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비 오는 풍경
제19호 태풍 솔릭(SOULIK)이 북상하면 우리나라를 관통하여 많은 비와 강한 바람으로 각종 사고가 발생할 것이란 뉴스가 온종일 장식했었다. 그 덕에 도내 학교도 휴교를 하며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많은 준비를 하였다. 특히 산림에 대하여 솔릭이 일으킬 피해는 2010년 곤파스 태풍에 의한 피해와 맞먹는다고 하여 사전 산림 내 전도 예상되는 수목을 미리 제거하고 등산로도 일부 폐쇄하는 등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었다. 실례로 2010년 태풍 곤파스는 4시간 만에 한반도를 통과하며 사상자 18명, 1673억 원의 재산피해를 냈다. 물론 태풍이 휩쓸고 간 산에는 많은 나무가 쓰러져 황폐화되었다.
성남 누비길이 지나는 남한산성, 영장산, 인릉산에는 특히 태풍으로 인한 산림 피해가 많아서 등산로 변에 무려 1,934주의 아름드리나무가 쓰러진 이로 인하여 등산로가 한동안 단절되었다. 이에 대한 복구도 군 병력의 지원 하에 전 직원이 동원되어 며칠 동안 누비길 등 등산로에 쓰러진 나무를 제거한 끝에 등산로를 정상적으로 개통할 수 있었다.
누비길을 걷다 보면 숲길 비탈면 아래로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 많이 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거의 2010년 태풍 곤파스가 휩쓸고 간 후 넘어진 나무들이다. 그때 뿌리가 얕은 나무들은 거의 다 쓰러졌었다. 특히 아까시나무가 많이 넘어갔었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 수년이 훨씬 넘었지만, 거센 바람에 나무들이 이리저리 치여 생채기 난 숲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태풍 솔릭이 8월 22일 오후 제주도에 상륙했을 때, 중심기압은 960 hPa이고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39m/s였으며, 시내 도로에는 굵은 야자수가 강한 비바람에 속절없이 부러져 도로에 나뒹굴며 전신주가 넘어져 인근 마을이 정전되고 여러 시설물이 파손되는 피해를 겪었다. 특히 바람이 매우 강해 23일에는 한라산 진달래밭에 초속 62m의 기록적이 강풍이 관측되었고, 시간당 1,000mm 안팎의 물폭탄이 쏟아져 예전 곤파스 때의 악몽을 기억한 이들을 긴장케 하였다.
하지만, 미크로네시아 어느 작은 폰페이 섬에서 족장을 뜻하는 '솔릭'은 예상보다 큰 피해를 주지 않고 24일 강원 강릉 지역을 통해 동해상으로 빠져나갔다. 내륙을 관통한 태풍의 강도는 ‘약’, 크기는 ‘소형’이었다.
당초 '솔릭'은 강한 중형 태풍으로 북상해 느린 속도로 수도권 지역 등을 강타할 것으로 예보되어 2010년 태풍 ‘곤파스’보다 강력한 위력을 떨칠 것으로 예상됐지만, 예측과 달리 제주도와 서해에서 오래 머물며 많은 비와 바람을 쏟아부은 상태로 한반도에 들어왔고 이후 세력이 급격히 약해진 것이다. 태풍이 빠져나간 직후 비가 간간이 오기도 하였으나 태풍 특보는 해제되어 폐쇄된 등산로는 재빨리 개통이 되었다. 혹시라도 '솔빅'이 지나간 누비길에 나무가 전도되거나 시설물이 훼손이 되었는지 살펴볼 겸 겸사겸사 누비길을 걸었다.
태풍이 지나간 숲은 바람은 멈췄으나 아직 비는 멈추지 않았으며, 나무와 풀은 비에 한껏 물먹어 초록이 싱그러웠다. 지난여름 지독한 폭염에 자연은 촉촉한 운무에 싸여 그 더위를 가라앉히며 나무를 치유하였다.
도심은 날은 흐렸으나 비가 멈췄지만 능선을 올라간 누비길은 후드득 빗방울이 간헐적으로 쏟아졌다 멈추기를 반복하였다. 그 덕분에 물기를 흠뻑 머금은 초목 사이를 걸어가며 길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물안개와 산안개를 감상할 수 있었다.
공기 좋은 산속에서 한두 방울 내리는 비라 반가운 마음이 컸다. 나뭇잎이 무성한 숲길로는 비가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아 우비를 꺼내지는 않았다. 걸쳐 입는 것도 귀찮기도 했고, 이런 날에는 그냥 비 맞으며 산길을 걷는 것이 나을 듯싶었다. 솔직히 여름 내내 폭염에 시달린 터라 비 맞으며 걷는 것은 즐거움을 선사한다. 내리는 비도 옷이 흠뻑 젖지 않을 정로라 우산을 쓰지 않고 길을 걸을 수 있다.
