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구간 인릉산길 신구대식물원과 대왕저수지
누비길 마지막 남은 구간은 제7구간 인릉산길로 상적동에서 출발한다. 인릉산길 주요 코스는 청계산 옛골에서 시작하여 신구대학 식물원 뒷산을 지나 인릉산 정상과 범바위산을 넘으며 약 9.5㎞를 걷는 평이한 숲길이다. 인릉산은 청계산 산지와 연결되어 성남시 서쪽으로 서울시 서초구의 내곡동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해발 높이는 326.5m이다. 주봉인 인릉산 높이가 누비길 중 가장 낮아 손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완만한 숲길이다. 제6구간 청계산길에서 국사봉부터 이수봉, 망경대, 매봉을 넘나 들었던 것에 비하여 가벼운 마음으로 떠날 수 있다. 그리고 인릉산 숲길에서 벗어나면 세곡천과 탄천을 따라 대략 2.7㎞ 걷는다. 그러면 누비길 남한산성길 초입에 닿는다.
인릉산 첫 구간은 마을 주거지를 지나 밭 사이로 난 길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간다. 경작지와 숲 사이는 자연과 인간의 완충지대인 양 칡이 바닥을 기고 들풀이 마구 자라난 초지를 지나쳐야 한다. 초지는 곧 키 작은 관목들로 바뀌고 이내 키 높은 침엽수림과 잎이 넓은 참나무 숲이 나타난다. 인릉산길로 접어드는 것이 마치 숲이 회복되어 가는 천이 과정을 보는 것 것 같다.
숲길을 조금 걸으니 묘지 여러 기가 안치된 탁 트인 곳을 만나고, 그곳을 지나치니 인릉산길을 알리는 입간판을 마주치게 된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안내판 등산지도는 단조로운데, 산길에서 이정표 삼을 수 있는 곳은 고작 인릉산과 범바위산밖에 없기 때문이다. 산은 낮고 지세가 완만하나 능선에 한번 올라타면 동남쪽으로 산기슭에 안긴 저수지를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대왕저수지다.
대왕저수지는 청계산과 인릉산 산지에서 발원하여 탄천에 유입하는 상적천 상류부에 1958년 축조된 저수지로 농업용수로 사용되다가 용도 폐기된 후 한때 낚시터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낚시객의 급격한 증가로 수질악화와 자연생태계가 심하게 훼손되어 낚시 금지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능선에서 바라본 대왕저수지는 숲 속의 보금자리처럼 아늑하게 산기슭에 담겨있다. 저수지 옆 도로로 지나가면 바람에 일렁이는 수면과 한들거리는 버드나무를 볼 수 있기도 하다. 호수 경관의 백미라 하면 물가에 버드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가운데 물안개가 가득 피어나는 모습이다. 새소리 소곤대며 버드나무 가지 한들한들 흔들리고 남루한 보트 한 척 물가 옆으로 줄에 묶여 있다면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치유된다.
능선 높은 곳에서 저수지를 보아도 수면이 잔잔하고 햇살에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요즘처럼 잎사귀 없는 갈색 숲에서 파란 물결을 보니 흙 속에서 파란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보기 좋다.
낚시금지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대왕저수지는 개발제한구역에 위치하여 방치된 상태이나 앞으로는 휴양과 정서생활 향상에 기여하는 생태환경으로 조성될 예정이다. 청계산과 신구대식물원과 연계하면 대왕저수지의 생태적 잠재력이 드러나고 앞으로 새로운 수생 테마공원으로 일신할 수 있을 것이다.
산불감시탑 철조망 바깥으로 칡넝쿨이 아무렇게나 자라나 담을 넘는다. 감시탑 주변 잡초와 칡넝쿨 지대를 지나 숲길을 올라오면 초록색 펜스가 둘러 쳐져 있고 가던 방향에서 왼편 좁은 길로 꺾어져야 누비길을 찾아갈 수 있다. 만약 큰길 따라 똑바로 가면 신구대식물원 가는 방향인데, 그 길은 식물원 관계자 외에는 출입을 금하는 곳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
신구대 식물원은 커다랗고 둥근 외관의 온실이 랜드마크이며 내부에는 도서지역 식물들과 다양한 초본류를 사시사철 개화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부지가 워낙 넓다 보니 식물원 안에는 서양 정원, 계절초화원, 철쭉원, 허브원, 습지 생태원과 곤충생태관, 나무놀이터 등 다양한 테마 공간이 있다. 넓은 정원은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고 옛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담장이나 장독대, 펌프 우물이 놓여 있다. 한편에는 봉숭아, 접시꽃, 과꽃 등의 야생화가 심겨 있으며, 주변 인릉산 기슭에는 은행나무를 비롯하여 느티나무, 벛나무, 소나무, 메타세쿼이아, 회화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등 많은 나무가 자라났다.
식물원 내 숲 전시관은 어린이 및 일반인들의 환경교육과 체험학습의 장으로써 활용되고, 이밖에 하늘정원, 전통정원, 어린이정원, 수목관찰원, 약초원, 습지생태원, 멸종위기 식물원, 수국원, 철쭉원, 국화원, 붓꽃원, 포도원, 라일락원, 둥굴레원, 옥잠화 군락지, 은방울 군락지, 맥문동 군락지, 꽃무릇 식재지, 단풍나무길 등 많은 주제원이 자리 잡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약 800여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이들을 한꺼번에 보기는 매우 어렵지만, 이곳 식물원 나무 관찰원에서는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은행나무, 느티나무, 벚나무, 소나무, 메타쉐콰이아를 비롯하여 가래나무, 회화나무, 잣나무, 자작나무, 귀룽나무 등도 관찰할 수 있다. 이런 나무는 식물원 부지 내 뿐만 아니라 인릉산 기슭까지 자라나 숲을 더욱 다양하고 풍요롭게 한다.
청계산처럼 사람이 많이 찾지 않아 인릉산에 난 숲 속 길은 오솔길처럼 폭이 좁고 고즈넉했다. 오솔길의 ‘오솔’이라는 뜻은 사방이 무서울 만큼 고요하고 쓸쓸하다는 뜻이니만큼 인릉산길은 오솔길처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어 적막했다. 그래서 오히려 조용하게 사색하며 걷기 좋은 길이기도 하다.
사시사철 길 따라 여러해살이 꽃이 피기도 하는데, 지난가을에 걸을 때는 구절초와 쑥부쟁이, 개미취, 감국, 산국이 늦가을의 정취를 풍기고 있었다. 올봄에는 이곳에서 봄바람에 살랑이는 처녀치마와 같다고 하여 이름이 처녀치마인 꽃을 기대해 본다.
권여선 작 처녀치마
한때 나의 표정 하나,
말 한마디에 몸이 달아 발을 구르던 너,
기적처럼 네 몸에서 연둣빛 실타래 같은
처녀치마의 잎사귀가 떨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