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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10. 2018

망경암과 폭포를 건너는 등산육교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 남한산성길

국가의 안녕을 기원한 사찰, 망경맘


영장산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길 따라 100m 정도 내려가면 망경암이라는 사찰이 있다. 망경암은 고려 후기 무학대사가 세웠다고 전해진다. 조선 초 여러 임금님들이 국가의 안녕을 빌었다는 설과 공민왕이 몽골군 침략 때 피난 가며 이곳에서 개성을 바라보고 통곡했다는 설이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중앙으로 미륵불과 5층 석탑이 있다. 지방문화재로 지정된 조선 후기 마애여래좌상은 대웅전 우측 절벽에 바위를 안쪽으로 움푹 깎아 작은 방을 만들고 그 안에 불상을 만들었다. 마애상은 서울을 한눈에 내려다보며 결가부좌한 자세다. 오른손은 가슴에 대고 왼손은 지하에서 악마가 올라오지 못하게 지그시 누르는 모습이다. 바로 부처님이 악마를 항복시킨다는 항마촉지인 수인이다.

 

영장산 자락에 있는 망경암 전경


망경암 한쪽 울타리 안에는 수령이 200년 넘은 노거수인 느티나무가 늠름하게 서 있다. 느티나무 앞에서 서울 쪽을 바라보면 서울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쪽 하늘로는 청계산 정상 부근에서 안테나 기지가 솟아있는 망경대도 볼 수 있다. 청계산의 망경대는 여기 영장산 망경암과 이름이 비슷하다. 하지만, 청계산의 망경대는 멸망한 고려의 수도인 개경을 바라본 데서 유래했고, 여기 망경암은 새로 개국한 조선의 수도인 한양을 바라본 것에서 유래했다. 같은 이름이지만 뜻은 천지 차이다. 어쩌면 망국과 개국이 동시에 있는 일이니, 다르다고 할 수도 없을 것 같겠다. 망경암은 조선의 알파이고, 망경대는 고려의 오메가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망경암에서 바라보는 서울 하늘. 조선 초 여러 임금님들이 한양을 보며 국가의 안녕을 빌기도 하였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뱀이 꽈리를 틀 듯 굽이굽이 휘어지는 가파른 경사로다. 오르는 길이었다면 가슴이 쾅쾅 두근거리며 숨이 차올랐을 텐데 다행히 내려가는 길이다. 그래도 급경사를 내려올 때라도 무릎에 많이 무리가 가니까 조심스럽게 내려가야 한다.

영장산 정상에서 뱀이 꽈리를 틀듯 굽이굽이 휘어지는 길. 매우 가파르다.

영장산 정상에서 가파른 길을 내려와서 남한산성 방면으로 가는 숲길은 영장공원 내이다. 길은 완만하여 숲길 주변으로 사람들은 평상에 모여서 담소를 나누거나, 널찍한 터에서 운동 삼아 훌라후프를 돌리기도 한다. 숲길에는 곳곳에 조경수가 많이 심어져 있는데, 배롱나무가 눈에 가장 띈다. 참나무나 아까시나무 거친 나무줄기와 달리 나무껍질이 매끈하여 금방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배롱나무는 여름철 유난히 빨간 꽃봉오리가 오랫동안 피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원숭이가 나무에 올라타다가 미끄러지는 나무라고 알려줬다. 꽃이 백일 동안 핀다고 하여 백일홍나무라 했다가 나중에 배기롱나무로 변하고 다시 배롱나무가 되었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들은 혀를 쑥 내밀며 메롱나무라고 알고 있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누비길을 걷는 중에 스트로브잣나무가 길가에 도열하며 맞이하고 있다.

누비길은 나무로 둘러싸여 단조로운 것 같으나 같은 길은 한 구간도 없다. 불현듯 나타나는 잣나무 숲길은 들어서자마자 환호성이 저절로 나온다. 현대 생태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내가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평범한 농가 하나가 다호메 왕의 영지 못지않은 가치를 지닐 수 있다.’고 했다. 동네 가까운 곳에 있는 이런 숲길의 풍경이 어쩌면 지구 밖에서 찾아 헤매는 풍경과 닮은꼴일 수 있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같은 물일 뿐이에요. 


지하철 8호선 산성역쯤에 다다라 숲길이 끝나 도로를 횡단해야 하는 구간에는 지금 LH공사에서 길이 65m의 등산육교를 설치하고 있다. 몇 년 전에 불곡산과 영장산을 가르는 태재고개에 길이 50m와 18m의 등산육교를 설치했고, 영장산과 검단산을 가르는 이배재고개에도 길이 30m의 등산육교를 만들었다. 여기 산성역 등산육교마저 완성되면 비로소 서울시 경계부터 용인시 경계까지 누비길은 끊어지지 않는 숲길이 된다.

지하철 8호선역 산성역 인근 헌릉로에 지금 산성등산육교가 세워지고 있다. 조만간 누비길은 그 육교를 지나게 된다.

등산육교를 지나면 산성 인공폭포가 맞이한다. 인공폭포는 산성역 사거리에 조성한 폭포로 헌릉로 절개지에 2단으로 되어 있다. 한 여름 가동할 때 쏟아지는 물이 시원하다. 나중에 등산육교 지나면서 폭포가 쏟아지는 것을 웅장한 소리와 함께 보게 된다. 상상하니 멋진 광경이 될 것 같다. 여기 인공폭포가 실제 폭포였다면, 높이나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양을 보건대 아마 천지연폭포처럼 명소가 될 성싶다. 


새로 만들고 있는 등산육교로 헌릉로 대로를 건너면 거대한 인공폭포가 시원하게 맞이한다.


폭포를 이야기하면 단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폭포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빼놓을 수 없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여기 산성 인공폭포와 같은 2단 폭포이다. 물론 나이아가라는 여기 산성역 인공폭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다. 그런데 사실 그 거대한 나이아가라도 결국은 같은 물이지 않은가?


「어둠 속의 댄서」라는 영화에서 비요크(Bjork)가 연기한 셀마도 이 말뜻을 이해한 듯했다. 연인 제프는 옥중에 갇힌 셀마가 삶에 애착을 갖길 바라며, 나이아가라 폭포 이야기를 꺼냈다.

“You’ve never been to Niagara Falls?”
(나이아가라 폭포에 가본 적도 없잖아요.)

“I have seen water. its water. that’s all…”
(저는 물을 봤어요. 폭포도 물이죠. 모두 같아요.)


어둠속의 댄서 영화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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