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 남한산성길
누비길의 첫 구간은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주민센터 앞에서 출발한다. 주민센터 앞 도로 건너편 기와말이라는 커다란 비석이 시점 이정표가 된다. 비석은 성남대로 넓은 도로와 주택가 사이 완충녹지 보행자도로에 놓여있으며, 뒤쪽으로는 이번에 설치한 '성남누비길 가는 길' 현판과 1구간 남한산성길 등산 안내도가 있다. 대략적으로 남한산성길은 등산로 입구에서 영장산과 산성등산육교를 지나서 청량산 산줄기를 따라 남한산성 지화문(남문)까지 올라가는 코스다.
누비길 첫 구간이라는 의미를 담은 듯 도심 속에서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건물과 도로 사이 완충녹지 가운데 놓여 있다. 완충녹지가 도로로부터 생활공간인 주택가의 안전과 건강을 확보하기 위하여 만든 녹지인데, 누비길에서의 완충녹지는 인간으로부터 숲의 안전을 위하여 만들어진 완충지대 같기도 하다.
그 길은 도로쪽으로는 푸른 소나무가 서 있고 아래로는 키 작은 조릿대가 심겨 있다. 맞은편으로는 회양목이 난쟁이처럼 모여 있다. 회양목은 공원이나 길 주변 녹지를 꾸미는 데 있어서 조경수로 빠질 수 없는 나무다. 거리마다 울타리용으로 심어 항상 키가 작을 것 같지만, 자주 가지치기해서 그렇지 크게 자라면 5m까지 자란다. 물론 하도 더디 자라니 그리 자라려면 수백 년은 족히 걸린다.
뒤돌아 비석 뒤를 보니 먼 옛날에 기와를 굽던 큰 가마가 있었다 하여 기와말이라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복정동 (福井洞)이라는 지명은 한자 그대로 복우물(福井)과 관련 있다.
구전에 의하면 이 마을에 한 대신이 큰 기와집을 짓고 살았는데, 그 집 마당의 우물 맛이 참 좋았다. 사람들이 그 집안이 잘되는 이유는 물맛이 좋아서 그런 것이니 복福이 있는 우물井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부잣집에는 세도가로부터 선물로 받은 금과 은으로 만든 베틀을 가지고 있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피난을 왔다. 곧이어 청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쳐 일대 마을은 끔찍한 살육이 일어나는 전쟁터로 변했다. 부잣집 일가는 하인들과 급히 피난길을 떠나면서 복우물에 금베틀과 은베틀을 숨겼다. 전쟁이 끝날 때 주인은 생사불명되었고, 머슴만 살아 돌아왔다. 머슴은 주인이 감춰둔 금은 베틀을 꺼내려고 했으나,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쳐서 꺼내지 못하고 도망쳐버렸다고 한다. 그 우물이 복정정수장 인근에 있다.
복정동 지명에는 마르지 않는 청량한 샘물이 솟는 곳이라는 유래가 있는데, 정말로 복정동에는 성남 정수장이 들어섰다. 마을 이름이 훗날 정수장이 들어섰을 것을 알았다는 듯했다. 한국땅이름학회 배우리 회장이 지은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에서 땅이름을 보면 조상들이 남긴 지혜와 역사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땅에도 팔자와 운명이 있어 선조들이 땅이름을 선견지명으로 지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분당에 ‘모두만이’라는 땅이름은 훗날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돼 ‘모두 많이’ 모일 곳임을 예고한 것이라 했다. 또 ‘긴 마루’라는 뜻의 영종永宗도엔 국제공항의 긴 활주로가 들어섰고, 비상飛上리였던 곳에 청주 국제공항이 들어서 비행기들이 비상하고 있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도심 속 완충녹지를 지나서 광장에서 좌회전하여 주택가를 거닐다 보면 어느새 숲길로 들어섰다. 도심 가까운 곳에 이처럼 숲이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영장산은 복정동과 태평동, 위례동, 신흥동에 걸쳐 있어 각 동네마다 재개발과 주택건설로 인한 개발 압력이 무척 큰 곳이라 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정상 부위 일부분이고 그 비탈면은 모두 주택가로 잠식되었다.
숲에 들어서면 숲길 옆으로 넘어간 나무들이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몇 년 전 곤파스 태풍이 불 때 뿌리째 뽑힌 나무들이다. 그때 뿌리가 얕은 나무들은 거의 다 쓰러졌었다. 특히 아까시나무가 많이 넘어갔다.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지 수년이 훨씬 넘었지만, 거센 바람에 나무들이 이리저리 치여 생채기 난 숲은 아직 아물지 않았다. 숲 속 밖은 인간의 개발로 숲이 야금야금 사라지고, 숲 안은 거센 바람에 이리저리 헤쳐져 있으니 안팎으로 상처투성이다. 숲길로는 덩굴이 비스듬히 기울어진 아까시나무를 칭칭 감싼 것이 보였는데, 상처 난 곳을 치유하기 위하여 생기는 딱정이 같기도 하다. 황무지가 무성한 나무가 자라는 숲으로 회복되기 위해서는 먼저 덩굴 및 초본식물이 지표를 덮어줘야 한다.
“여기 나무 감고 있는 것이 혹시 칡인가요? 덩굴식물도 종류가 많은 것 같아서 맞나 몰라요.”“네 맞아요. 이거 칡이에요. 칡 같은 덩굴식물은 종류가 많아요. 구분하려면 잎을 보시면 돼요. 잎이 세 가지가 나서 한 묶음이면 칡이에요. 이것처럼.”
잎사귀를 뜯어내며 잎 하나하나 세어보더니 세 개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한 번은 뉴스에서 우리나라 칡넝쿨이 미국으로 건너가 그쪽 산림을 초토화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칡이 무성하게 자라도 그나마 뿌리를 캐서 먹기 때문에 괜찮은데, 미국은 칡 먹는 음식문화가 없어서 나무마다 칡이 무성하다는 내용이었다.
“칡 번식력이 왕성한가 봐요. 나무 꼭대기까지 올라갔네요.”
아까시나무 위까지 올라간 칡 줄기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도 억센 줄기를 둘둘 말고 자기 몸에 의지하여 올라가고 있었다.
“칡은 나무를 단단히 옥좨 자라요. 또 잎사귀가 넓고 많이도 피어나서 햇빛을 가리기 때문에 빛을 못 받은 나무는 결국 죽고 말죠.”
아하. 이제 나무나 전봇대를 둘둘 감고 올라가는 덩굴 식물 중에 무엇이 칡인 줄 이제 알겠다 싶었다. 다른 식물들을 휘감아 말라죽게 하는 것 중 산속에 있는 것은 칡이고, 들판은 환삼덩굴로만 생각했다. 특히 환삼덩굴은 번식력이 너무 강해 토종식물을 고사시켜 생태교란식물로 지정된 유해 외래종이다. 그 얄궂기 짝이 없는 식물의 영문식 이름은 우리나라가 지은 것도 아닌데, 재패니즈 홉(Japanese Hop)이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도심에서 바라보는 볼품없어 보이는 산은 막상 안으로 들어가면 전혀 딴판이다. 도로의 여러 소음속에서 번잡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자동차의 분주함과 달리 숲길은 푸른 잎사귀로 사방이 에워싸여 있어 모든 것이 정체된 듯 조용하고, 흙 위로 드러난 길은 숲 사이로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계속 이어진다. 누비길은 이런 길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