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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행 Jul 20. 2018

참나무 육 형제 이야기

누비길에서 가장 많이 마주치지만 정작 기억나지 않는 것.

가장 많이 만나지만 기억되지 않은 참나무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사람들에게 많이 읽히면서, 책 머리말 강렬한 문장은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되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다.'

이 문구는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하여 애정을 가지면 비로소 몰랐던 그 가치를 알게 되고 그러면 우리 문화유산에 대한 긍지를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이 구절은 사람들에게 크게 유행하였다. 그 문장의 활용은 사람들 입에서 확장되어 웬만한 일상생활에서까지 인용되며 사람들의 자기 주변 소소한 일상과 자주 만나는 지인 그리고 흔하게 있는 사물까지 광범위하게 적용되어 그 의미를 음미하고 있다.

그 문구를 누비길에서는 참나무, 바로 잡목이라 불리는 참나무에 쓰기 안성맞춤이 아닐까 싶다.

누비길은 숲길이다. 첫 구간을 지나오면서 복우물, 망경암, 영장산 정상, 산성육교와 인공폭포, 불망비 등을 보고 왔지만, 가장 많이 본 것은 단연 나무이고 그 나무 대다수는 참나무 류였다. 그런데 정작 참나무를 본 그런 기억은 없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참나무는 없기 때문이다.  

누비길을 지나오면서 길 옆에 서있는 참나무는 알지 못하였다.
숲길에서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는 큼지막하고 넓은 잎 또한 참나무(떡갈나무) 잎사귀 였다.

참나무는 참나무목 참나무과 참나무속을 총칭하는 것으로 낙엽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6종이 있으며, 신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가 있다. 보통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를 모두 참나무라 부른다.

갈참나무 껍질은 그물처럼 얇게 갈라지며, 가을 단풍이 가장 예뻐서 가을 참나무, 갈참나무로 불린다. 잎사귀는 떡갈나무다.
좀 무료한 감이 없지 않아 산림을 전공했다는 장 부장에게 말 좀 붙일 요량으로 나무에 관하여 물어봤다.
“우리나라에 참나무가 많이 있다잖아요. 혹시라도 영장산 오르는 길에서 참나무 마주치면 알려주세요.”
뒤돌아 일행을 기다리던 그는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말했다.
“참나무란 나무는 세상에 없어요.”
나는 눈만 껌벅였다. 그가 무슨 선문답을 꺼내는가 싶었다. 이제 업무상 두 번째 만나는 것이라 서로 농담을 건넬 사이는 아니었다.
“참나무는 나무 한 개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참나뭇과에 속하는 나무들을 총칭해 말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에는 졸참나무, 굴참나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있죠. 지금 여기저기 주위에 있는 나무 모두 참나무예요.”
속으로 뜨끔했다. 내가 알고 있던 참나무가 사실은 세상에 없는 나무라니 참으로 뜻밖이었다. 더구나 참나무가 멀리 있지 않고, 동네 뒷산에 흔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도 말이다. 참나무가 없다는 말은 단박에 숲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친 화두였다. 군 복무 시절 법당에서 ‘부처는 마른 똥 막대기다.’라는 화두를 듣는 것만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실 나무 이름에 대하여 그리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는 여러 조경수를 심어놓고 나무 명찰도 걸어 놨다. 틈틈이 눈에 익힌 나무들이 꽤 되었다. 튤립나무, 자작나무, 단풍나무, 목련, 감나무 등등. 하지만 조경수로 참나무는 심지 않으니 참나무는 금도끼은도끼 같은 동화책에나 있는 나무였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누비길을 유심히 걷다보면 바닥에 참나무 잎과 도토리가 같이 떨어져 있다. 왼쪽부터 신갈나무, 갈참나무 잎.

남한산성길뿐만 아니라 누비길, 그리고 한반도 중부 권역 내 자생하고 있는 수목은 활엽수의 경우 참나무 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성남시에서 발간한 『숲길 실태조사 용역 보고서』에서도 남한산성길에는 떡갈나무, 신갈나무, 상수리나무, 굴참나무 등의 참나무 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기록되었다. 우리나라 숲에서 참나무가 차지하는 비율이 35%가 넘고 소나무와 합하면 절반이 넘는 60% 가까이 된다. 즉 활엽수를 대표하는 나무는 참나무이고, 침엽수를 대표하는 나무는 소나무라고 할 수 있다.


진짜나무 참나무


참나무를 뜻하는 쿠에르 쿠스(Quercus)라는 단어는 라틴어를 어원으로 하여 ‘진짜’라는 뜻이다. 참나무는 한자로 眞木진목이라 쓴다. ‘眞’과 ‘Quercus’ 모두 참을 뜻하는 것이니, 참나무가 진짜 나무라는 뜻을 가질 만큼 사람들한테는 매우 각별한 나무다. 선사시대부터 도토리는 탄수화물과 지방이 많아서 식용으로 삼았었다. 도토리 중 특히 상수리나무 열매는 상수리로 부르고, 졸참나무의 열매는 굴밤이라고도 한다. 상수리나무의 열매는 맛이 좋아 임금의 수라상에 올렸기에 상수리라는 이름이 있다. 졸참나무의 도토리는 떫은맛이 적어 밤처럼 껍데기를 까면 바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굴밤이라 부른다. 도토리는 다람쥐뿐만 아니라 멧돼지도 좋아한다. 도토리를 멧돼지가 먹는 밤이라서 도토밤이라고도 한다.


