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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Apr 19. 2019

탄천 넓은 학두들기들과 지석묘

제7구간 인릉산길 학두둘기들과 세곡천, 지석묘

심곡동, 신촌동, 오야동


성남시 상적동 옛골 방면에서 넘어오는 누비길 마지막 구간 인릉산길은 신촌동 행정동에서 숲길이 끝난다. 신촌동은 심곡동과 오야동, 신촌동 세 법정동이 합쳐진 법정동이다. 각 마을마다 이름에 읽힌 유래가 있는데, 먼저 심곡동은 인릉산 밑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았기에 심곡(深谷)이란 이름이 붙었다. 오야동의 명칭은 예전에 기와를 구웠으므로 와실이라 칭하던 것이 오야리로 변했다는 설과 오동나무가 많았으므로 오야소(梧野所)라거나, 오동나무 열매가 잘 열렸으므로 오야실(梧野實)이란 것에서 유래한다. 신촌동의 순 우리말은 '새말'로 새로 된 마을이라는 뜻이다. 그 유래는 을축년 대홍수 때 삼전도가 침수된 후에 이곳으로 이주하여 온 수재민들로 이루어진 새로운 마을이었기 때문이다.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일제강점기에 일어난 홍수로 시간당 650㎜가 내려 서울 전역이 물바다가 되고 육백 명 넘은 사람이 물에 빠져 죽은 재난이었다. 이때 송파나루와 송파 시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뽕나무밭으로 유명한 잠실도 쑥대밭이 돼 버렸다. 그 난리 통에 삼전도에서 몰려온 이재민이 만든 마을이 신촌동 새말이다. 

누비길에서 보는 벚꽃. 청명한 봄 하늘에 꽃송이가 새하얗게 장식되었다.

한편, 삼전도는 병자호란 패배로 이경석 선생이 지은 굴욕적인 삼전도비가 있는 곳이다. 조선 말기 고종 임금이 치욕의 상징물인 삼전도비를 강물 속에 버렸다. 일제는 이 비석을 기어코 찾아내어 보물로 지정하여 잘 보존했다. 조선의 자주성을 깎기 위한 목적으로 이 나라가 청나라의 속국이었음을 거짓 퍼뜨리려는 저의였다. 을축년 대홍수에 사람과 집들이 떠내려갔어도 삼전도비는 잘 보존되었지만, 광복 후에 삼전도 사람들이 다시 땅속에 깊이 파묻어 버렸다. 그런데 그 후로도 다시 홍수가 발생하여 비석이 흙 위로 모습을 또 드러냈다. 결국, 치욕적인 역사도 역사라 하여 사적으로 지정하고 지금까지 보존하기에 이르렀다.

4월에 피는 꽃은 벚꽃 말고도 자태가 화려한 목련도 있다.


사계절 짙푸른 소나무


숲길에서 나무도 듬성듬성해지고 묘지와 경작지가 보이면 이제 산행도 끝났는가 싶다가도  마을 인근에 다다라서 아름답게 자라난 소나무를 볼 수 있다. 멀리서도 그 자태가 훌륭하여 어서 보고픈 마음에 발걸음을 재촉하게 한다. 과연 그곳에 이르면 눈앞에 아름드리 금강소나무가 장엄하게 우뚝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수십 그루가 짙푸른 솔잎을 나뭇가지에 얹고 위엄 있게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다. 숲길 끝자락에서 보는 행운이라 생각들 만큼 잘 가꾸어진 소나무 숲이었다. 금강소나무는 태백산맥 산줄기에서 옮겨온 듯 자태가 늠름하면서도 아름다웠다. 나무줄기도 수십 미터 높게 자라고 붉은 금빛을 강렬하게 내뿜고 있었다. 숲길을 걸으며 간혹 인상 깊은 나무를 여러 번 마주치고 발길 멈춰 나무의 자태를 감상하곤 했었다. 그중에서 으뜸이 인릉산 마지막 숲길에서 만난 이 금강소나무가 단연 최고다. 위풍당당하게 자라난 모습에 연신 감탄했다. 소나무를 솔이라고 부르는데 솔자는 거느릴 솔(率)로 쓰고 우두머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새삼스럽게 길은 멈춰야 끝나는 것이지 걷고 있다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다. 

수정구 신촌동 산 6-1번지에 있는 수백 년 된 소나무 군락지

신촌동의 소나무 군락지는 수령이 삼사백 년을 훨씬 넘겨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처럼 의연한 모습이고, 그 아래 지나가는 나그네에게는 햇살을 가려주는 그늘을 만들어준다. 바닥은 솔잎으로 겹겹이 쌓여 내딛는 발걸음마다 양탄자 위를 걷는 듯 푹신푹신하다. 누비길 긴 거리를 걷고 마침내 완주한 이를 맞이하고 위로해주는 카펫과도 같다. 소나무 숲을 지나면 마침내 누비길 제7구간 인릉산길 종점에 닿는다. 

소나무 숲을 끝자락에 인릉산길 안내 현판이 보인다.

