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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28. 2022

회양목_나는 난쟁이가 아니에요

도장나무, Box Tree , 황양목, 黃楊

회양목

상상이나 했을까?
회양목 그늘 아래에서 햇살을 피하고 있을지... 

분류 

노박덩굴목 > 회양목과 > 회양목속

학명 

Buxus koreana Nakai ex Chung & al.

개화기 

노란색 꽃으로 4월, 3월, 5월 개화

분포지역

우리나라 평안남도 및 함경남도 이남 전 지역에 분포. 석회암지대


K-pop이 한참 유행일 때 각국 소녀팬들은 케이팝의 가사를 번역하며 그 뜻을 헤아리기 바빴다. 특히 방탄소년단의 열성팬 아미(ARMY)들은 새로운 노래가 나올 때마다 노랫말 뜻을 자국 언어로 해석하며 공유하곤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이 의성어나 의태어가 워낙 발달하고 어감도 글자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지라 그 말에 딱 맞은 단어를 번역하는 데 애로가 컸다. BTS 지민의 자작곡 ‘크리스마스 러브’(Christmas love)에 있는 우리말 '소복소복'도 마찬가지다. 

"흰 눈처럼 소복소복 넌 내 하루에 내려와"

영어권에서 우리말 '소복소복'을 'falling falling'으로 번역했는데, 그 뜻이 온전히 전달될 리 없다. 이에 한국 팬들이 '소복소복'의 뜻에 '커다란 눈송이가 아주 온화하게 아름다운 눈 침대를 만들며 바닥에 내려앉는 것을 묘사하는 단어’라고 주석을 달아주었다. 그 말에 팬들은 더욱 열광했고, 아름다운 한국어를 배우려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한다. 그 소식을 접하고 한 겨울 함박눈이 내릴 때 회양목에 소복소복 눈송이가 쌓인 모습이 떠올랐다. 소복소복이란 단어를 아래 사진처럼 그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는 장면이 또 어디 있을까 싶었다.


회양목 위로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인 모습
회양목 위로 함박눈이 소복소복 쌓인 모습


사실 그동안 회양목에는 별 정감이 가지 않았다. 가끔 겨울철 다른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남았을 때 늘 상록인 회양목이 눈에 띄는 경우 빼곤.  

회양목은 공원 산책로나 가로 화단에 길과 녹지대를 구분하기 위해 많이 심는다. 일반적으로 화강경계석이 놓일 자리지만, 그래도 공원인데 회양목 같은 키 작은 관목이 시설 안과 밖의 경계 역할을 한다. 울타리 관목으로 화살나무나 쥐똥나무도 있지만, 단연 회양목을 많이 심는다. 회양목은 처음 삽 한번 파서 심어 놓으면 사람 손이 따로 갈 필요가 없이 잘 산다. 

신축 건물 준공할 때 건축법에 따른 녹지율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심는 나무도 회양목이다. 값도 저렴하고 날이 건조하거나 추워도 그냥 방치해 둬도 사용승인 날 때까지 잘 생존한다. 계절마다 다른 꽃을 피워내는 나무가 다양하게 있건만 조경업자의 게으름과 건축업자의 얄팍한 계산이 화단과 공지 곳곳에 회양목을 채운다. 물론 그들은 회양목이 상록수라 사시사철 초록색을 유지하고, 공해나 추위에도 강해 유지관리가 용이하고 또 조경수로 모양내기 위하여 나뭇가지를 심하게 전정하여도 건강하게 잘 자라기 때문에 선호한다고 한다. 


조경석 사이목으로 많이 식재하는 회양목. 척박한 환경에서도 잘 자란다.


회양목은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식생을 조사할 때 강원도 금강산 회양 부근에서 발견된 나무라고 해서 회양목이라고 부른다. 그전에는 황색 버드나무라는 뜻으로 황양목(黃楊木)이라 불렀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자생식물이라(학명에 'koreana'가 들어간다) 우리 땅 어느 곳이라도 잘 자란다. 특히 경북, 충북, 황해도 지역에서 잘 자라는데, 그 지대가 석회암지대라서 그렇다고 한다. 석회석 지표식물로 불리는 회양목이 잘 자라지 못하는 곳은 오로지 산성토양을 가진 땅이다. 그곳도 석회질 비료만 시비하면 무탈하게 잘 자란다. 


회양목은 목재가 단단하여 예부터 도장, 호패 등에 많이 쓰였다.


주변 크고 작은 화단에 가장 많이 식재되는 회양목이지만 예부터 고급 나무로 취급받았다. 흔한 나무라고 하여도 아주 더디게 자라 나무줄기가 대나무 두께가 되려면 수백 년이 족히 걸린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회양목은 수령 300년 된 여주 영릉의 회양목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지만 줄기 둘레가 고작 팔목 두께에 불과하다. 느리게 자라기 때문에 재질이 매우 조밀해지고 치밀해졌다. 한번 만들면 평생 간직하게 되는 도장으로 회양목이 쓰이는 이유다. 도장나무라고도 불린 회양목은 이름처럼 관인이나 인장, 낙관을 만들 때 사용되었다. 

여인네에게는 회양목으로 만든 얼레빗이 최고로 쳐주었는데, 시집올 때 가져와서 저승 갈 때 가져간다는 속설도 있을 정도로 회양목 재질은 그만큼 매우 단단하다.   

