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함께 걷는 숲길. 62.1km
성남누비길을 걸으면서 보도 듣고 느낀 이야기를 브런치에 담아낸 시간은 어느덧 사계절에 이르렀으며, 이야기는 총 42편이 되었다. 그럼에도 성남누비길은 어느 숲길 못지않게 풍부한 식생환경과 선조들의 이야깃거리가 가득하여 미처 담아내지 못한 이야깃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어느 한 도심 외곽에 뒷 배경으로나 있을 흔한 뒷산에서 많은 이야기가 쏟아 나올지 미처 몰랐다.
처음 성남누비길에 대한 이야기를 활자화하여 브런치에 싣는다면 어느 항목에 들어갈 것인가 고민해보았다. 브런치의 다양한 카테고리 중 키워드로 분류된 항목들은 무척 다양하고 개별 제목들은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런데, 그 많은 주제어 중 누비길을 걸으며 느낀 생각들이 집어넣을 방은 바로 '지구 한 바퀴 세계여행'이었다. 동네 뒷산이라 할 수 있는 숲길을 걷고서 '지구 한 바퀴 세계여행' 이라니, 참 민망스러웠다.
국내 여행이나 둘레길, 또는 숲길 걷기라는 항목이 있었으면 좋으련만, 여행이라 하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야 명함을 내미나 보다. 그 카테고리에는 와인에 취한 파리라든가 알프스 분수 물을 마시는 스위스, 또는 미국 독립기념일 불꽃놀이조차도 평범하다. 신비로운 폐허라는 캄보디아 벵밀리아나 쿠바의 트리니다드, 케냐의 세렝게티 공원 등 지명도 생소한 곳의 여행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동네에서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는 숲길을 둘러보고 길 여행이라 하니 민망함을 넘어 이야기가 궁색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남누비길에 얽힌 이야기를 굳이 브런치에 누비길을 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보다 먼저 간단하게 문답식으로 누비길에 대해서 말하고자 한다.
누비길은 성남 누비길로서 성남시가 이웃하고 있는 서울, 하남, 광주, 용인, 의왕, 과천과 경계로 삼고 있는 산 능선을 연결한 숲길로 ‘함께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성남시의 아름다운 숲길’이라는 의미다. 누비길의 등산로는 권역별로 7개 구간으로 구성된다.
복정동 영장산부터 남한산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1구간 남한산성길, 남한산성에서 검단산, 왕기봉, 이배재, 갈마치고개로 이어지는 2구간 검단산길, 갈마치고개에서 율동 영장산을 거쳐 태재에 이르는 3구간 영장산길, 태재에서 형제봉, 불곡산을 거쳐 동막천까지 가는 4구간 불곡산길, 동원동 부수골에서 태봉산, 응달산, 발화산을 거쳐 석운동까지 이르는 5구간 태봉산길, 하오고개에서 시작하여 국사봉, 이수봉, 석기봉, 청계산, 매봉을 지나 옛골에 이르는 6구간 청계산길, 끝으로 옛 골에서 인릉산을 지나 신촌동, 그리고 세곡천과 탄천을 거쳐 시작점인 복정동에 이르는 7구간 인릉산길이다.
성남누비길은 2014년도에 이름이 붙어졌다. 당시에는 각 지방 도시마다 둘레길을 만드는 것이 유행이었다.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걷기 여행길 안내 포탈 이름이 두루누비(www.durunubi.kr)를 살펴보면 그 사이트에 소개된 둘레길만 해도 전국에 554개가 있고 코스별로는 1,400개에 이른다. 경기도만 해도 196개의 길이 있다. 길 이름도 가지각색이다. 대부분 지명만 달리하고 무슨 무슨 그린길, 탐방길, 녹색길, 숲길, 산책길, 나들길, 자락길, 마실길, 여행길, 오솔길, 걷는 길 등등.