넓은 경작지 학 두들기들


인릉산길은 숲길에서 벗어나도 마을을 지나고 서울공항 담벼락을 따라 세곡천까지 대략 2.7㎞ 구간을 더 걸어야 처음 걸었던 제1구간 남한산성길과 맞닿는다. 인릉산길에서 오야동이나 심곡동 이외에도 고등동이라는 지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여기 일대 자연환경은 청계산과 인릉산의 높은 산지와 깊은 계곡이 자리 잡고 탄천까지는 넓은 들판이 펼쳐진 모습이다. 지금은 넓은 서울공항이 자리 잡았지만, 공항 활주로가 들어설 만큼 예전에는 드넓은 들판이었다. 그래서 이곳 지명이 학들이 많이 날아와 놀았다고 하여 학두들기들이라고 했다. 

공항 붉은 벽돌 담벼락을 따라 걷노라면 길은 끝나지 않을 만큼 길기도 하다. 이리 널찍한 평야 지대였다면 학이 충분히 놀러 올 수 있었을 거로 생각한다. 학이 올 수 있으려면 학의 넓은 날개만큼 넓은 들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학의 날개를 볼 수 없고 머리 위로 비행기 날개만 바라볼 수 있다.

세곡천 따라 걷는 누비길은 학두들기들이라고 불렸을 만큼 넓은 들판이었다.

이런 지형적 환경은 선사시대 이상적인 생활조건과 부합된다. 청계산을 중심으로 얕은 구릉이 있고 탄천 주변으로 비옥한 평야 지대가 있어 선사시대 사람들이 모여 살기 적합한 지형이다. 옛 조상들이 여기서 터를 잡고 살았을 터이지만, 지금까지 유적이나 유물로 남아서 전달되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 지금도 고등동에 보금자리 주택지구 조성한다고 일대 산 전체를 파헤치고 있고 그전에는 서울공항 조성하면서 훼손된 유적지가 상당히 많았다. 그나마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 수 있는 유적이 일부 남아있다. 사송동 쪽에 있는 고인돌이라고 부르는 지석묘군이다. 지석묘군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유적이다. 지석묘들은 이 일대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선사시대 살림살이를 보여준다. 아마 인릉산 기슭에도 몰라서 그렇지 여러 지석묘가 나무나 흙속에 파묻혀 있을 것이다. 


성남시내 곳곳에서 발견된 지석묘는 분당중앙공원에 옮겨져 전시되었다.

성남시 일원에서는 개발할 때 땅을 파헤칠 때마다 유적지가 많이 발견되는데, 수정구 태평동과 수진동 등지에서 판교-구리 간 고속도로와 관련 발굴 조사할 때도, 분당 택지지구 개발 과정에서도 지석묘가 많이 발굴되었다. 특히 분당에서 발견된 고인돌은 171기에 이르렀고 그중 대표적인 10기는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중앙공원 내에 원형의 형태로 이전 복원하였다. 판교를 개발할 때도 선사시대와 삼국시대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어 판교박물관을 짓고 전시할 정도였다.  

지석묘는 고인돌로 불렸던 선사시대 묘로서 작은 돌이 큰 돌을 받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세곡천 따라 걷는 누비길


누비길을 제대로 가기 위해서는 공항 벽돌담장 길이 끝나는 지점 세곡 3교에서 다리를 지나 밑으로 내려간 후 세곡천을 따라가야 한다. 세곡천을 기준으로 서울과 성남의 경계가 나뉘며, 누비길은 서울 땅을 밟으며 간다. 성남 누비길이라면서 서울 서초구를 지나는 것이 이상도 하지만, 어찌 보면 한 나라에서 길이 이쪽에 나든 저쪽에 나든 무슨 의미인가 싶다. 다른 구역이라고 길을 막고 걷지 못하게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강물은 그대로 흐르고 산 또한 그대로 솟아있다. 사람들이 경계를 나누었을 뿐이다. 

가을에 지나가면 물가 옆으로 물억새가 많이 자라나 있고 하천 가운데 백로가 우아하게 앉아 있다. 물 위로는 쇠오리와 청둥오리 여러 마리가 줄지어 유유히 유영하고 있기도 했다. 세곡천이 탄천과 합류하는 부분에서 여러 종류의 조류를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흰뺨검둥오리와 논병아리도 볼 수 있다. 

한 겨울 얼어붙은 탄천. 물억새가 얼어붙은 물가에서 흔들렸다.
봄이 오는 탄천. 연녹색 잎이 피어나고 물억새도 바람에 흔들린다.
여름에 세곡천과 탄천이 만나는 지점은 하천도 넓어지고 물도 깊다.


탄천 따라 대왕교를 건너 성남대로를 건너고 비로소 횡단보도를 건너오니 1구간을 시작했던 복정동 주민센터가 나온다. 그럼으로써 총연장 62.1㎞ 의 성남누비길을 일주한 것이다. 

누비길은 각 구간마다 서로 숲길이 다르고, 또 걷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언제 걸어도 어느 구간을 걸어도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반긴다. 다시 누비길 1구간부터 걸으면 곧 5월 신록의 계절이 올 것이고 그때는 또 다른 숲길이 될 것이다. 여름도 그러할 것이고 가을도 더욱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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