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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ug 17. 2022

좀작살나무_작살나게 어여쁜 紫珠

Purple Beauty-berry, 자주,  紫珠

좀작살나무

"좀스럽게 나뭇가지가 작살 닮았다고 작살나무가 뭐니!
차라리 작살나게 아름답다고 해서 작살나무라고 해라.


분류 

현화식물문 > 목련강 > 꿀풀목 > 마편초과 > 작살나무속

서식지 

중부 이남 대만, 일본, 중국(중남부)

학명 

Callicarpa dichotoma (Lour.) K. Koch


사람들로 복작대는 숲길은 훼손된다. 사람 하나 간신히 지나가는 오솔길에서 사람과 마주치면 내려가는 사람이 올라오는 사람을 위해 길섶에 비켜선다. 그것이 산을 오르는 예의다. 그 덕에 관목 나뭇가지가 발부리에 차여 부러진다. 몇 번을 반복하면 비켜선 자리만큼 길은 넓어진다. 비탈길에서 힘이 부쳐 쉬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성미 급한 등산객은 앞질러 갈 요량으로 숲길 옆으로 가기도 한다. 몇 번을 반복하면 그 샛길은 등산로가 되고, 다시 기존 등산로와 합쳐져 신작로처럼 넓어진다. 사람 발길로 풀포기 하나 남지 못하는 산길은 비가 올 때마다 빗물에 토사가 씻겨진다. 파헤쳐진 길 군데군데 땅속 박혔던 호박돌도 이따금 튀어나온다. 그러면 그 길은 걷기 불편하다. 사람들은 이제 다른 숲 주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다시 그곳에 길이 생기고 숲은 또 훼손되길 반복한다.     

신작로처럼 넓은 이 길도 처음에는 오솔길이었다. (남한산성길)


등산로에 지주목을 박고 로프를 설치한 이유는 비탈길 사람들이 안전하게 잡고 오르라는 이유도 있지만, 이 선 너머로 가지 말라는 뜻도 있다. 산림보호 차원에서 사람들이 기존 등산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길옆으로 밧줄을 친 것이다. 한마디로 넘지 말아야 할 금단의 구역이다. 눈치 없는 사람들을 위해 로프 중간에 ‘자연을 보호합시다’란 안내문도 걸어놨다. 하지만, 소용없다. 인본주의자들은 자연 속에서 자유를 만끽한다며 통제선 너머 숲을 이리저리 헤집고 다녔다. 

오죽하면 등산로에 로프펜스 대신 철조망을 두를까도 생각했다. 군부대가 자리를 잡은 산에는 철조망이 로프를 대신한다. 요새는 가시철조망보다 면도날처럼 날카로운 윤형압착 철조망이 더 널리 쓰인다. 철조망으로 두른 숲에는 사람들 발길이 뚝 멈춘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 다니는 길에 그럴 수는 없지 않은가. 차라리 찔레나무를 심는 것이 어떨까 생각도 했다. 어차피 철조망이 장미 덩굴 가시나무에서 온 것이니까. 그래도 가시나무를 사람 다니는 길가에 심는 것은 설령 숲을 보호한다고 하여도 심보가 고약한 짓이다.

 

좀작살나무는 숲 속의 바위지대에 자라는 낙엽 떨기나무다.


누군가 솔깃한 제안을 한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알아주는 조경전문가다. 숲길도 공원 산책로처럼 제법 번듯하게 만든 경력이 있었다. 그가 좀작살나무를 심는 것이 어떠냐고 말한다. 요즘 공원에 관상용으로 좀작살나무를 많이 심는데 그 나무가 아름답고 매력적이라고 한다. 조경용으로 심는 나무를 어떻게 산속에 심는가 싶었다. 자칫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부러뜨려 넘어가거나 꽃가지나 열매가 예쁘다고 꺾어 가기라도 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산에다 그런 나무들을 심었다가는 죄다 몸살을 앓아 죽을 것이라 말했더니, 오히려 귀하고 아름다운 나무를 심을수록 다니는 사람들이 조심스러워한다고 했다. 역발상이라나 뭐라나.


좀작살나무 줄기는 곧게 자라며 높이는 1-1.5m이다. 
작살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 숲 속에서 흔하게 자생한다.


작살나무는 나뭇가지에 달린 겨울눈이 물고기를 잡는 작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열매가 좀스럽게 작고 무더기로 열리는 종류를 ‘좀’이라는 접두어를 붙여 좀작살나무라고 부른다. 두 나무 구분은 잎자루와 꽃자루 간격으로 확인한다. 두 자루가 같은 꼭지에 있으면 작살나무이고 약간 간격을 두고 있으면 좀작살나무다. 공원에 조경용으로 식재하는 것은 죄다 좀작살나무다. 작살나무 열매가 좀 더 크지만 열매가 듬성듬성 엉성하게 달려 있고 가지도 짧아 줄기가 휘어지는 모양새가 그리 멋지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꽃과 열매가 모두 흰색이면 흰작살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작살이란 말을 요즘 대단하다는 뜻으로 은어처럼 두루 사용하곤 하던데 이름이 참 조악하다. 하지만, 이름과 달리 나무는 낭창낭창 휘어진 줄기마다 앙증맞은 분홍빛 꽃봉오리가 다닥다닥 붙어있으면 참 아름답다. 가을이면 그 아름다움은 열매로 인하여 한층 더 빛이 난다. 보라색 구슬 같은 열매가 알알이 맺혀있어 보기에도 신비로운 자태를 내뿜기도 한다.      


