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 남한산성길
가파른 숲길을 오르고 산성터널 부근부터는 도로 옹벽 하단의 등산로를 따라 걷게 된다. 그 길 따라 걸으면 남한산성 석축이 바로 나타난다. 석축 아래쪽에 큰 돌은 옛사람이 쌓은 듯 자연석은 거칠고, 위쪽 새로 쌓은 화강석 면은 잘 다듬어져 있다. 성곽 위에 성가퀴라는 지붕이 있고, 화포 구멍도 비스듬하게 보인다. 성곽 따라 십분 남짓 걸으니 그 앞으로 사람들을 마중 나와 도열한 듯 나무들이 열을 맞추며 서 있다. 이름표를 보니 이팝나무였다. 도열한 나무 뒤로 산성의 웅장한 지화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팝나무는 여름이 시작될 때 잎 위에 꽃이 하얗게 펴낸다. 나무가 흰 꽃으로 덮이면 쌀밥을 연상시킨다. 그래서 이팝나무라는 이름 유래는 입하(入夏) 무렵에 꽃이 피므로 입하가 이팝으로 변했다는 것과 꽃이 만발하면 그 모습이 쌀밥을 떠올리게 하므로 이밥(쌀밥)나무라는 설이 있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자라면 20m까지 자란다.
이팝나무에는 슬픈 전설이 몇 가지 얽혀 있다. 어느 마을에 시집온 착한 며느리가 있었다. 시어머니가 그렇게 트집을 잡고 구박하며 시집살이를 시켰단다. 그러던 어느 날 며느리가 제사상을 차리다가 밥에 뜸이 잘 들었나 하고 밥알을 숟가락으로 떠먹었다. 마침 그걸 본 시어머니가 조상께 드릴 제삿밥을 며느리가 먼저 먹는다고 욕을 하며 학대했다. 억울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며느리는 뒷산에 올라 목을 매어 죽었다. 훗날 그 자리에 한 나무가 자라더니 하얀 쌀밥을 닮은 흰 꽃을 무더기로 피워냈다. 사람들이 쌀밥에 한이 맺힌 며느리가 죽어서 된 나무라 하여 이팝나무라 불렀다. 이팝나무는 흉년이 들어 아이가 굶어 죽으면 산에 묻으면서 무덤 옆에 심기도 했었다. 죽어서라도 불쌍한 아이들이 쌀밥을 실컷 먹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이팝나무를 지나서 웅장한 남한산성 지화문 앞에 당도하면 성남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380년이 넘는 느티나무 네 그루가 늠름하게 서 있다. 느티나무는 남한산성 축조 당시 성곽의 비탈면이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하여 심었다고 전해졌으며, 한편으로는 깎아지는 듯한 비탈면을 올라오는 적군으로부터 지화문을 가리는 차폐의 목적도 있었다.
느티나무는 은행나무와 함께 수명이 가장 긴 나무다. 전국 지자체가 관리하는 고목나무는 대략 1만 3천여 그루가 되는데 그중에서 7천여 그루가 느티나무다. 천 년 이상의 고목 60여 그루 중 25그루가 느티나무일 정도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나 전설이 느티나무에 얽혀 있다. 우리나라에서 느티나무가 가장 많은 충북 괴산은 아예 느티나무 괴(槐) 자를 쓴 지명이다. 그 유래는 신라 진평왕 때 찬덕 장군이 백제군에 성을 잃게 되자 항복하지 않고 성 안의 느티나무에 머리를 들이받고 자결하여 그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고을마다 얽힌 이런 이야기는 으레 마을 어귀에 큰 그늘이 있는 정자나무 밑 평상에서 들을 수 있다. 그 정자나무가 느티나무다. 그러하니 지화문 앞 수백 년의 세월을 느티나무가 지키고 있는 것이 당연할 수 있다. 느티나무가 자랄 때는 곧바르고 우람한 덩치로 수십 미터 높이까지 자란다. 웅장한 남한산성 남문 앞의 노거수로 제격이다. 여기 느티나무는 심어지자마자 병자호란을 겪었다. 용케도 청나라의 대포에 맞아 쓰러지지 않았지만, 나라의 비극적인 변고를 바로 눈앞에서 목도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수령이 360년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그 수명이 다한 것인지 시름시름 앓았다. 느티나무는 쓰라렸던 긴 세월을 지켜낸 것만으로도 많이 지쳐, 흙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듯했다. 하지만 보호수란 감투를 쓰고 관광객을 맞이하는 관상수가 돼버렸다. 당분간 흙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요즘 나무병원 수준이 높아져서 인공 수피도 만들고 방부처리도 고도화되었다. 썩은 부위는 합성수지로 대체할 수 있어 나중에는 플라스틱 나무가 되겠다. 그렇게 연명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느티나무 육중한 몸은 외과수술을 받아 태반이 도려지고 시멘트로 충전되었다. 마치 육중한 콘크리트 기둥 형상이었다. 굵은 나뭇가지도 하나 갈라져 나왔지만. 스스로 버틸 재간이 없었는지 쇠파이프로 받쳐있었다. 고개 들어 보니 아름드리나무 우듬지에 노란 잎사귀가 매달린 채 바람에 흔들렸다. 아직 죽지 않았다고 아우성치는 손짓 같았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쟈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고운 이념의 푯대 끝에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유치환의 詩 '깃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