보인다.


봄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의 영춘정(迎春亭)에서 한겨울에 해돋이를 보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남한산성 남문에서 수어장대 오르는 성곽길 높은 곳에 있는 영춘정은 봄을 제일 먼저 맞이할 수 있는 곳이다. 산기슭마다 울긋불긋 진달래 피는 것을 시작으로 노란 생강나무와 개나리가 숲을 물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한산성 천주봉에 있는 영춘정은 원래 창곡동에서 올라오는 남한산성로와 위례에서 올라오는 등산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었다. 산 중턱에서 봄을 맞이하기 아쉬웠던지 산 아래 구릉지에 설치된 정자를 남한산성 위로 이전했다. 지금은 건물터만 남아 원형 주춧돌 여덟 기와 기단석 흔적이 남아 이곳이 옛 영춘정지임을 말하고 있다. 


남한산성 정상 영춘정. 봄을 맞이하는 정자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


옛 영춘정지는 이제 등산객 쉼터로 변했고, 시에서는 아예 휴게공간으로 만들려고 작정했는지 널찍한 터에 조경수로 단풍나무, 은행나무, 무궁화를 심었다. 길가에는 개나리를 심었다. 영춘정지에서 봄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는 봄소식을 제일 먼저 알리는 노란 개나리꽃이 반갑다. 사실 개나리는 이른 봄에 노란 꽃을 보이며 봄이 왔다고 알려주기에 영춘(迎春)화로 불리기도 한다. 

노란색은 봄을 알리는 색. 수백 송이 수천 송이 줄기마다 활짝 펴서 봄이 왔어요! 종알종알 대는 귀여운 꽃이다. 개나리 노란 꽃줄기 사이로 노란 병아리가 뛰쳐나와 삐악삐악 될 것 같다. 종종종 뛸 뜻이 걷는 병아리 떼 부리마다 작은 개나리꽃을 물고 있을 것 같다. 


4월에 잎겨드랑이에서 노란색 꽃이 1~3개씩 피며 꽃자루는 짧다.


우리나라 산, 들, 지천 어디에든 잘 자라나는 개나리 원산지는 바로 우리나라다. 그래서 학명도 우리나라가 들어간 'Forsythia koreana'다. Forsythia란 단어가 개나리에 들어간 연유도 특이하다. 19세기 중반 영국의 식물학자인 로버트 포천(Robert Fortune)이 당시 유럽에서 비싼 값으로 팔리던 중국의 차(茶) 종자와 묘목을 몰래 빼돌리면서 인도와 유럽에 전파했다. 그때 차나무 말고도 대나무, 진달래, 국화도 유럽에 전파했는데 개나리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포천은 개나리의 학명을 정하면서 자신을 후원했던 영국왕립원예협회의 윌리엄 포시쓰(William Forsyth)의 이름(Forsyth)을 개나리에 넣었다고 한다. 그 후 개나리는 유럽의 각지로 널리 퍼졌으며, 꽃이 생긴 모양이 마치 금종같이 아름답다고 하여 Golden bell tree로 불리며 사랑받는다. 


개나리 꽃받침은 4갈래이며 녹색이다.


개나리 한자 이름인 연교(連翹)는 열매에서 왔다. 개나리 열매가 연꽃의 연밥과 비슷하여 '연'자를 따왔다. ‘교’ 자는 꼬리라는 뜻으로 개나리꽃이 달린 긴 가지가 새의 꼬리와 닮아서 붙여졌다고 풀이한다. 

개나리는 열매가 천연 항생제로 불릴 만큼 염증을 내리는 데 특히 효과가 있다고 하는데 정작 개나리 열매는 보기 힘들다. 개나리는 암수 딴 그루이지만, 번식은 수 나무를 꺾꽂이나 휘묻이로 번식시킨 까닭이다. 열매를 맺는 개나리는 특별히 의성개나리라고 해서 한약재를 만들기 위해 따로 재배한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개나리를 개나리꽃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햇볕이 따뜻해지면 봄이 왔다고 노란색 꽃을 피워 알리는 개나리가 작지만 귀엽고 앙증맞다. 그래서 개나리 한자 이름인 '연교'나 서양에서 부르는 '골든벨'이 자연스럽다. 그런데 정작 개나리 원산지인 우리나라에서 부르는 이름은 무척 유감이다. 나리꽃보다 볼품없다고 해서  '개'란 접두사가 붙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마치 진달래 못지않게 아름다운 철쭉이 개꽃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사실 나리꽃과 개나리꽃을 연관 짓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흔히 백합이라고 부르는 나리는 백합과에 속하며 개나리와는 엄연히 다른 과다. 나리는 백합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화초를 통틀어 일컫는 말로 알뿌리로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인 반면 개나리는 키가 3m까지 자라는 물푸레나무과의 나무다.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는 개나리는 다 자라면 3m까지 자란다.


