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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09. 2018

영장산 옛 이름, 별이 떠오른 성부산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 남한산성길

남한산성길 첫 봉우리, 영장산


누비길은 산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길이라 가끔 도심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광경을 맞이할 수 있다. 그때는 잠시 숨을 고르며 나무 사이로 비추어지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기도 하다. 

영장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 개활지에서 아까시나무 건너편으로 보이는 위례신도시 전경

숲길 옆으로 몽탕몽탕 베어진 나무를 보며 계단을 올라가면 산불 감시탑이 나오고 그 뒤로 탁 트인 개활지가 보인다. 바로 영장산 정상이다. 힘겹게 올라오는 길이지만 산 정상은 체육공원이라 정자를 비롯하여 철봉 등 여러 운동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도 많이 나와 산책을 즐긴다. 영장산은 북쪽 복정동에서 오면 제법 걸어야 하는 길이지만, 남쪽 태평동이나 신흥동에서 올라오면 비교적 짧고 수월하다. 그 길로 쉽게 올라올 수 있어서 그런지 가벼운 옷차림으로 운동 삼아 올라온 사람들이 많다.

영장산 정상. 산불감시탑과 정자가 맞이한다.

산불감시탑은 낮에 시민들이 높은 곳에서 도심을 조망할 수 있도록 개방했다. 감시탑 전망대에서 도심을 둘러보면 발아래 산하를 훑어보는 맛이 있다. 영장산 정상은 평지이고 주변으로 나무들이 둘러쌓아 산 아래를 볼 수 없기에 감시탑에 올라야 비로소 사방으로 펼쳐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영장산 정상 산불감시탑에서 바라본 북쪽 하늘

계단 난간을 잡고 산불 감시탑 위로 조심스럽게 올라가면 360° 파노라마로 서울과 성남 시내 풍경을 전부 볼 수 있다. 북쪽으로 롯데타워가 뚜렷하게 보이고 그 뒤로 북한산이 보인다. 시계방향으로 돌아보면 청량산 산줄기와 위례신도시에 우후죽순 솟은 새 아파트 단지들이 보이고, 서쪽으로 한 바퀴 돌 쯤에는 인터넷 지도에서는 모자이크 처리되는 서울공항 넓은 활주로도 조망된다. 

동쪽하늘을 바라보면 청량산 능선과 남한산성이 보인다.

별이 떠오른 산, 성부산 


영장산이라 불리는 이 산은 사실 오래전 옛 지도에는 성부산이라고 불렸다. 성부산(星浮山)의 한자 뜻은 별이 떠오른 산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한 유래는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신라 태종무열왕이 백제의 여러 성을 함락시키고 옛 성남이 위치한 한산성 부근에도 군사를 배치했었다. 이에 고구려는 위협을 느끼고 신라군을 공격했는데, 용감무쌍한 고구려군은 신라군을 패퇴시키며 성을 무너뜨리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성안의 군사들은 고구려군으로 인한 공포로 아비규환일 때, 김유신은 군사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하여 하늘에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산에서 불덩이 같은 커다란 별이 떠오르고, 곧 고구려 진지가 있는 곳을 내리치니 적군이 모두 부리나케 도망갔다고 한다.  


그런데 별이 떠오른 산이라는 성부산의 이야기는 선덕여왕 시대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신라 선덕여왕 16년 비담의 난이 일어나자 하늘에서 별이 떨어졌다. 이에 여왕의 군사들은 사기가 땅에 떨어졌으나, 김유신 장군이 비책을 써서 떨어진 별이 다시 떠오른 것처럼 꾸미고자 한 밤중 연에 불을 매달아 날려 보냈다. 이에 군사들이 다시 사기가 올라 비담의 난을 평정했다는 이야기다.   

MBC드라마 선덕여왕 마지막회 장면 캡쳐. 비담이 그의 연인 선덕여왕 진영으로 돌진한다.

성부산 전투는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모두 나온 이야기로 두 전투가 벌어진 성부산이라는 이름은 우리나라에 경주와 성남 두 곳이 있다. 그런데 ‘중정남한지’나 ‘대동여지도’의 옛 문헌을 보면 산세를 설명하는 것이 당시 한산성에서 가까운 성남에 있는 성부산을 묘사한 듯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하지만, 비담의 반란군이 경주의 명활성에서 주둔하였다는 기록을 보건대, 성남과 경주의 성부산에서 각각 전쟁이 일어난 것으로 정리해야겠다. 즉, 647년 비담의 난이 일어났을 때 김유신이 경주의 성부산에서 연을 하늘로 올린 계책을 썼고, 그 후 661년 고구려군과의 전투에서 김유신이 성남의 성부산에서 다시 그 계략을 써먹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MBC 대하드라마 '선덕여왕' 초반 비담과 덕만의 풋풋한 모습. 그들은 서로 보기만 하여도 설렌다.


선덕여왕 마지막회 비담의 최후와 슬퍼하는 덕만

몇 년 전 MBC 인기 드라마였던 '선덕여왕'에서 선덕여왕과 비담의 이야기를 애틋하게 그렸는데, 그들의 비극적인 마지막 전투 장소였던 성부산이 여기 영장산 자락이었다면, 숲길 곳곳에 그들의 이야기를 적은 안내판을 설치할 수 있으련만 아쉽기만 하다. 귀족세력과 왕권의 대립 속에서 귀족을 대표하는 상대등 비담과 왕권 강화를 위한 선덕여왕과 김유신 세력과의 갈등이 표출된 것이 비담의 난인데, 드라마는 극적으로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로 승화했다. 그런 스토리텔링을 여기 영장산에서 표현해낼 수 있다면 곳곳이 그들 사랑 이야기에 대한 명소가 될 테인데 거듭 아깝기만 하다.  




드라마 마지막에서 비담이 선덕여왕에게 다가가는 순간 그를 막아서는 김유신에게 비담은 결국 칼날에 쓰러지며 나지막이 중얼거린다. 


“여리디 여린 사람의 마음으로 너무도 푸른 꿈을 꾸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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