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나는 다른 도시로 발령을 받아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게 되었다. 흔히 말하는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만 할 수 있다는 주말부부가 되었다. 누가 이런 말을 만들어냈는지 몰라도 나는 틀린 말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처음 두세 달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저녁마다 내가 하고 싶은 거 다 할 수 있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두세 달이 지나자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는 것이 싫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 들어가 혼자 캔맥주를 마시며 텔레비전을 보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안 된다. 날마다 가족과 살다가 혼자 사는 것, 이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그래서 저녁마다 술을 마시고 들어간다. 그래야 잠이 잘 온다. 물론 혼자 지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난 아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낸다. 주말에 근무라도 걸리는 날에는 2주 동안 집에 가지 못한다. 거기에 주말에 사건이라도 터지면 또 못 간다. 3대에 걸쳐 덕을 쌓아야 이룰 수 있는 건 주말부부가 아니라 하루도 떨어지지 않고 부부가 함께 있을 수 있는 생활이다.
어쨌거나 가족과 떨어져 혼자 지내면서 책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어는 날 김교빈이 지은 『한국철학 에세이』를 읽게 되었다. 사실 이 책은 김교빈의 또 다른 책인 『동양철학 에세이』를 읽은 후 재밌어서 고른 책이었다. 대한민국 사람이면 거의 다 아는 원효, 지눌, 서경덕, 이언적, 이황, 이이(이율곡) 선생 등 우리나라 대표 학자들의 삶과 철학 따위를 간추려 설명해 놓은 책이다. 이 책에서 처음 나오는 게 바로 원효대사 이야기다. 다 아는 내용인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 이야기다. 다음은 원효 대사 내용 중 일부이다.
무덤 속에서 해골바가지에 든 물을 마시고 자고 일어났다. ‘어제 그렇게 달게 마셨던 물이 오늘은 구역질을 하게 하는 물이라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은 어제 달게 마실 때나 오늘 구역질할 때나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물을 어제는 달게 만들었고 오늘은 구역질 나게 만든 것일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참을 생각하던 끝에 그는 무릎을 치며 깨달았다. ‘그렇다. 어제와 오늘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
불교에서는 마음이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 깨끗하다고 본 것도 내 마음이며 더럽다고 본 것도 내 마음이다. 내 앞에 빵이 세 개 놓여 있을 때 “애걔, 겨우 세 개 남았어?”라고 말하든 “아이고, 아직도 세 개나 남았네”라고 하던 세 개 남은 빵은 달라질 것이 없다. 다만 그것을 보는 내 마음이 다를 뿐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뭔가로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중․고등학교 때 배운 내용 그대로다. 원효대사가 유학을 가다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크게 깨달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는 이것을 나이 마흔이 넘어 내 방식대로 깨달았다. 나도 참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는 이 짧은 구절이 내 가슴을 울리게 만들었다. 내 마음이 바라보는 대상을 사물이 아닌 사람으로 바꾸어 생각해보았다. 앞에서 말한 나에게 그토록 스트레스를 주었던 그 윗사람으로 돌아가 보았다.
‘그래, 그 사람은 어제도 그 사람이었고, 오늘도 그 사람이며, 내일도 그 사람일 것이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제 바라본 그 사람과 오늘 바라보는 그 사람에게서 어제는 괜찮았는데 왜 오늘은 그토록 스트레스를 받을까’ 하고 나 자신에게 물었다. 바로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 하는 생각을 하자 갑자기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우리는 일터에서 생활하면서 일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사소한 말 한마디에 얼굴을 붉히고, 심할 경우 서로 싸우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에 ‘달라진 것은 내 마음일 뿐이다’는 짧은 문장을 집어넣자 모든 것이 풀렸다. 내가 내 마음만 바꾸면 되었다.
어떤 윗사람은 아랫사람이 결재를 왔을 때 문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거나, 다른 일로 마음이 좋지 않은 상태일 때 화부터 내는 경우가 있다. 이딴 걸 결과물이라고 가져왔냐고 하면서 화를 낸다. 그런 사람이 어떤 때는 똑같은 잘못을 해도 성질부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왜 그럴까? 그 사람 마음이 달라진 것이다. 그래서 그런 윗사람을 보면 난 속으로 생각한다. ‘저 사람 마음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난 어제나 오늘이나 같은 사람일 뿐인데’ 하며 스스로 추스른다.
이러한 생각은 내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내 아이들이 똑같은 잘못을 해도 어떤 때는 그냥 말 한마디로 넘어갔지만, 어떤 때는 아이들에게 화를 내기도 했다. 그때를 떠올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마음, 내 감정이 좋았을 때는 아이들 잘못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아이들에게 화를 낼 때는 내가 뭔가로 감정이 상했을 때였다. 아이들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이 바뀐 것이었다. 내 아내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렇다면 나는 20년이 넘도록 왜 이처럼 간단한 이치를 몰랐던 걸까. 왜 날마다 그토록 일에 파묻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았던 걸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대답을 찾았다.
바로 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