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주말 농장을 찾은 사람들이 호미를 들고 모종을 심는 모습을 흘깃 보신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지성인들의 텃밭은 죄다 까매"
둑을 만들고 비닐로 멀칭을 하고
둑과 둑 사이의 좁은 길에도 잡초매트를 깔아
온통 검은 탓이다
농사일을 전문으로 하지 않고 체험하는 정도로만 주말 농장을 찾는 이가
다른 곳에서는
나보다는, 우리보다는 더 배운 덕에 더 훌륭한 일을 하고 있겠구나
여기셨기에 '지성인'이란 표현을 사용하신 것으로 안다.
온통 검다
흙이란 흙은 모두 검은 비닐로 덮였다.
멀리서 보면 검은 바다가 일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검은 바다에서는 죽음의 냄새가 난다. 역한 기름냄새 같기도 하고 썩은 것들의 썩어가는 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생명을 담고 삶을 더하고자 다른 것들의 미세한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으려 온통 죽음의 검은 것들로 삶 주변을 덮는다.
어제 내가 그리했다.
씨가 뿌려져 싹이 터 땅을 딛고 오려려는 것들이 어떤 가치로 평가받는지 알기는 했을지
잡초라는 이름으로 불리워, 햇살한줌 받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 갇혀 누렇게 죽어갈지 알기는 했을지
비닐에 뚫린 구멍으로 물이 스미고 햇살이 겨우 깃든 틈을 타 모종 옆으로 삐죽 얼굴을 내밀자 말자
집요한 손놀림에 의해 뜯기고 뽑힐지 알기는 했을지
세상의 우뚝한 지성인들이 씌운 검은 비닐들은
나의 하늘에는 없는지 궁금했다.
내 삶의 시작과 과정이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나는 알고는 있는지
흙수저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희망도 사랑도 없이, 인간답지 못하게 죽어갈지 알기는 하는지
겨우 잡은 직장과 쥐꼬리만 한 동전으로 집도 사고 차도 사고 무리에 섞이자마자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리다 기어오려려 애쓰는 자신의 처지가 안쓰러워 스스로 포기할 줄을 알고는 있는지
어제 그리하고 보니
나의 하늘을 올려다 보고, 내가 선 땅을 내려다보게 되었다.
삶을 더하고자 죽음을 선물한 내가 한심했다.
어제의 한심은 오늘이 되었으나 한치도 나아지지 않았다.
오늘 나는 죽음을 외면하고 삶을 심었다. 검은 비닐 아래가 궁금하지 않았다.
보이지 않으므로 나는 안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