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보다 여우가 낫다
2016년 10월 세종시 정부청사 대강당에서 열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에는 공무원들이 많이 참석했었나 보다. 여기 나와 비슷한 처지에 대해 어떤 공무원이 법륜스님에게 질문하고 답변을 들은 내용이 있어 일부를 소개하고자 한다.
공무원 : 일은 아무리 많아도 밤을 새워서라도 할 수 있는데 직장 상사와의 관계가 좀 곤란합니다.
법륜스님 : 상사가 어떻게 하는데요?
공무원 : 물론 상사에게 제가 맞추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방법이잖습니까?
법륜스님 :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에요. 인사권이 상사한테 있어요, 질문자한테 있어요?
공무원 : 상사한테 있습니다.
법륜스님 : 질문자가 승진에 욕심을 낸다면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고, 승진에 욕심을 안 낸다면 눈치 볼 필요가 없죠. 그건 자기가 결정하는 거예요. 상사의 눈치를 본다면 승진하는 걸 더 중요시한다는 뜻이겠죠. ‘내가 남 눈치 보고 살려고 공무원 하는 건 아니지 않느냐? 눈치를 보려면 국민의 눈치를 봐야지, 상사의 눈치를 볼 거 뭐 있나?’ 이렇게 생각한다면 승진을 좀 포기하면 되죠. 범법행위를 하지 않는 이상 자르지는 못하잖아요. 승진이 좀 늦어질 뿐이죠.
공무원 : 그렇습니다.
법륜스님 : 승진에 따른 월급 차이만 포기하면 돼요. 공무원들은 연수에 따라서 월급을 주니까 사실 큰 차이는 안 날 거예요. 그러니 그것만 질문자가 선택하면 돼요.
공무원 : 그래도 스님께서 공무원들에게 공무원 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법륜스님 : 저는 그런 건 잘 몰라요. 결혼생활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이나 공부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니에요. 인생은 일반론이 아니니까요.....(중략).... 여러분이 승진을 하고 싶다면 인사권이 있는 사람에게 잘 보여야겠죠. 윗사람한테 잘 보이는 걸 나쁘다고만 생각하면 안 돼요. 인사권을 가진 사람한테 잘 보여야 승진이 되잖아요. 그러나 ‘나는 윗사람한테 그렇게 비굴하게 살기 싫다’고 내 마음대로 하면서도, 승진도 되는 그런 건 없어요. 그건 욕심이에요. 그러니 하나를 포기해야 해요. 그러니 승진을 포기하고 그저 공무원 직분에 충실하면 윗사람 눈치를 너무 볼 필요가 없어요. 윗사람 성격이 조금 부당하다고 느끼면 ‘성질이 저렇구나.’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침에 보고하러 갔는데 성질을 내면 그냥 ‘아침에 마누라랑 싸웠나?’ 이렇게 생각하면 돼요. 그 사람 성격은 내가 고쳐줄 수 없으니까요. 그것이 개인적 성격이라면 그냥 수용하는 것이 제일 바람직합니다. 그러나 부당한 경우도 있죠. 예를 들어 윗사람이라고 사사로이 ‘커피를 끓여 와라’, ‘내 자동차에 기름을 넣어 와라’, 이렇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는 경우는 본래 우리가 맺은 공적 관계에서 어긋나잖아요. 회사든, 공무원 사회든, 어디에서든 사회 윤리에 어긋난다는 말이에요. 그러면 그것은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그게 법으로 부당하면 법원에 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공직윤리에 비춰봤을 때 부당하면 그 문제를 먼저 본인에게 ‘이것은 공직 윤리에 조금 어긋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거기에 대해서 불이익이 오지 않느냐? 당연히 불이익을 감수해야죠. 이 세상을 바꾸려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합니다. 나라를 독립시키려면 목숨을 걸어야 하고 민주화를 이루려면 감옥 갈 각오를 해야 하듯이 우리 사회를 혁신시키려면 감옥 가거나 죽을 정도는 아니지만 승진에서 누락되거나 약간 왕따를 당하는 정도의 불이익은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심지어 수행자라고 하는 승려 모임에서도 불교계의 비리나 부당한 것, 불법에 맞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 불이익을 감수해야 해요. 그걸 제기하고 불이익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문제를 제기해서 바꾸려면 그런 불이익을 당연히 감수해야 하는 거예요. 왕따 시키면 왕따를 받아야 하고 제외시키면 제외를 받아야 하고, 비난하면 비난을 받아야 합니다.........(이하 생략)
실제 공무원 사회에서 법륜스님의 말처럼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다. 윗사람에게 부당하다고 당당히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다음에 올 불이익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당한 인사를 당하든, 나쁜 상사를 만나 부당한 대우를 받든 나는 내게 주어진 일만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알아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언젠가 내 능력을 알아주고 그에 알맞은 보상을 해줄 것이라 믿었다.
그래서 처음 수사라는 업무를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전문가라는 소리를 듣고자 남보다 더 공부하고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열심히 했다. 남들이 ‘왜 승진 공부하지 않냐’고 할 때 나는 승진이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앞으로 공무원 사회는 직급이 높은 것보다 업무에서 능력이 있는 자가 더 존중받는 사회가 올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니었다.
순진하게도 직장이, 일이 전부라고 생각했다. 20년 동안 나는 그토록 많이 깨달을 수 있었던 기회를 놓치고 살았다. 앞으로는 그렇게 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두 번 다시는.
『꿈을 간직하고 있으면 반드시 실현할 때가 온다.』
- 괴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