중학생이었을 때일까, 비가 쏟아져 내릴 때 집 앞 대문에서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골목 위쪽에서 한 젊은 처녀가 하얀 원피스를 입은 채 비 맞고 거리를 걷고 있었다. 긴 머리가 빗줄기에 흠뻑 젖어 볼에 달라붙었지만, 처녀는 뛰어가지 않고 고개만 숙인 채 걸어갔었다. 마침 옆에 계시던 아버지도 우산도 안 쓰고 가는 모습을 보시고 비 오는데 웬 지랄이냐고 혀를 차셨지만 어린 마음에 그 이미지가 수수롭기 그지없었다. 그때가 학교에서 국어시간 황순원의 『소나기』를 배웠을 때다. 비가 떨어지는 수숫단 속에서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야기에 설레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산을 내려오는데, 떡갈나무 잎에서 빗방울 듣는 소리가 난다. 굵은 빗방울이었다. 목덜미가 선뜻선뜻했다. 그러자, 대번에 눈앞을 가로막는 빗줄기. 비안개 속에 원두막이 보였다. 그리로 가 비를 그을 수밖에. 그러나, 원두막은 기둥이 기울고 지붕도 갈래갈래 찢어져 있었다. 그런대로 비가 덜 새는 곳을 가려 소녀를 들어서게 했다. 소녀의 입술이 파아랗게 질렸다. 어깨를 자꾸 떨었다. 무명 겹저고리를 벗어 소녀의 어깨를 싸 주었다. 소녀는 비에 젖은 눈을 들어 한 번 쳐다보았을 뿐, 소년이 하는 대로 잠자코 있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中]
어쩌면 어린 나이에 읽은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사랑』에서 비가 쏟아지는 날 성인 남녀의 물씬 풍긴 관능미에 넋 나갔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어린 전나무 사이로 아무 데로도 통할 것 같지 않은 오솔길로 접어들어 무성한 전나무 사이를 뚫고 나가자 곧 해묵은 참나무 숲이 나타났다. 그 길을 곧장 따라 나가자 바람에 휘는 숲의 정적 속에서 망치 소리가 한결 가까워졌다. 숲은 바람 소리 속에서도 정적을 자아냈다. …… 문을 열어젖히고 마치 강철로 된 장마같이 직선을 그으면서 퍼붓는 비를 보자 그녀는 갑자기 그 속으로 달려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마침내 그녀는 일어서서 재빨리 양말을, 겉옷을, 그리고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쏟아져 내리는 비를 향하여 두 팔을 번쩍 추켜올리며 지난날 배웠던 율동 체조의 동작을 하듯 움직이면서 빗속을 달려갔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 中]
비 맞으며 걷는 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모처럼 내리는 빗방울에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는 듯했다. 비가 그치면 넓적한 잎사귀들은 다 떨어지고 가느다란 바늘잎만 나무에 달려 있을 것이다. 숲길 걷는 중 가랑비를 맞으니 갑자기 가는 비와 제목이 연관된 시가 생각났다. 첫 시집을 앞두고 종로 파고다 극장에서 너무나 일찍 요절한 기형도 시인이 지은 「가는 비 온다」라는 시다. 그의 시는 우수와 감성이 뒤섞여 절망적인 색채가 묻어났다. 젊은 날, 갈 길을 방황하는 길목에서 그의 시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내가 아는 젊고 똑똑한 후배는 항상 메신저 아이디를 기형도의 시 제목으로 뽑아놓곤 했다. 언제나 밝고 환한 웃음의 표정을 갖는 후배가 기형도의 시를 항상 읊조리고 있다는 것은 가슴이 아팠다. 그 후배는 「가는 비 온다」를 외우다시피 읽었고, 「새벽이 오는 方法」이라는 시제를 자신의 아이디로 오랫동안 사용했었다.
가는 비 온다
기형도
간판들이 조금씩 젖는다
나는 어디론가 가기 위해 걷고 있는 것이 아니다
둥글고 넓은 가로수 잎들은 떨어지고
이런 날 동네에서는 한 소년이 죽기도 한다.
저 식물들에게 내가 그러나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언젠가 이곳에 인질극이 있었다.
범인은 휴일이라는 노래를 틀고 큰 소리로 따라 부르며
자신의 목을 긴 유리조각으로 그었다
지금은 한 여자가 그 집에 산다
그 여자는 대단히 고집 센 거위를 기른다
가는 비는 사람들의 바지를 조금 적실 뿐이다.
……
나는 안다, 가는 비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며
누구도 죽음에게 쉽사리 자수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뿐인 입들을 막아 버리는
가는 비……오는 날, 사람들은 모두 젖은 길을 걸어야 한다.
가는 빗속에서 젖은 숲길을 거닐며 완만하게 솟은 봉우리에 다다랐다. 벤치가 있었지만 젖은 채 물기를 머금어 앉지를 못했다. 대신 간단히 허리를 돌리며 몸을 풀었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조병화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과거가 있단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의 과거가...
비가 오는 거리를 혼자 걸으면서
무언가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