누비길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참나무 류. 왼쪽부터 떡갈나무, 신갈나무, 갈참나무, 굴참나무, 상수리나무 잎이다.
남한산성길에서 참나무는 귀에 딱지가 얹도록 들었는데 그 사이 죄다 잊었나 보다. 하지만 잎사귀들은 단풍나무나 은행나무처럼 특이한 모양 빼고는 죄다 비슷해 보였다.  
“참나무 좀 쉽게 구분할 수 없어? 예전에 들었는데도 금세 까먹네.”
“잎을 보면 잘 알 수 있어요. 밤나무처럼 잎이 길고 가는 형태는 상수리나무와 굴참나무인데 굴참나무 잎 윗면은 흰색이에요. 신갈나무와 떡갈나무는 아까 보여드린 것처럼 잎이 뭉툭하고 크잖아요. 제일 큰 게 떡갈나무고. 졸참나무랑 갈참나무는 잎이 작고 도톰해요. 졸참나무 잎이 더 작고 뒤에는 털이 있어요.”
뭉툭하다는 말이 귓가에 남았다. 낯설지 않지만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신발 앞굽 뭉툭한 모양만 생각났다. 잎사귀가 뭉툭하다는 표현이 얼른 시각적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게다가 크고 작은 기준을 몰랐다.
“잎이 크고 작다는 게 너무 상대적이잖아?”
푸념 조로 말하는 말에 그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비교하기 쉽게 잎 주우면 보여 드릴게요.”
그는 무거운 등산배낭을 지고 있으면서도 떨어진 잎을 줍기 위한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가 주운 손 두 마디 폭의 잎사귀를 가리키며 이것이 상수리나무 잎이고, 폭이 손바닥만 한 것은 신갈나무라고 말했다. 신갈나무 잎과 비슷한 모양 중 좀 더 큰 잎사귀가 떡갈나무 것이라고 했다.
“상수리와 떡갈이 같이 있어야 어떤 것이 크고 작은 지를 서로 구분해 알지. 어떻게 알아?”
애써 주운 잎사귀를 건성으로 보고 있는 내 모습에 짜증도 났으련만 그는 친절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위 모서리에 서 있는 나뭇잎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게 떡갈나무예요. 나뭇가지에 잎이 보이시죠?”
손가락 끝을 향해 보니 나무에 매달려 있는 정말 떡하니 그 큰 잎이 보였다. 손바닥만 한 잎사귀들만 보다가 떡갈나무 잎을 보니 정말 크기에 놀랐다. 다른 잎사귀들을 크기로 제압하고 여유 있게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모습이었다. 떡갈나무가 잎으로 떡을 싼다고 하여 떡갈나무라고 하는데 그 떡은 송편이나 인절미 조무래기 떡이 아닌 백설기쯤 될 것이다. 내게는 하도 커서 떡하니 붙어 있는 모습이 인상 깊어서 떡갈나무라고 부른 것 같다. 나중에 아이들과 같이 숲에서 나무에서 떨어진 잎사귀를 주워 들고 아는 척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 나무는 떡갈나무야. 떡을 싸기 좋게 넓은 잎을 가지고 있지? 그리고 옆에 있는 나무는 신갈나무인데 신발 안에 깔창으로 쓰여서 신갈나무였단다.”
그는 잎이 작고 전체적으로 도톰한 것은 졸참나무와 갈참나무라고 덧붙였다. 떡갈나무 잎을 보게 되니 그 크기를 가늠하게 되어 혜안을 갖은 듯 다른 나뭇잎들이 비로소 보였다. 어떻게 참나무도 모르고 산에 다녔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산에서 기껏해야 소나무나 아까시나무 정도 구분해가며 숲에 나무만 무성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무성한 나무들이 거의 참나무였다.
[나는 누비길을 걷는다 中]

 

참나무 알면 비로서 숲에 애정을 갖는다.

참나무 류 잎 모양(출처 : 윤주복 저 '나뭇잎 도감' )


우리나라 참나무는 여섯 가지인데 옛날 짚신이 해지면 짚신 밑에 깔아서 신었다는 신갈나무, 나무껍질이 두꺼워 산골 너와집 지붕에 덮었다는 굴참나무, 참나무 중 가장 작은 졸병인 졸참나무, 넓은 잎으로 떡을 싸서 보관하던 떡갈나무, 임금님 수라상에 올려졌다는 상수리나무, 나무껍질이 좁고 긴 주름으로 갈라진 갈참나무. 이렇게 외우면 쉽다.

참나무 종류는 암기하듯 꼭 외워두면  숲속 걷는데 길동무 생긴 것 같은 느낌을 갖는다. 길을 걷다가 주변에 스쳐가는 나무를 알아보면 비로소 애정이 생긴다. 애정이 있어서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알아야지 애정이 생긴다. 사랑은 낯섦에서 익숙함으로  진화하는 것이고, 알아가는 과정은 설렘을 동반한다.


나중에라도 혹시 아이들과 길 동무할 때는 도토리가족을 다음과 같이 소개할 수 있다.


맛 좋은 도토리로 유명한 상수리나무,

코르크 마개 굴참나무,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떡갈나무,

제일 작은 졸병 참나무,

그물처럼 얇게 갈라지는 갈참나무,

짚신 깔창으로 쓰는 신갈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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