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사라졌다

이제는 다시 뭔가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by leeks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날마다 꾸던 꿈이 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때는 새벽까지 공부를 해도 내가 나중에 되고 싶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힘들지만 참고 견딜 수 있었다. 건축가가 되는 꿈을 꿀 때는 내가 높이 올린 건물을 상상하기만 해도 즐거웠다. 하늘 높이 솟은 내가 설계한 건물을 머릿속으로 그릴 때면 그냥 행복했다. 미 항공우주국에 들어가 영화에서나 보던 큰 화면 앞에서 컴퓨터를 만지며 우주선을 만드는 내 모습을 그려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고 얼굴에 웃음이 피었다. 경찰이 돼서 나쁜 놈들을 잡는 과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뿌듯했다. 내가 세상에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나 자신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렇듯 꿈은 사람을 항상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꿈이란 놈은 아무리 힘든 일이 닥쳐도 견딜 수 있게 한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매달 똑같은 월급을 받으며 날마다 되풀이되는 일을 한다. 집에서는 아침, 저녁 아내와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날마다, 달마다 똑같은 삶을 살다 보니 어느 순간 꿈이 사라져 버렸다.

만약 내가 간절히 원하는 꿈이 있고, 그것을 좇아 살아왔다면 나는 인사이동이나 윗사람 때문에 그처럼 스트레스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 당신은 떠들어라. 난 내가 좇는 가치와 꿈이 있으니까. 당신은 그냥 그렇게 살아라!’ 하며 가벼이 넘어갔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한 때, 어느 한 사건에 삶의 초점을 맞추다 보니 거기에 문제의 뿌리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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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고 있는 사람은 산 모양을 모르지만, 저 멀리서 산을 바라보는 사람은 산 모양을 안다. 나는 산 모양도 모르는 채 산을 오르고 있었다. 가끔은 가던 길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하늘과 땅과 내 주위를 살펴야 한다.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나는 오랜 세월 나무만 보았고, 어디를 오르고 있는지도 모른 채 발 밑만 보며 길을 걸어왔다. 그것도 숨 가쁘게. 얼마나 올라왔는지, 얼마나 남아 있는지도 모른 채.


바다에서 배를 타고 나가본 경험이 있다. 배 바로 아래를 보면 거친 물살에 현기증이 난다. 그러나 몇 백 미터 멀리, 몇 킬로미터 더 멀리, 몇십 킬로미터 더 멀리 보면 바다는 그냥 움직임이 없는 듯 보인다. 바로 그 원리였다. 나는 배 밑만 보며 살았다. 5년, 10년 뒤 아니면 퇴직 뒤 나의 모습, 저 멀리 있는 바다를 보지 못했다.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 시간이 무려 20년이나 되었다.


남은 인생도 이렇게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다. 온갖 생각들이 머리에 파고들었다. 무엇부터 정리해야 할지 몰랐다. 나 자신,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사회에서 알게 된 사람들, 내 주위에 있는 물건 같은 모든 것들에 대한 생각이 마구 피어올랐다. 뭔가 정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뭔가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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