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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15. 2018

밤보다 낮이 긴 산 주장산, 남한산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 남한산성길

밤보다 낮이 긴 일장산(日長山)


성남시 동북쪽과 광주시 북서쪽, 하남시 남쪽에 걸쳐 있는 해발 480m의 산 이름은 한강 이북에 있는 북한산과 같이 한강 이남에 있다고 하여 남한산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산의 북한산성과 남한산의 남한산성 이름도 그렇게 지어졌다. 보통 산지는 해가 늦게 뜨고 일찍 저물지만, 남한산의 고원지는 평평한 분지 형태라 반대로 해가 일찍 뜨고 늦게 저문다. 그래서 옛 문헌에는 산이 분지 형태로 밤보다 낮이 길다고 하여서 주장산(晝長山) 또는 일장산(日長山)으로 불리었으며, 세종실록 지리지에서 남한산성을 일장산성으로 기록하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주장산성으로 표기되었다. 

산세는 주변의 벌봉(해발 515m)과 검단산(520m)과 어우러져 산 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내부의 분지는 평평하나 외부의 산세는 매우 가파르다. 그래서 이런 지형에 쌓은 남한산성이 천혜의 요새로 평가받았으며, 삼국시대부터 군사 요충지로 삼은 이유이기도 하다. 

천혜의 요새라는 남한산성으로 오르는 길이니만큼 정상에 다가갈수록 가파르다. 
누비길이 둘레길로 알고서 맘 편하게 왔다가는 치솟듯 조성한 길을 보고서 식겁할 것이다.

요즘은 남한산이라는 이름은 없어지고 대신 청량산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회 장군의 넋을 달래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청량당이 여기 산 이름이 청량산이기 때문에 청량당이라고 이름 지어진 것이기도 하다. 

간혹 산행기나 지도상에서 남한산이라는 지명이 남한산성 동남쪽의 벌봉(해발 515m)과 한봉(해발 418m) 사이의 능선에 있는 고봉(해발 522m)을 일컫기도 한다. 실제로 그 지점에 가면 천사모 산악회라는 단체가 세운 아주 작은 정상석이 있다. 하지만 그 소위 '남한산'이라는 곳은 벌봉의 봉암성과 한봉의 한봉성으로 이어지는 성곽 중의 한 곳에 불과하며 옛 문헌이나 근대 기록물에서는 검색되지 않는다. 아마 남한산이란 지명은 현대에 와서 해발 고도를 정밀하게 측정함으로써 남한산성 동쪽 최고봉이 벌봉이 아니고, 인근 고지라는 것을 파악한 이후에나 작명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나 광주시 홈페이지의 남한산성 탐방안내도를 보아도 벌봉과 한봉을 잇는 능선이 기재되어 있는데 그 사이에 남한산이라는 이름은 표기되어 있지 않다. 

병자호란 당시 청 태종은 남한산성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수어장대의 위치는 청량산에 서 있으나, 청량산보다 더 높은 동쪽의 벌봉과 남쪽의 검단산을 깨트려야 산성을 함락시킬 수 있다 하여 벌봉과 검단산을 빼앗고 산성 내부를 훤히 내려다보며 전투를 유리하게 했다. 

이처럼 옛 문헌을 보아도 남한산성 동북쪽 고봉은 벌봉이며, 단지 걸어서 몇 분 걸리지도 않는 봉우리를 가지고 남한산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은 산행기에 경유지 하나 추가하는 호사가의 입맛에나 맞는 것이다. 


수어장대와 청량당이 있는 해발 482.6m의 청량산. 성곽이 호위하고 있다.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기도 옛길과 누비길


성남 누비길의 남한산성길 중 종점부에 다다르면 경기 옛길과 중복된다. 최근 경기도에서는 복정역에서 위례동 주민센터를 지나고 남한산성 남문까지 이르는 남문길(6.5km)을 복원하여 남한산성 옛길 중 남문길이라 하여 이정표도 세웠다. 그리고 이 옛길은 선조의 왕릉에 참배하기 위해 걷던 능행길이면서 경상 지방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걷던 과거길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물론 왕실과 양반들만 다니는 길은 아니다. 이 길을 주로 이용하던 사람들은 전국팔도에서 열리는 장터로 떠돌아다니던 보부상들이었다.


남한산성 옛길 안내도(출처 경기도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같은 길을 두고 누비길과 옛길이 서로 중첩되는데, 사실 성남 누비길은 2014년에 이름 짓고 방향판도 세우며 조성했고, 그 이후 2017년 경기 옛길이 만들어졌다. 그래도 경기 옛길을 만든 목적이 나름대로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며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조성하는 좋은 취지이기에 커다란 불편으로 다가오지 않지만, 이정표라도 좀 떨어져서 설치해야 하지 않나 싶다. 하필이면 성남 누비길 바로 옆에 설치하여 남한산성 지화문으로 가는 길을 누비길이라 불러야 할지 옛길이라 불러야 할지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설령 누비길의 생성 연도나 설치시기가 앞섰다 하여도, 경기 옛길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콘텐츠가 한발 앞선 것이 사실이다. 더구나 옛길 이정표는 남한산성과 옛길을 구성하는 성곽 돌을 현대적으로 깔끔하게 디자인하여 그 옆의 누비길 표지판을 초라하게 한다. 왜냐하면 이 옛길 안내판 디자인이 바로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독일 iF 디자인 어워드 2018'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남한산성 남문으로 가는 같은 길을 두고 성남누비길과 경기옛길 안내판이 서로 아웅다웅하듯 나란히 서 있다. 


보부상은 '봇짐과 등짐을 지고 이동하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라는 뜻입니다. 보상은 보자기에 물건을 싸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판매하는 장사치를 말하며 주로 여성들이 맡았다고 합니다. 이에 비해 부상은 부피가 큰 옹기, 그릇, 죽제품, 수금 등을 판매하였습니다. 보부상은 바로 주요 육상 간선도로망인 삼남로, 영남로, 의주로, 봉화로(남한산성 옛길) 등을 통해 상업 유통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됩니다. 장시가 전국적으로 들어서기 되자 일정한 날짜에 열리는 장시를 돌며 상품 판매를 하게 되고 이러한 방식은 이들에게 장시를 돌며 물건을 판매하는 장사치라는 의미로 '장돌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계기가 됩니다.
[남한산성 옛길의 보부상의 옛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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