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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04. 2018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함께 더불어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숲길

이제 여행도 소확행이다.


지난해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욜로(YOLO ; You only live once)가 크게 유행했다. 불확실한 미래보다 현재를 즐기라는 욜로는 여행에 있어서는 버킷리스트와 맞물리며 인생에서 마지막 여행이라도 되는 양 무리해서라도 해외여행에 집착했었다. 하지만 여행의 감흥은 비행기 타고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한 순간 금세 사라지고 만다. 단지 남는 것이라곤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를 화보처럼 요란하게 장식할 사진들뿐이다. 그것들도 미션을 수행하듯 관광지에서 유명한 핫 스폿을 찾아서 순서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은 것이라, 그 고단한 시간은 과거 속에서 박제화되었을 뿐 현재까지 잔잔한 감동으로서의 울림이 되지 못한다.


콜로세움 핫 스팟


하지만 인생은 의외로 생각보다 길다. 과거 욜로 여행의 강렬하나마 짧은 경험 가지고는 현실에서 켜켜이 쌓여가는 팍팍한 일상을 치유하지 못한다. 기억은 좋았던 것이든 아니든 시간의 맨 밑바닥부터 침잠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기분이라도 전환하기 위하여 자신의 SNS에서 지난 여행의 순간을 찾을라치면, 그때의 페이지는 한참 과거로 되돌아가 서치해야 한다. 다시 단조로운 일상에서 삶에 엑센트를 주고자 여행을 꿈꾸지만, 그런 여행은 경제적으로나 시간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쉽사리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런 경험에서일까? 헤겔의 변증법처럼 여행문화도 시계추가 왼쪽과 오른쪽 양극단을 옮겨 다니듯 욜로라는 문화에서 그 반대의 위상이라 할 수 있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으로 대체되는 시대가 왔다. 짧은 인생에서 뭔가를 그럴듯하게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내 주변의 소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행복이 더 가치 있게 여겨지는 것이다. 사실 되돌아보니 지난 여행에서 악착같이 한 컷이라도 더 남겨야 한다고 발버둥 쳤지만, 기억에 남는 것은 북적대던 관광지가 아니었다. 그 한편 어느 한적한 마을 어귀 벤치에 앉아서 시원한 음료를 마셨거나, 공원에서 날아드는 비둘기를 바라보며 시원한 바람을 느꼈다는 것이다.


콜로세움 옆 소공원의 비둘기떼


바야흐로 이제 소확행과 함께 올해 새로운 트렌드로 잡은 케렌시아(Querencia ; 피난처, 안식처)처럼 일상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고도 여행의 기쁨을 잔잔하게 맛볼 수 있는 길을 찾는 추세가 되었다. 더구나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작되어 워라밸((Work &Life Balance)을 추구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도 밑받침까지 되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가볍게 떠날 수 있으면서도, 멀리 여행 떠나듯 새로운 경험을 만끽할 수 있는 길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 길은 차근차근 걸어가면서 소확행으로서의 여행을 확실히 실현할 수 있다. 또한 그 길은 도심에 있어서 마음만 먹는다면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그 시작과 중간, 끝을 오갈 수 있다. 그러면서도 기차를 타고 멀리 온 것처럼 숲 안에서 보는 풍경은 도심과 단절되어 한적하고, 주위 나무는 우거져있어 자신을 보듬어 준다.

바로 그 길 이름은 누비길이다. 


누비길은 소소하지만 확실히 행복할 수 있는 길.


누비길은 한 도시가 다른 도시와 그 경계를 나눈 선에 난 길이다. 흔히 다른 도시 간 경계가 그러하듯 그 구분되는 지형은 산이었고, 그것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능선이라 한 도시를 에워싼 둘레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길은 순환형 코스지만 시작과 끝이 있고 갈등이 있지만 화해가 되며, 시련이 있지만 극복되는 길이다.

걷는 사람이나 정비한 사람이나 감히 의도할 수 없을 만큼 누비길은 무작위의 작위로 탄탄한 스토리텔링이 있는 길이 된 것이다.


그 길은 역사적인 면에서는 병자호란의 기승전결을 극적으로 알 수 있다. 누비길 첫 구간은 인조의 몽진으로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길이었으며, 누비길 마지막 구간은 삼전도 굴욕 후 청나라에 포로가 되었다가 조선 땅을 찾은 백성들이 다시 밟았던 길이었다.  

남한산성 지화문

또한 생태계면에서는 첫길에서 민둥산 황무지의 조림사업으로 인한 아까시나무와 잣나무 군락지를 보며 마지막 구간에서는 극상림의 최종 지배자인 서어나무 군락지를 볼 수 있다. 생태계 발달과정의 천이를 극명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숲과 숲을 잇는 여러 등산육교를 지나며 인간과 자연이 조화되는 디자인도 느껴볼 수 있다.

태재고개를 잇는 등산육교의 아치형 디자인

길은 여러 이름을 갖은 지물을 통과하고 그 이름은 한결같이 예부터 내려오는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그 이름을 알아가며 걷다 보면 부지불식 중에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첩첩산중임을 깨닫게 하는 고봉에 서 있기도 하다.

청계산 석기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첩첩산중

하지만 그런 명소는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숲길에서 신선한 쾌감을 줄 수 있을 뿐이고, 진정 누비길을 걸으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숲길에서 번잡하지 않고 묵묵하게 갈 수 있다는 편안함이다. 그 길에 있으면 깊은 숲속 오래 자란 나무 곁에 머무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휴식을 만끽할 수 있다. 프랑스인이 느끼는 오컴(Au calme)처럼 평온하고 한적하게 산책할 수 있으며, 스웨덴인이 추구하는 라곰(Lagom)처럼 볼 것이 너무 많지도 너무 모자라지도 않다. 정말 우리 정서에 맞게 따뜻하고 안정된 길이다.


가을 태봉산 낙엽길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에서 떨어진 활엽수 낙엽들이 가는 길에 수북이 쌓여있었다. 사람들 발걸음에 헤집어지지 않아 흙 위의 떨어진 나뭇잎의 잎사귀 톱니가 고스란히 남았다. 어떤 것은 도토리 서너 개가 매달려 있는 잎자루 채 떨어져 있었다. 발길에 도토리깍정이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다른 등산객은 보지 못할 만큼 산속은 호젓했고 내딛는 발걸음마다 낙엽 밟히는 소리는 첫눈 밟는 소리처럼 서걱거렸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여름 남한산 돌길

다음부터는 왜 누비길을 걷자고 채근 거리는 지 그 대답을 하고자 한다. 단! 그 길을 걷기 위해서는 단서가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마르셀 푸르스트의 경구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데 있다.

  -마르셀 푸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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