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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Mar 09. 2019

만경(萬景)이나 망경(望景)이나  매한가지

제6구간 청계산길 국사봉, 이수봉, 석기봉, 망경대, 매봉

청계산의 거두 네 봉우리


성남 누비길의 산은 광주산맥의 지맥에 해당된다. 추가령대 남쪽에 있는 산맥으로 한강 이남의 산맥 줄기는 하남의 검단산과 성남의 검단산, 광주의 문형산을 지난다.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지고 탄천 쪽으로 완만한 사면을 형성한다. 탄천을 중심으로 서쪽 산지는 청계산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고도가 낮아지며 동쪽 산지보다 고도가 높다. 최고 높이가 해발 618m로 서쪽에 위치한 관악산(629m)과 더불어 서울 남쪽 방벽을 이루는 산이다. 관악산이 화강암 기반으로 바위가 많이 솟아 있는 것이 보이고, 청계산은 화강편마암 산지로 흙이 덮여 있다. 그래서 요즘같이 날이 가물 때 청계산을 오를라 치면 발걸음마다 흙먼지가 풀풀 풍긴다.

하지만 산기슭에서에서나 흙이 두툼하게 덮여있는 육산(肉山) 일지 몰라도 정상 부근 상봉은 모두 거친 바위 암봉이다. 성남 누비길 제6구간은 청계산의 거두라 할 수 있는 네 암봉을 넘어야 하는 데, 차례대로 국사봉(538m), 이수봉(545m), 망경대(618m), 매봉(583m)이다. 망경봉과 매봉 근처에도 커다란 바위 산인 석기봉과 매바위가 있기도 하다. 봉우리로는 서울시 서초구 옥녀봉(375m)이나 과천시 매봉(368m)도 있지만, 네 거봉과 어깨를 겨누지 못한다.

 

석양에 보이는 청계산. 왼쪽부터 차례대로 국사봉, 이수봉, 망경대, 매봉이다.



만경(萬景)이나 망경(望景)이나 매한가지


이수봉을 지나 맞이하는 봉우리는 망경대로 청계산의 최고봉이다. 망경대는 고려 말 유신 조견이 고려의 수도였던 개경을 바라보면서 멸망한 고려를 그리워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개국하자 고려 유신들은 개풍군에 있는 두문동 외진 곳으로 은둔하여 밖으로 나오지 않고 망국의 한을 달랬다. 그래서 두문불출이란 고사성어가 생기기도 했다. 고려 유신 일부는 청계산으로 들어와 개경을 바라보며 옛 수도를 흠모하며 설움을 달래기도 했다.

다른 설로는 망경대가 청계산의 주봉으로서 이곳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면 만 가지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해서 만경대라고 불렀다가 망경대로 고쳐 불렸다는 것이다. 만경대라는 이름은 북한산에도 있다. 이수봉과 백운대와 함께 삼각산의 한 봉우리를 이루며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다 하여 만경대다. 무학대사가 조선의 새로운 도읍터를 바라봤다고 하여 국망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만경(萬景)이나 망경(望景)이나 전망 좋은 바위 봉우리를 의미하긴 마찬가지다.


석기봉에서 올려다본 망경대.  정상의 석대(石臺)가 망경대 역할을 대신한다.
청계산 망경대가 폐쇄되기 전 최고 봉우리 사진


오늘날 청계산 망경대로 가는 등산로가 폐쇄되어 망경대 바로 밑에 있는 바위가 청계산 최고봉이 되었다. 이름은 석기봉으로 유래는 미군부대가 들어섰다 하여 양키봉으로 불리다가 청계산 바위 이름으로 적합하지 않아 석기(石基) 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북쪽으로 관악산, 서울 대공원, 현대미술관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동쪽으로는 탄천과 너머 누비길 1구간 남한산성길부터 검단산길, 영장산길, 불곡산 길이 막힘없이 한눈에 볼 수 있다. 정상에는 바람도 제법 거세 강원도 고봉 못지않게 가슴이 활짝 열리니 막힌 시름이 한순간 뻥 뚫리는 쾌감을 느낄 수 있다.

망경대를 대신하여 청계산 최고봉을 차지한 석기봉. 해발 582.3m
석기봉 위에서 막힘없이 산하를 굽어 볼 수 있다. 청계산 제일 봉오리.


