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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11. 2018

벌거숭이 민둥산에서 치산녹화 기적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우리나라 한강의 기적과 또 다른 기적, 치산녹화

 

산성 인공폭포를 지나서 남한산성으로 가는 숲길을 조금 걸어가면 병사들이 열을 맞추어 도열하듯 나무들이 줄 맞춰 서 있는 조림지가 나타난다. 노후되어 남루해진 안내판에는 2001년 식목일에 맞추어 잣나무 등을 심었다는 글귀가 있다. 당시 황무지에 식목일에 맞추어 키 작은 잣나무를 심었을 텐데 수십 년 세월이 지나니 하늘을 가리는 잣나무 숲이 되었다. 

항공촬영으로 본 잣나무와 벗나무 조림지-우측에 도열하듯 잣나무가 심어져 있다. 

우리나라가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에 두 개 기적이 있었다. 하나는 그 유명한 산업화의 상징인 한강의 기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치산녹화의 기적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산림이 국토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핀란드, 일본, 스웨덴 다음으로 높다. 하지만 일제의 산림자원 수탈과 한국전쟁의 여파로 산림은 황폐해졌다. 전쟁 후 인구증가에 따른 연료 부족은 주로 나무와 숯으로 해결하였고, 보릿고개 시절 산을 불태워 화전 농사를 지었다. 우리나라의 산은 말 그대로 헐벗은 민둥산이었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산림자원 수탈이 얼마나 극심하였던지 김동인이 지은 단편소설 『붉은 산』에서는 식민지 조국을 상징하는 메타포로서 붉은 산을 사용했다. 나무조차 남아 있지 못하여 황톳빛 토사가 고스란히 보이는 우리나라 산을 붉은 산이라 표현했다. 주인공 삵이 죽어갈 때 붉은 산과 흰옷이 보고 싶다고 말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푸른 산 아니냐고 되묻을 것이다. 그런 붉은 산은 집중적으로 육성시킨 조림사업으로 푸른 산으로 변신했다. 이런 변화는 해외에서 더 놀라워했다. 1960년대 유엔은 우리나라의 산림황폐가 극심하여 어찌할 방도가 없다고 했었다. 이후 1980년대 다시 찾아와서 푸르게 변한 산을 보고 한국은 산림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고 치켜세워줬다. 이런 기적은 한국전쟁으로 동시에 황폐해진 남북한 산에서 북쪽은 아직도 붉은빛 민둥산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북쪽은 아직도 홍수만 났다 하면 산에서 토사가 쓸려 내려와 큰 수해를 입는다.

1960년 항공사진 수정구 상적동 인릉산 기슭. 헐거벗은 민둥산이다.
같은 지역 2016년 항공사진.  민둥산은 푸른 산이 되었다.

조림지에서 힐링 숲으로 변신한 산


누비길 남한산성 구간에서 식목일에 맞추어 심은 나무는 비단 잣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벚나무도 심어서 오월이 되면 벚꽃이 화사하게 만개하여 상록수 곁에서 봄을 알리기도 한다.

잣나무 조림지 인근 벚나무 길. 오월의 누비길은 벚꽃 사이를 걷는다.

특히 잣나무가 많은 숲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쾌한 느낌이 든다. 그 이유는 잣나무에게서 피톤치드가 나오기 때문이다. 나무는 해충이나 곰팡이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피톤치드를 뿜는다. 이것이 사람에게는 아토피 치료나 우울증 등의 병에도 효과가 있다. 

 빽빽하게 자라난 잣나무 숲. 식목일에 심었을 때에는 사람 키만한 나무였지만, 지금은 하늘을 덮었다. 


“아. 여기에다 힐링 숲을 만들면 좋겠네요. 잣나무 숲이 넓으니 사이로 야자 매트 깔고 산책로도 만들어서 힐링 숲으로 꾸미는 거죠.”
맞는 말이라고 현장소장이 맞장구 쳐주니 기분이 좋아졌다. 머릿속에서 잣나무 사이로 황톳길이 생기고 사람들이 양팔 벌려 걷고 있는 모습이 상상되었다. 곳곳에 벤치가 놓여 엉덩이를 붙인 사람들은 책을 본다. 잣나무 아래서 불어오는 바람에 책장이 넘어가자 머리 들어 주위를 둘러본다.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이다. 그런 그림을 상상하고 하였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피톤치드가 나오는 잣나무 조림지 내에 야자매트와 평상을 설치하여 시민들이 휴양 목적으로 찾을 수 있게 하였다.  

잣나무가 빽빽하기만 하였던 조림지는 시민들이 숲 사이로 거닐며 피톤치드의 효과도 받을 수 있도록 야자매트로 숲길을 조성하였다. 잔가지는 정리하고, 길 옆으로 야외벤치도 설치하여 나무 아래서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길 수도 있다. 숲길을 가꾸는 사람은 조각가처럼 아직 실현되지 않는 것을 구현해낼 수 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머릿속에서 상상해가며 현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조각가 로댕이 말하지 않았던가.


 ‘조각이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돌 속에 이미 들어있는 걸 드러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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