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만남 : 운동과 독서
러닝머신 위에서 한참을 달린다. 처음에는 이 생각 저 생각 떠오른다. 숨이 가빠오고 땀이 온몸을 적신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고 오로지 달리는 데만 집중한다. 3킬로미터를 넘어선다. 마음속으로 ‘조금만 더 뛰어보자’ 하고 나 스스로에게 말한다. 5킬로미터를 넘어선다. 다리도 뻐근하고 숨이 턱 밑까지 차올라 온다. 하지만 아직 견딜 만하다. ‘더 뛰어보자.’ 7킬로미터를 넘어선다. 여기까지 왔는데 10킬로미터까지 가보자는 욕심이 생긴다. 그렇게 한 시간 10킬로미터를 달린다. 러닝머신을 멈추고 내려온다. 허리를 숙여 잠시 숨을 고르고, 물을 들이켠다. 온몸이 땀범벅이다. 샤워기를 틀고 떨어지는 물에 머리부터 적신다. 물이 온몸을 따라 흘러내리고 스트레스도 같이 내려간다. 기분이 좋아진다. 몸을 말리고 옷을 입고 샤워장을 나오는 순간 기분이 상쾌하다. 스트레스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한 번 10킬로미터를 넘어서고 나면 그다음부터 10킬로미터는 벽이 아니다. 이렇게 거의 날마다 운동을 하였다. 러닝머신이 싫을 때는 자전거(야외에서 타는 자전거가 아니라 헬스장에 고정된 자전거)를 탔다. 여기에 근력 운동을 곁들였다. 달리 특별한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다. 땀을 흘릴 때는 잡다한 생각이 머리에 파고들지 못한다. 즉 땀을 흘리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그리고 가끔 주말에 산에 올랐다. 전국에 이름이 알려진 산이 아니다.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작은 산이다. 천천히 시원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나무와 풀과 하늘을 보며 걷는다. 마음이 가라앉고 묵은 감정이 내려가는 느낌이 든다. 운동을 통해 이렇게 스트레스를 푼다.
나는 나에게 그토록 스트레스를 주었던 그 사람을 만나기 전에도 업무와 관련된 책들은 한 달에 한 권 정도는 읽었다. 피해자나 범죄자를 다루는 수사업무를 하다 보니 『설득의 심리학』같은 책이나 커뮤니케이션, 협상과 관련된 책들을 읽었다. 책 제목이 특이해서 읽었던 책도 있었다. 『왜 그녀는 다리를 꼬았을까』라는 책이다. 이 책은 사람의 몸짓을 보고 그 사람이 하는 생각을 추정하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팀장의 역할』도 팀장인 나에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이렇게 사람을 상대하는 방법과 내 자리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읽었다.
그러나 윗사람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책은 그런 책이 아니었다. 『미움받을 용기』같은 책들. 그러나 이러한 책들은 말 그대로 읽을 때뿐이었다. 나에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때 읽은 책이 『나는 왜 그에게 휘둘리는가』, 『처세의 신』, 『다고의 독심술』, 『함부로 말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법』 따위의 책들이다. 수십 권을 읽었는데 어떤 책을 읽었는지 다 기억나지도 않는다. 책 내용은 더더욱 기억나지 않는다.
문제는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이해가 가고 감정이 누그러질지 몰라도 잠시 뿐이었다. 방법은 하나였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것.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공무원은 다른 부서로 내 마음대로 옮길 수가 없다. 결국 정기 인사이동이 있을 때까지 참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그 1년이 그때는 10년 같은 시간이었다.
왜 나는 이런 책―자기계발서―을 읽고도 그때 이겨내지 못하고 시간만 가기를 기다린 걸까? 이제 와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계발서를 무시하는 사람도 있지만 난 도움이 된다고 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할 것이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자기계발서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실천이다. 그런데 난 책을 읽기만 했지 실천이 없었다.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 교수인 캐서린 러브데이는 『나는 뇌입니다』에서 스트레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스트레스 유발인자로부터 항상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능동적으로 그 육체적, 정신적 영향을 줄일 수 있는 방법들이 나와 있다. 그 방법이 어떤 사람에게는 가벼운 공원 산책 같은 간단한 일이 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요가나 명상, 조용히 목욕하기, 좋은 친구들과 어울리기, 웃음거리를 찾아 나서기, 좋아하는 음악 듣기 등이 될 수도 있다. 이런 일들 모두 스트레스의 신체 징후를 크게 줄여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대안이 될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은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스트레스 유발요인은 우리가 그것을 스트레스로 인식할 때만 스트레스 유발요인이 된다. 따라서 상황을 새로이 재구성해서 인식하는 것이 아주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제시할 간단하고 실용적인 해법은 투쟁-도피 반응에 격렬한 운동으로 대응하는 것이다.]
캐서린 러브데이 교수에 따르면, 나는 스스로 스트레스 푸는 법을 찾아냈다. 운동과 책을 읽음으로써 스트레스를 풀었다. 사람은 확실히 본능으로 살아남는 방법을 알고 있는 모양이다. 그때를 떠올려보면 스트레스를 주는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뭐라 말하고 행동하든 그 사람이 그저 안쓰럽다고 생각하기로 인식을 바꿈으로써 스트레스로 인식하지 않으면 되었다. 상황을 다시 구성하여 인식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