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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n 17. 2022

서어나무_대낮에도 어두운 숲

서목, 西木, Japanese Loose-flowered Hornbeam

서어나무


태봉산 깊은 산자락에는 억센 근육을 자랑하는 역사들이
숲을 굳건하게 지키고 있다.


분류 

참나무목 > 자작나무과 > 서어나무속

꽃색

붉은색, 노란색

개화기 

4월, 5월

분포

일본, 중국; 강원도와 황해도 이남의 표고 100~1,000m 지대에 자생.


성남시 금곡동에 걸쳐있는 태봉산은 동원동 부수골 입구에서 운재산과 안산, 응달산을 거쳐 하오고개로 내려오는 누비길 5구간 중 가장 높은 산이다. 10.5km 길이의 숲길은 누비길 중 가장 길면서도 한갓진 숲길이라 가끔 태봉산을 홀로 다녀온 사람은 숲이 무서울 정도로 으슥하다고 했다. 

그 이유로 산이 도심 변두리에 있어 길이 외지고 등산로도 제대로 정비하지 못하니 사람들 왕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태봉산이 서어나무가 많이 자라난 자생지라서 그럴 수 있다. 서어나무가 많은 것과 숲이 무서운 것이 무슨 상관인지 머리를 갸우뚱하기 쉽다. 그래서?


한겨울 태봉산 산자락 서어나무 자생지 - 설악골

 

태봉산 기슭 서쪽으로 산허리 옆으로 되돌아가면 설악골이 있다. 그곳은 겨울이면 눈이 항상 녹지 않는 골짜기여서 설악골이라 이름 붙였다. 그쪽 방면에는 서어나무가 군락을 이루며 서식하고 있다. 가끔 숲길에서 참나무 천지 간 서어나무 한 그루라도 발견하게 되면 우뚝 자리 잡고 있는 폼이 참 인상적이다. 한 그루도 그럴진대 서어나무가 무리로 모여 있으면 힘센 역사가 모두 모여 힘자랑하는 것처럼 강한 기운마저 느낀다.

나무줄기가 매끄러운데도 억센 근육 무늬가 연상되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과연 서어나무가 숲의 지배자란 말이 과하지 않다. 


등산로에서 만나는 서어나무. 

              

비단 태봉산뿐만 아니라 분당에서 광주 넘어가는 부천당고개를 지나면 깊은 산속에서 서어나무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서어나무는 과연 울퉁불퉁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만큼 인상적인 수피를 가지고 있었다. 굴참나무나 갈참나무처럼 골이 움푹 들어가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매끈한 회색 표면에 근육 같은 줄무늬가 나무를 휘감고 있는 것이 억세고 강하게 보인다. 

서어나무는 숲의 천이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을 단계인 극상림을 대표하는 수종이다. 서어나무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숲이 오래되고 훼손이 안되었다는 뜻이다.  



서어나무의 가치는 우리나라 제1회 아름다운 마을 숲으로 지정된 숲이 서어나무 숲인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남원의 지리산 산자락 행정마을의 서어나무 숲은 마을과 사람이 숲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잘 보여준다. 한 여름에도 울창한 서어나무가 둘러싸인 마을은 시원하다. 

행정마을의 서어나무는 백여 그루 남짓한데 태봉산의 서어나무 자생지도 족히 수백 그루는 넘는다. 이곳의 숲길은 서어나무 나뭇잎으로 뒤덮여 길과 길이 아닌 곳을 구분할 수 없다. 나무 틈바구니가 좀 넉넉한 곳을 등산로라 짐작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만큼 서어나무가 가득 찬 숲이다. 


잎은 어긋나기로서 붉은빛이 돌지만 녹색으로 되며 타원형 또는 긴 달걀 모양이다.


숲의 천이 과정은 황무지가 풀밭으로 변하고 다시 키 작은 관목림이 되고 이후 키 큰 나무가 자란 숲이 되어 가는 큰 흐름이다. 인간이 간섭만 하지 않는다면 숲은 자연스럽게 치열한 경쟁으로 양수 교목림에서 음수 교목림으로 변해가는데 이 모든 것은 자연스러운 숲의 변화 과정이다. 