바위가 나오니 그 밑은 과연 바닥을 알 수 없을 만큼 벼랑이었다. 바위 한편에 발을 디디고, 한 손으로 거친 바위 돌기를 움켜쥐었다. 다리 한쪽을 치켜들고 튀어나온 턱에 걸치면 가뿐하게 올라갈 것 같았다. 하지만 내 다리는 뻗치지도 못하고 허방을 휘젓다가 내려왔다. 다리 근육이 찢어질 듯 통증이 몰려왔다. 몸이 예전 몸이 아니었다. 뻗는다는 생각대로 뻗히는 사지가 더 이상 아니었다. 바위틈에 손을 비집고 간신히 아등바등 올라갔다....(중략)...  바위 정상에서 고개 들어 보니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사방팔방 시야가 모두 확 트였다. 아무런 장애 없이 시력이 닿은 곳까지 한껏 보였다. 하늘과 산릉선이 저 멀리 맞닿는 곳이 보였다. 눈이 침침해 희뿌옇게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서해인지 의문이다. 바로 여기가 석기봉이다. 석기봉에서는 서쪽으로 서해바다를 볼 수 있다지만 북쪽으로는 망경대에 막혀 있다. 망경대는 청계산 정상에서 용의 머리인 양 험상궂게 생겼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좌청룡 청계산, 우백호 수리산


청계산에서 바라본 관악산은 서울 남쪽 바위산 중 북한산과 더불어 골산(骨山) 중 우두머리 격이다. 단단해 보이는 거대한 암괴가 곳곳에 불끈불끈 솟은 모양이 거칠고 웅장해 보인다. 수십 개의 바위 봉우리가 들어차 있는 모습이 위풍당당했다. 일만 이천 봉의 금강산과 비교하기도 하여 서쪽에 있는 금강산이라 하여 서금강이라고 불리니 여기 청계산을 거느릴 만하다. 그에 반해 청계산은 산자락이 깊고 넓어 맑은 계곡도 많고 산림이 잘 발달해 있다. 풍수지리학적으로는 청룡이 승천한 청계산을 좌청룡, 군포에 있는 수리산을 우백호로 부르기도 한다.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있는 주인공은 물론 해발 629m 관악산이다.



청계산 매사냥터 매봉


완만해 보이는 청계산도 매봉에 오르게 되면 골산의 늠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매봉에 오르면 서울 시내가 산 아래로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서울에서도 손꼽히는 우수 조망지역이다. 석기봉에서 내려다본 산하는 남녘과 동녘의 하늘 아래가 되겠고, 매봉 정상에서 내려다본 산하는 북녘과 서녘의 하늘 아래가 되겠다. 석기봉은 암봉 위 바위에 앉아 홀로 하늘 아래를 내려다본 한가로움이 있었다. 반면 매봉은 서울이나 과천에서도 올라오는 등산코스가 많이 있어 사람들로 북적인다.

매봉 정상석. 해발 582.5m로 유치환 시문이 새겨 있다.


매 사냥터가 있는 봉우리라서 매봉이라 불리며 높이는 582.5m이다. 높은 봉우리에서 사방이 탁 트여있으니 매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먹잇감을 노리기에 안성맞춤이겠다. 매의 눈은 시력이 9.0으로 동물 중 시력이 가장 높아 수백 미터 창공 위에서 작은 사물도 식별할 수 있다. 반면에 밤에는 잘 볼 수 없어 부엉이가 종종 쉬고 있는 매를 오히려 사냥하기도 한다.

매봉 옆의 매바위.


매바위에서 내려다본 성남 시내

매봉 표지석 뒷면에는 유치환의 시 「행복」 중에서 일부 구절이 돌 위에 아로새겨져 있었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시 푸른 하늘 우러렀으며
이렇듯 마음 행복되노라


시의 전문은 2연으로 된 시이지만 첫 문장만 바위에 새겼다. 여백을 조정하면 나머지 구절도 새길 수 있었을 텐데 아쉽다. 나머지 시 구절은 이렇다.


나중 죽어 서럽잖아 더욱 행복함은
하늘 푸른 고향의 그 등성이에
종시 묻히어 누웠을 수 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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