물론 나리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서 '참'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참-나리와 비교하면 확실히 개나리꽃은 개-나리꽃이다. 참나리도 우리나라 산과 들에서 많이 자라고 꽃도 크고 매우 화려해서 홀로 고고하게 자란 나리꽃을 보면 감탄을 감추지 못한다. 

훈민정음이 창제되기 이전에 개나리는 한자를 빌어 쓴 차자 표기로 犬那里로 표기했는데 犬는 한자의 훈으로 읽어서 ‘개’, 那里는 각각 음으로 읽어서 ‘나리’로 해독되어 말 그대로 개나리다. 그리고 개나리에 얽힌 설화도 어느 부잣집에 한 스님이 시주를 청하였더니 자기 집에는 개똥밖에 없다고 하여 소쿠리 하나 놔두었는데 안에는 개똥만 가득 들어 있었다고 하였다. 그것을 담 밖 울타리 밑에다 묻어두었는데 이듬해 피어난 것이 개나리라고 하였다. 


버려진 옛 영춘정지에 개나리만 남아서 노란 꽃을 피운 것이 개-나리기 때문이라면 너무 억측일까? 




봄을 맞이하는 꽃이 따로 있다. 말 그대로 봄이 왔다고 알리는 영춘화(迎春花). 멀리서 보면 얼핏 영춘화가 개나리는 비슷하다. 이른 봄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색도 노란색이다. 멀리서 보면 늘어뜨린 가지도 닮아서 개나리인지 영춘화인지 헛갈릴 때도 있다. 두 나무 모두 물푸레나무과다. 


꽃은 잎보다 먼저 피고 각 마디에 마주 달린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개나리와 영춘화는 다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개나리와 달리 영춘화 원산지는 중국이다. 그리고 영춘화 꽃잎이 6장으로 활짝 펼쳐진 반면 개나리는 꽃잎이 4장으로 오므려 든 모습이다. 가지 또한 영춘화는 초록색이고 개나리는 갈색이다. 그리고 영춘화가 개나리보다 조금 더 일찍 꽃을 핀다. 


영춘화 줄기는 많이 갈라지고 색은 녹색이다.


봄을 맞이하는 꽃이라는 뜻에서 영춘화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매화처럼 꽃이 빨리 핀다고 황매라고 부른다. 서양에서는 겨울 재스민이라고 부른다. 

우리나라는 예전에 영춘화를 어사화라고 불렀다. 과거에 급제하면 임금님이 장원급제한 사람에게 노랗게 핀 꽃을 내려주었고 고향으로 내려갈 때는 임금이 내려준 꽃을 머리에 꽂았다. 금의환향하며 갓에 꽂은 그 꽃이 바로 영춘화다.



영춘화 꽃잎은 5~6장이며 향기가 없다. 개나리는 꽃잎이 4장이다.


영춘화 가지는 초록색으로 가지가 많이 갈라져서 옆으로 퍼지는 성질이 있다. 줄기가 땅에 닿은 면 닿은 곳에서 뿌리가 내린다. 이런 특성이 도심지 절개지에 피복하는 식생 재료로 안성맞춤이다. 개나리와 함께 영춘화는 생장도 빠르고 관리하기도 쉬워 건축공사 시 땅 파느라 생기는 사면을 복구할 때 조경업자가 선호한다. 마땅히 심을 수종이 정해지지 않는다면 개나리나 영춘화로 정한다고 해서 굳이 싫어할 사람은 없으니까. 


도로 옹벽 위로 개나리와 영춘화로 나란히 피복한 모습.




