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 남한산성길
산성역에서 올라가는 누비길 1구간의 법정동은 수정구 창곡동이다. 창곡이란 이름의 유래는 나라에서 봄에 곡식을 대여해 주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보관했던 창고가 있었다는 설과 조선 말기 탄천 일대에서 생산된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시대 군사들이 탄천에서 진을 펼 때 군사수가 십만을 넘었다 한다. 그 많은 군사를 먹일 군량미와 병장기를 보관할 창고였다면 그 위용은 대단하였을 것이다.
한동안 서울과 경계를 삼는 성남시 최북단의 한적한 마을은 지금은 위례신도시가 들어서 상전벽해의 변모를 갖추었다. 이름도 창곡동에서 위례동으로 사용한다.(참고로 창곡동은 법정동이고, 위례동은 행정동이다.)
창고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의 창곡이라는 이름보다 아무래도 백제 옛 도읍지로서의 이름이 더 브랜드 가치가 높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위례의 어원으로는 크고 많다라는 뜻의 '여르(오늘날 여러)'라고 추정되며, 위례성은 큰 고을을 뜻하는 대읍(大邑)이란 뜻이기도 하다.
그래서 위례신도시가 성남을 포함하여 서울과 하남에 걸쳐있는 지라, 세 도시가 서로 위례라는 이름을 갖기 위해 신경전을 벌이며 여러 번 논의를 했었다. 결국은 서로 양보할 수 없다 하여 결국, 서울 위례동, 성남 위례동, 하남 위례동이 다 생겨버렸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위례동으로 가고자 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서울을 가고자 하는지 아니면, 아니면 성남시인지 말해야 한다. 우물쭈물하다가는 하남시로 갈 수도 있다.
남한산성길 산줄기는 위례신도시와 원도심을 갈라놓는 경계이기도 하다. 능선따라 누비길을 걷노라면 새로 지은 아파트촌인 위례동과 낮은 단독주택과 아파트가 섞여있는 원도심을 볼 수 있다. 산 아래 두 마을을 보노라면 누구는 번듯하고 계획적으로 지어진 아파트와 그 대기업 로고가 보이는 곳을 좋아할 수 있을 테고, 어떤 사람에게는 골목길 살림살이의 구수한 소리가 들릴 듯한 곳을 좋아할 수 있을 것이다.
길은 계속 남한산성으로 이어진다. 그 도중에 남한산성을 개축하기도 하였던 서명응의 불망비를 만날 수 있다. 불망비는 말 그대로 잊지 말자는 不忘(불망)이다. 무엇을 잊지 말자는 뜻인지는 비에 새겨져 있다.
올랐다 내려갔다 하는 등산로에서 상수리나무와 신갈나무 틈으로 자동차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로가 좁고 급회전 구간이라 자동차들도 지치는지 서행하며 오르고 있었다. 계단을 오른 뒤 급경사를 올라가니 사람 높이의 제법 큰 바위 두 개가 보였다. 숨이 가빠져 바위에 기대 쉬려고 손을 짚자 화강암 바위 면에 글자가 음각된 흔적이 언뜻 보였다. 눈결에 잠깐 스쳐 뭔가 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불망비였다. 미리 남한산성길에 불망비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번 산행에 찾을 수 있을까 싶었다. 느닷없이 나타나자 좀 놀랐다.
“이게 불망비예요.”
장 부장을 향해 외치며 바위에 집었던 손을 떼며 외쳤다. 그러자 그는 바위 곁으로 오더니 아랫부분 不忘불망이라는 한자를 찾아냈다.
“진짜 글자가 있네요. 바위도 신기하게 생겼네요. 표면에 물결치는 무늬가 멋있어요. 그런데 바위만 덩그러니 있으니 아무도 불망비를 못 알아보겠어요.”
불망비는 조선 후기의 문신인 서명응, 홍익필, 이명중 세 사람이 백성을 사랑한 공적을 잊지 말자는 뜻을 높이 2m에 폭 2m가량 되는 화강암 바위에 한문으로 새겼다. 음각된 글자가 희미하고 판독이 쉽지도 않았다. 더구나 안내판이 없어서 등산로에 자주 만나보는 흔한 바위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어 호들갑을 떠는 내가 오히려 민망할 지경이었다. 비록 문화재나 사적으로 지정되지 못해도 조선 후기 문화적 가치가 있는 향토 유적물일 텐데 이렇게 도로변에 방치된 것이 씁쓸했다. 더구나 누비길에서 좀처럼 만나보기 힘든 유적이었다. 돌보지 않는 유적지의 처지가 안쓰럽기도 하여 바위를 쓰다듬었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불망비에 쓰인 자세한 내용은 오른쪽은 '수어사 서공 명응 애휼군민 영세불망(守禦使徐公命應愛恤軍民永世不忘)', 중앙은 '부윤 홍후 익필 애휼교민 영세불망(府尹洪候益弼愛恤校民永世不忘)', 그리고 왼쪽에는 '부윤 이후 명중 애휼교민 영세불망(府尹李候明中愛恤校民永世不忘)'이다. 수어사 서명은이 군사와 백성을 애휼한 공로를 영원히 잊지 말자는 것과 광주부윤 홍익필과 이명중이 백성을 사랑하고 잘 가르친 덕을 영원히 잊지 말자는 뜻이다.
잊지 말자는 뜻의 불망비가 산 중턱에 있다고 누군가 말했을 때, 처음에 물망비라고 알아들었다. 진실한 사랑, 나을 잊지 말아요라는 꽃말을 가진 물망초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착각해버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주다가 죽어버린 어느 젊은이의 영혼이 담긴 꽃이라는 물망초는 바위틈에서 잘 자라는 키 작은 식물이다.
바위에 암각 되어 잊지 말자고 알리는 것도 수백 년을 견뎌내지만, 한편으론 작은 꽃으로 나고 죽고 다시 나서 잊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도 오랜 세월을 버티는 울림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