숲이 깊어가기 전에는 햇빛을 좋아하는 소나무가 숲을 모두 차지한다. 숲이 점점 울창할 수록 나무의 생육에 불리한 음지에서도 잘 자라는 음수(陰樹)만 살아남는다. 음수에는 가문비나무를 비롯하여 단풍나무 등이 있지만, 단연 서어나무가 으뜸이다. 소나무 밑 그늘에서 서어나무는 죽지 않고 버티며 한 줌 햇살로도 무럭무럭 자라난다. 시간은 서어나무 편이다. 마침내 서어나무는 소나무를 숲에서 밀어내고 최후의 승자로 남게 된다. 

앞으로 우리 숲이 잘 보존된다면 과거 수천 년에 그러던 것처럼 서어나무가 최후까지 숲을 지배하게 되어 가장 흔한 나무가 될 것이다.

 

꽃은 암수한그루로서 잎보다 먼저 4~5월에 핀다.


서어나무는 주로 서쪽에서 자라서 서목(西木)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서목(西木)을 우리말로 ‘서나무’라고 했다가 자연스럽게 부르기 쉬운 ‘서어나무’로 되었다. 이름 서(西)의 유래는 서쪽이 해가 지는 방향이라 그늘이 지는데 식물이름에 붙은 西(서)는 햇빛이 덜 들어도 잘 살아간다는 뜻에서 陰(음)을 상징한다. 그래서 서목으로 불린 서어나무는 그늘에서도 가장 잘 자라나는 음수이다. 나무 잎도 가지마다 빽빽하게 매달려 서어나무 아래는 한 줌의 햇살로 닿지 않는다. 


그래서 서어나무 숲은 그늘지고 어둡우며 음습하기까지 한 것이다. 


서어나무 줄기는 회색의 매끄러운 표면에 울퉁불퉁하다.


그늘진 곳에서 자라는 특성 때문에 서어나무 줄기는 곧게 자라지 못한다. 다른 나무가 자랄 때에는 햇빛을 골고루 받아 성장할 때도 반듯하게 자라지만, 서어나무는 그늘 아래 햇빛을 불규칙적으로 받아가며 이리저리 부분적으로 영양분을 주는 바람에 나무줄기가 울퉁불퉁해진다. 그래서 나무줄기를 잘라보면 나이테 간격이 들쭉날쭉하다.

예부터 서어나무는 목재로써 별 쓰임새가 없었다. 속담에 '못난 놈이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듯이 어쩌면 쓸모없어 놔둔 나무가 숲을 지키는 것인가 보다. 


잎 표면에 털이 없으며 잎자루는 길이 6~18mm로서 처음에는 털이 있으나 나중에는 없게 된다.


서어나무의 표피가 근육과 같다고 해서 영어 이름으로 muscle tree라고 부른다. 학명으로는 Carpinus laxiflora이다.  Carpinus는 켈트어로 나무라는 뜻의 '카'와 머리라는 뜻의 '핀'의 합성어다. 나무의 우두머리라는 의미로 서어나무가 숲의 천이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남아 숲의 주인이 되었다는 의미다. 서어나무는 한자로 견풍건(見風乾)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견풍건은 이른 봄에 채취하는 서어나무 수액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견풍건을 마시면 고로쇠나무처럼 골다공증에 좋다고 한다.



서어나무와 모양새가 비슷한 나무의 종류는 개서어나무, 까치박달, 소사나무 등이 있다. 특히 개서어나무는 개를 뜻하는 구(狗)를 붙여 구서목(狗西木)이라고 부른다. 서어나무처럼 목재는 치밀하고 단단하여 잘 쪼개지지 않아 개서어나무를 외국에서는 아시안 호른빔(Asian hornbeam)이라고 부른다. 짐승의 뿔(horn)처럼 목질이 단단해 뿔나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한편, 서어나무의 꽃말은 ‘제물’이다. 


열매는 길이 4~8cm, 지름 1.8cm로 대가 있고 처지며 10월에 성숙한다.


한겨울 서어나무 열매




일전에 국립경주박물관을 들른 적이 있다.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을 보관한 박물관의 문화재 중 으뜸은 단연 금관이다. 나뭇가지 모양의 금장식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금관과 더불어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귀걸이 또한 화려한 데 나뭇잎 모양의 장식 또한 매우 치밀하고 정교하다. 비치한 확대경으로 자세히 보면 귀걸이는 금실을 꼬아서 금 알갱이를 달아 나뭇잎 모양을 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금귀걸이 모양이 서어나무 열매를 닮았다. 

자세히 보니 정말 그러하지 않은가!


서어나무 열매를 닮은 신라 금귀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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