영춘화를 제외하고 우리나라가 고향인 개나리 속 나무로는 장수만리화도 있다. 꽃잎이 개나리와 비슷비슷하나 자세히 보면 장수만리화 잎이 더 크고 더 넓다. 북한 천연기념물이기도 한 장수만리화는 북한 황해도 장수산에서 자라며 꽃향기가 만 리까지 퍼지는 향수꽃나무라하여 장수산향수꽃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장수만리화 꽃은 개나리와 비슷하지만, 줄기가 휘지 않고 곧추 자라는 것이 개나리와 다르다.


장수만리화 꽃은 개나리와 비슷하여 구분하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니지만, 개나리 줄기가 휘어지는 반면, 장수만리화 줄기는 굽어지지 않고 곧추 자란다. 요즘에는 울타리용이나 조경용으로 주변에 많이 심기도 하고 성남 식물원에 가면 연못 앞에 쭉쭉 자라난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특산인 장수만리화 꽃받침은 4개로 키는 1-4m까지 자란다.


그런데 북한의 장수군 일대에서 자생종이 발견되어 장수만리화란 이름을 얻은 것에 비해 개나리는 아직 우리나라 자생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산개나리나 만리화도 금강산, 설악산, 의성 등에서 자생지를 발견하여 우리나라가 원산지임이 증명되었지만, 개나리는 아직까지 자생지가 발견되지 않아 식물 표본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지천에 워낙 널려있는 나무가 개나리라서 못 찾는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산개나리나 만리화가 산 중에 있어 자생지가 보존될 수 있지만 개나리는 주로 인가 근처에서 자라나서 도시화로 개발됨에 따라 자생지가 멸실되지 않았나 추정하고 있다고 한다. 


개나리와 함께 이른 봄에 피는 히어리는 연한 황록색으로 총상꽃차례 모양으로 꽃이 핀다.


이른 봄에 노란 꽃이 피고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나무로는 히어리가 또 있다. 지리산 일대에서 자라는 히어리는 조록나무과로 꽃잎이 5장 달리고 아래를 향한 모양이다. 꽃 모양이 개나리와 다르고 색도 개나리처럼 샛노란색이 아니고 다소 밝은 색이다. 그래서 '히어리'라는 이름은 빛을 받으면 얇은 꽃잎이 하얗게 보여 순우리말  '희다'라는 글자가 붙었다. 잎보다 꽃이 먼지 펴서 봄을 알리는 히어리의 꽃말은 봄의 노래다. 


히어리는 멸종위기 식물이며 지리산 일대에서 처음 발견되어 학명에 coreana 란 종명이 붙은 특산식물이다.


히어리의 꽃말이 봄의 노래라면 개나리 꽃말은 희망이다. 영춘화는 사랑하는 마음이다. 장수만리화도 꽃말이 있다. 봄의 감동이다. 모두 봄이 가져다주는 희망과 사랑을 의미한다. 꽃이 피는 시기를 보면 장수만리화가 제일 먼저 피고 다음으로 영춘화와 개나리가 서로 엇비슷한 시기에 꽃을 터뜨린다.



집 앞 화단에 무슨 봄맞이 꽃을 심을까? 봄을 맞이하는 꽃은 매화도 있고, 수수꽃다리도 있다. 물론 왕벚나무도 심어져 있다. 모두 하얀 꽃이다. 그래도 노란 꽃이 피는 관목은 있어야겠다.

개나리? 솔직히 안 마당 손바닥만 한 좁은 땅에 지천에 피어나는 개나리에게까지 내줄 땅이 없다. 히어리? 키우고 싶지만 멸종위기 식물이 아닌가? 멸종위기종을 집 마당에 들여놓기 부담스럽다. 장수만리화도 보기 귀하여 어느 화원에서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결국 영춘화에 마당 한 구석을 내주었다. 땅이 모자라 조그만 화분에도 심었다. 꽃이 피면 재미있을 것 같다. 

언젠가 누군가 영춘화를 개나리라고 묻는다면 놀려주듯 말해야겠다.


"개나리야?"

 - 아니야. 개나리 잎은 4장인데 애는 6장이잖아. 줄기도 초록색이고.

"개나리랑 비슷해 보였는데. 요즘 들어온 꽃인가 보네." 

 - 아니야. 옛날 장원급제하면 머리에 꽃을 꽂고 금의환향했잖아. 그 어사화가 이 꽃이야.


올봄 집 마당에 심어놓은 영춘화. 옮겨 심느라 몇 송이 달린 꽃잎이 모두 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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