꽃은 5-6월에 피며, 겨드랑이의 윗부분에 10-20개가 모여 취산꽃차례를 이룬다.


열매는 핵과이고 보라색으로 익는다.


좀작살나무 학명 중 속명인 Callicarpa는 callos(아름다운)와 carpos(열매)가 합쳐진 그리스어로 아름다운 열매가 좀작살나무의 특징이다. 오죽하면 영어로 beauty berry일까! 중국에서도 좀작살나무 열매를 아름다운 보라 구슬(紫珠)이라 불렀다. 자주(紫珠)라 불리는 한약재가 바로 좀작살나무 뿌리와 줄기를 말린 것으로 오한이나 신장염에 약용으로 쓰였다. 유독 우리나라만 열매나 꽃이 아닌 삼지창을 닮은 나뭇가지의 모양으로 멋없게 작명하였다. 혹시 작살나무는 작살나게 멋진 나무라서 그리 부른 것인가?


잎은 마주나며, 도란형 또는 긴 타원형으로 잎 끝이 뾰족하다.


좀작살나무는 보기에 예쁜 것만 아니라 야생조류에게 훌륭한 구휼식량이 된다. 먹을 것이 귀한 겨울 산속에서 때깔도 좋고 맛도 좋은 열매가 박새나 멧새 같은 작은 텃새들에게 보시하기도 한다. 더구나 좀작살나무는 내한성이 강해 양지나 음지 가리지 않고 잘 자라는 우리나라 자생 식물이다. 가을에 땅에 떨어진 종자는 발아가 잘되어, 이듬해 봄 새싹이 땅속에서 움틀 정도다. 그러고 보니 좀작살나무야말로 황폐해진 등산로에서 숲을 복원시킬 수 있는 경계 수목으로 안성맞춤 같다.      


열매는 지름 3~4 밀리미터 정도 되는 핵과인데 둥글고 10월에 짙은 자주색으로 익는다.


생활권등산로 정비공사 명목으로 훼손된 등산로를 복구하는 장소는 창곡동에서 단대동으로 넘어가는 숲길로 정하였다. 내가 태어난 고장이 단대동이라서 그런 것은 아니다. 더구나 창곡중학교에 다녔을 때부터 그 숲길을 자주 다녀봤기 때문도 물론 아니다.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주된 등산로이고, 몇 년 전 위례신도시가 생기고 나서부터 산행객이 부쩍 늘어나 숲길 훼손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단대라는 지명은 탄리에서 남한산성으로 가기 위해 넘어야 하는 그 고개 흙이 붉었으므로 단대골이라 부르게 된 것에서 비롯되었다. 과연 그런지 흙바닥을 등산화 뒤꿈치로 쿡쿡 찍어대니 흙 알갱이가 자잘하게 부서졌다. 붉은빛인지 얼른 구분되지 않았다. 흙이 붉다는 것은 황토가 아니라면 다소 척박한 땅이다. 원래 비옥한 땅은 썩은 나뭇잎이나 곤충 사체 같은 유기물이 풍부하여 흙이 기름지고 검은빛을 띤다. 여기 단대동 숲길은 빗물에 비옥토가 씻겨 내려가 부식물은 녹아 없어지고 대신 철 같은 성분이 남게 되어 붉은빛을 띠었다.    

  

좀작살나무라는 이름 대신 차라리 'purple beauty berry'라는 영어 이름 그대로 갖다 쓰면 어떨까 싶다.


가을에 식재를 해서 그랬는지 가지마다 자주색 열매가 고스란히 매달려있다. 손으로 어루만지고픈 유혹을 간신히 눌렀다. 이렇게 아름다운 빛깔이 있을 수 있을까! 시간 지나 철이 바뀌고 눈이 펑펑 내린 어느 겨울날 좀작살나무를 심은 곳에 가보았다. 가까이 갈수록 새들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보아도 좀작살나무 열매의 보랏빛 색상은 금세 눈에 띌 정도로 하얀 눈 속에서 더 빛이 났다. 그 뿌듯함이란.     


하지만, 그다음 해 수백 그루 심은 좀작살나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다시 메마른 황폐지만 남았다.

식생복원 차원에서 좀작살나무 수백 그루 심은 숲길은 다시 훼손되고 나지화가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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