 

회양목 잎은 두껍고 타원형이며 가장자리가 뒤로 젖혀진다.


회양목은 꽃도 핀다. 열매를 맺는 나무로써 당연하다. 다만, 자세히 보지 않아서 느끼질 못할 뿐 회양목은 이른 봄 2월 말에서 3월 초에 연두색과 노란색 중간쯤 되는 색깔의 꽃을 피워낸다. 너무 작은 꽃이고 색도 잎과 비슷한 연노랑의 앙증맞은 꽃이지만, 이래 봬도 이른 봄에는 중요한 밀원식물이다. 봄에는 그 어떤 꽃보다 향기롭고 꿀도 많아 벌들에게 인기가 가장 많다. 


회양목 꽃은 암수한그루로 3~4월에 노란색으로 개화한다.


꽃이 피면 당연히 열매도 맺는다. 열매의 껍질 모양은 세 갈래로 나뉜다. 녹색이었던 열매가 익으면 갈색으로 변하고 갈라진 모양이 부엉이를 닮아서 부엉이 나무라고 부른다. 열매가 익으면 껍질이 벌어지면서 씨방의 씨를 퍼뜨리는데(이런 열매 종류를 삭과라고 부른다.) 대략 9월 초에서 10월 말에 볼 수 있다.


열매는 삭과로 9-10월 말에 익는다. 작은 사진은 부엉이 모양의 열매


사계절 푸를 것 같은 회양목도 가을에는 붉게 물든다. 무관심해서 그렇지 회양목의 본래 이름은 잎이 황색인 버드나무라는 뜻의 황양목(黃楊木)이었던 것처럼 찬바람이 불면 짙은 녹색 잎은 적갈색으로 변한다.  


옛 이름 황양목과 얽힌 말이 몇 가지 있다. 황양목선(黃楊木禪)이란 말은 황양목 즉 회양목이 자라는 모습처럼 수행하는 사람이 더디고 느려 깨달음을 얻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수행자를 일컫는다. 황양액윤년(黃楊厄閏年)은 다른 나무가 잘 자랄 때 회양목은 윤년에 액운을 만나 키가 줄어든다는 뜻으로 무슨 일을 시작하면서 그 일의의 진행이 한참 느릴 때 빗대는 말이다. 


회양목은 옛날에 황색 버드나무라는 뜻의 황양목으로 불리었다.
정말 불타는 듯 붉게 물든 회양목


그런데 사실 회양목은 더디게 자라서 그렇지 제법 크게 자라는 나무다. 국립수목원 국가생물종지식정보에서 회양목 높이는 7m로 기재하였다. 가뜩이나 더디 자라는데 회양목 쓰임새가 화단 울타리목이다 보니 좀 자랐다 싶으면 전정톱으로 가지치기를 싹 해버린다. 회양목이 온전하게 커가는 모습을 볼 수 없으니  회양목은 원래 키가 무릎을 넘어가지 못하는 키 작은 나무라고  오해할 법하다. 


하대원동 야채시장에서 뒷산 오르는 길에 만나는 회양목. 사계절 눈에 띌 정도로 키가 크다.


하대원동 야채시장에서 마실길 따라가다 보면 제법 키가 큰 회양목을 만난다. 물론 주변의 물박달나무와 상수리나무와 견주지는 못하지만 그동안 통념상 간직했던 회양목 이미지를 깨기 충분하다. 회양목 나뭇가지 밑으로 걸어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한겨울에 회양목에 걸쳐진 두터운 눈은 위험하기까지 하다. '소복소복'이란 앙증맞고 정감 있는 말은 키 작은 회양목 위에 하얗게 쌓인 눈을 가리킨다고 하였지만, 산속에서 만난 회양목 위로 쌓인 눈을 보고는 그 말을 거두기로 한다.  


한겨울 회양목 위로 쌓인 눈.




도심 속에서 키 큰 회양목을 또 만나니 이제 회양목이 키 작다는 선입관이 깨지고 말았다. 장소는 신흥역으로 건물 공지에 녹지율을 확보하기 위한 만든 화단에서 키 큰 회양목을 발견했다. 나름 의미를 부여한다면 성남시 도시 생성이 1973년도이고 당해연도 건축허가를 득하여 이듬해 사용승인난 건물 옆에 있는 나무이다 보니 수령은 50년 족히 넘는다. 한 도시의 탄생과 함께 심은 회양목은 도시가 성장한 것처럼 높다랗게 자라났다. 


상상이나 했었을까! 회양목 그늘 아래서 햇살을 피하게 될지. 요즘 같이 무더운 날 신흥역 횡단보도에서 신호가 바뀌기 전까지 나는 이 회양목 그늘 아래에서 기다린다. 그리고 누가 알았는가. 서울 변두리 위성도시 성남이 이렇게 크게 번영하여 거대한 도시가 될 줄을. 

주변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충실하며 인고의 시간을 보낸 존재는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다.  

신흥역 KB은행 앞 회양목은 사람들에게 작으나마 그늘을 만들어 준다.


보이는가! 이 거대한 회양목 굵은 줄기와 넓게 퍼진 가지를! 
회양목은 더 이상 난쟁이 나무가 아니다.


회양목은 난쟁이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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