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정해주는, 나도 잘 모르는 프로그램

내 스스로 내 인생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by leeks

우리는 누군가 짜 놓은 프로그램에 맞추어 살아간다. 태어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유치원을 가고,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다녀야 한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대학도 나와야 한다. 할 수 있는 한이 아니라 ‘반드시’가 맞겠다. 더 한다면 대학원도 나와야 한다.

이것이 사회에 나오기까지 대부분 사람에게 제공된 프로그램이다. 바로 ‘교육 프로그램’이다. 모두 이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해야 한다. 예외로 이런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긴 하다. 그러한 사람들은 ‘특별교육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사용한다.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우러러보는 자리에 있다. 아주 부자여서 학교에 가지 않고 개인 교사를 집으로 불러 아이들을 교육한다. 매우 일부 사람에게만 제공되는 값비싼 프로그램이다. 감히 우리는 이 프로그램을 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교육 프로그램은 나이에 따라 정해진 세부 프로그램들로 이루어진다. 그 세부 프로그램은 모두 한 가지 핵심 공통 기준을 가지고 있다. ‘다른 모든 학생과 똑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수업을 받고 똑같은 시험을 치르고 똑같은 과외활동을 하도록 할 것. 다만 다른 학생보다 더 시험 점수가 잘 나오는 학생은 더 좋은 대학에 가도록 조치할 것.’ 이렇게 말이다.


그리고 사회에 나오면 ‘사회생활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실행해야 한다. 매년 업그레이드가 되긴 한다. 그러나 그 업그레이드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 주인이 업그레이드한다. 그러니 그 프로그램이 나에게 맞을 리가 없다. 더구나 우리는 그 프로그램 주인이 누군지 결코 알 수 없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 보자. 월요일 아침 6시. 제일 짜증 나는 아침이다. 일어날 때 마음속으로, 가끔은 아내에게 들리도록 말할 때도 있다. “아 눈뜨기 싫은 월요일 아침이네.” “또 월요일이다.” “또 어떻게 금요일까지 버티지?”

힘든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자동반사로 휴대전화부터 본다. 혹시 자는 사이 문자메시지 같은 게 와 있는지 확인한다. 다행히 급한 건 없다. 하긴 급했으면 새벽이라도 전화를 했을 테지만. 그렇게 일어나 침대에 걸터앉아 멍하게 1-2분 정도 있는다. 그리고 긴 한숨을 내쉬고 화장실로 간다. 거울을 한 번 들여다보고 얼굴 상태를 살핀다. 하루하루 세상에 찌들어가고 늙어 가는 얼굴을 보며 치약을 짜고 양치를 한다. 면도크림을 턱 부위에 바르고 면도를 한다.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한다. 몸과 머리를 말리고 속옷을 입고 옷장을 연다. 월요일 아침, 확대 회의―팀장, 계장급 이상 전체 회의―가 있으니 정장을 입는다. 식탁에 앉아 휴대전화를 한 번 본다. 아내도 출근하는 워킹맘인데 나 보다 한 시간이나 먼저 일어나 힘들게 차려준 밥을 먹는다. 어떤 사람은 아침밥도 사무실에서 먹는다―이런 사람은 더 일찍 출근할 것이다―. 현관문을 열고 나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다시 한번 휴대전화를 본다. 주차장으로 나와 차에 시동을 건다. 라디오를 켜고 아침 뉴스를 들으며 2-30분 자동차를 몰고 사무실에 도착한다.

지문인식기에 출근 시간을 확인하는 지문을 찍는다.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켠다. 언론에 특별히 내 업무와 관련된 기사가 있는지 확인하고, 회의 서류를 검토한다. 제일 높은 분이 맡아하는 회의가 끝나면 또다시 부서장이 회의를 한다. 다시 팀별 회의를 한다. 솔직히 회의가 아니라 저 윗사람 말을 전달하고 아랫사람은 노트에 받아 적는 시간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다 끝나고 내 책상에 앉아 시계를 보니 벌써 10시 반―어떨 때는 11시가 넘는 경우도 있다―이다. 중요한 일부터 처리한다. 사실 중요한 일인지는 잘 따져봐야 한다. 점심시간이 다가온다. 무엇을 먹을지 생각한다. 구내식당을 갈까, 나가서 먹을까. 나가서 먹으면 무얼 먹지? 짜장면? 짬뽕? 육개장? 설렁탕? 된장찌개? 돈가스? 이런 결정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 난 결정장애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밥 먹고 들어와 잠시 휴식을 취한다. 오후에 이것저것 하다 보면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헐! 아직도 화, 수, 목, 금 나흘이나 남았네” 하고 속으로 투덜댄다.

지난주에 잡아놓은 저녁 약속에 가야 한다. 또 술이다. 반복되는 월, 화, 수, 목, 금. 저녁에 차를 몰고 퇴근할 때면 항상 생각한다. ‘오늘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한 게 뭐지?’ 금요일까지 이 생활을 되풀이한다. 드디어 금요일 퇴근시간이다. 주말이 왔다. 근데 더 바쁘다. 아이들 교복을 세탁소에 맡기고 아내 부탁으로 재활용 쓰레기도 버린다. 가끔은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민다. 아내와 같이 장을 보러 가기도 한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주말에 가야 할 곳도 많아진다. 친척이나 지인 결혼식 따위의 각종 행사들이 늘어만 간다.

주말에 나만의 시간이 없다. 토요일 저녁 아내와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소주 한 잔 기울인다. 그리고 예능프로그램이나 드라마를 보다 잠든다. 일요일 오전 모처럼 늦잠을 자고 일어나 빈둥빈둥 댄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또 예능프로그램을 보다 잠자리에 든다. ‘젠장. 벌써 주말 다 갔네. 내일 또 월요일이다. 왜 이리 주말은 시간이 빨리 가는지.’


우리는 이처럼 교육이든 사회생활이든 정해진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그것을 프로그램이라 부르든, 사회 관습이라 부르든, 시나리오라 부르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누군가가 정해 놓은 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게 핵심이다.

<토요일 4시간>(신인철 지음, 리더스북)이란 책이 있다. ‘<무한도전>으로 시작해 <1박2일>로 끝나는 허무한 주말’이란 문구가 확 와 닿아 무작정 사서 읽은 적이 있다. 내 삶이 딱 그랬다.

지은이는 이 책에서 주말 무조건 나만을 위한 4시간을 확보하고 그 시간을 자기계발을 위한 시간으로 투자하라고 도움말을 준다.

생각해 보자. 토요일 4시간, 일요일 4시간을 합하면 8시간. 1년이면 400시간 정도다. 10년이면 4,000시간이다. 1만 시간에는 못 미친다 하더라도 진짜 10년 동안 한 분야에 4,000시간을 투자한다면 어떻게 될까?



『쳇바퀴 돌리기 경주(rat race 생존 경쟁)에서의 핵심은,
이기나 지나 변함없이 당신이 쥐라는 사실이다.』
– 릴리 톰린(코미디언)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매트릭스 세상과 내가 사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