그중 성남시도 뒤처질세라 성남 외곽 둘레 등산로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의미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특색 있는 숲길 명칭을 공모하였다. 많은 숲길 이름이 제출되었는데, 예를 들어 더디더디숲길, 두루누리길, 성남어울林(림) 숲길, 성남마루길, 성남숲올레길, 성남누비길 등이 있었다. 이 중 함께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이라는 의미를 가진 '성남누비길'이 결정되었다. 그리고 2017년까지 누비길에 많은 이정표를 세우고 시설물을 정비하였으며 2018년부터 성남누비길 스탬프 투어를 할 수 있도록 숲길을 조성하였다.
하지만, 관에서 누비길이라고 명명하기 훨씬 전부터 누비길은 시 경계 등산로라 하여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남한산성과 검단산, 영장산, 불곡산, 청계산을 넘나들며 만든 길이었다. 그리고 등산객 이전에는 옛사람들이 봇짐을 지고 장터로 가거나 이웃 마을로 오고 가기 위한 길이었다. 그 이전에는 일본강점기 일제에 항거하기 위하여 독립투쟁과 만세운동을 벌이던 길이기도 하였으며,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청나라 군사에 갇힌 인조를 구원하기 위하여 전국 팔도의 근왕 군이 진을 치며 싸웠던 길이기도 했다.
누비길은 남한산, 검단산, 영장산, 불곡산, 태봉산, 청계산, 인릉산 등 명산을 기준으로 각 구간 능선마다 이배재고개, 갈마치고개, 태재고개, 하오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세곡천과 동막천 등 탄천으로 합류되는 하천을 건너는 길이다. 그 길에서 볼 수 있는 풍광은 여느 숲길에 못지않으면서도 아늑하다.
하지만, 아무리 아름다워도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숲길은 후미진 동네 골목길만도 못하다. 아무리 관 주도로 길을 만들고 요란하게 홍보한다고 하여도 사람이 꼭 다니란 법도 없다. 요즘 지자체별 우후죽순 생기는 둘레길에도 옥석을 가리듯 시민들의 호응이 예전만 같지 않기 때문이다. 길 여행가 강세훈 씨는 여러 길을 답사하면서 지자체가 소개하는 길들이 자기들 치적 쌓기에 의하여 만든 길일뿐 꼭 걷기 좋은 길이 아니라고 일침을 가하기도 한다.
다른 도시에도 만든다니까 그저 구색이나 맞춘다는 듯 행정편의에 의하여 만든 길은 사람이 다니지 않으면서 곧 잡초가 우거지며 쓰러진 고사목으로 길은 숲 속으로 사라진다. 관에서 아무리 돌보고 다듬어도 사람들 발길이 닿지 않는 길은 황폐하고 쇠잔해질 수밖에 없다.
때론 알지 못하여 다니지 않는 좋은 길도 있다. 어쩌면 너무나 가깝게 있기 때문에 알면서도 그 가치를 경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새로운 풍경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되면 그때 비로소 둘레길을 걷는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그동안 성남누비길을 걸으면서 주변 산과 하천을 누빌 때 그 사이 적소에 주요 마을이 형성되고 각 지형 특징을 담은 마을 유래를 알게 되는 재미가 있었고, 숲을 가꾸는 사람들과 나무와 씨앗이 주는 교훈을 접했다. 가끔 일상에 지친 사람들과 숲길을 걸으며 삼림에서 얻을 수 있는 치유를 느끼기도 했다.
사실 누비길이 자연이 빚어낸 천하절경이나 조상의 얼을 느낄 수 있는 위대한 문화유산이 많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있는 마을 근처를 둘러보는 것으로도 자연이 주는 위대함과 조상이 남겨준 고귀함을 만끽하리라 본다. 그리고 이것을 시작으로 어쩌면 우리 산하 곳곳으로 배낭을 메고 자연과 접하고 문화유적지를 둘러볼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리라. 그런 뜻으로라도 성남누비길을 애정을 갖고 길을 걸어보자. 온갖 나무들이 자신의 이름을 알려주며, 발 닿은 마을마다 갖가지 지형지물에 얽힌 이야기들을 준비하며 맞이하고 있다. 이런 재미있는 길을 나 혼자 알고 있다면 틈틈이 그 길을 홀로 찾으며 호젓한 산행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길은 혼자 다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다니며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유홍준 교수의 그 유명한 문구처럼 성남누비길이 아름다운 길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