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하는 쪽이 있으면 퇴보하는 쪽도 있다
사회는 절대 진보하지 않는다. 그것은 한쪽에서 전진하는 만큼 빠르게 다른 쪽에서 후퇴한다. 그것은 계속된 변화를 겪는다. 그것은 때로 야만적이고, 때로 문명적이고, 때로 기독교적이고, 때로 번영하고, 때로 과학적이다. 그러나 이 변화는 개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어느 것이 주어지면 무언가가 상실되기 때문이다. 사회는 새로운 기술을 획득하고 오랜 본능을 상실한다.
문명인은 마차를 만들었지만, 그의 발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는 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으나 근육의 지지력이 크게 부족하다. 그는 제네바에서 만들어진 훌륭한 시계를 갖고 있지만, 태양으로 시간을 알아보는 기술을 잃었다. 수첩은 기억력을 해치고, 서고의 책들은 이해력에 과중한 짐을 주며, 보험회사는 사고의 수를 증가시키고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립>에 나오는 문장이다. 사전에서 ‘진보’는 ‘정도나 수준이 나아지거나 높아짐’으로 정의하고 있다. 나는 이 문장에 아주 공감한다.
어느 한 가지만을 놓고 직선으로 본다면 분명 진보하는 게 맞다. 그러나 다른 쪽에서 보면 퇴보하는 것도 맞다. 먼 거리를 쉽고 빠르게 가기 위해 자전거가 발명되면서 걷는 게 줄어들었고, 오토바이, 자동차가 나타나면서 걷는 게 더더욱 줄어들었다. 그래서 다리에 근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동수단 수준이 높아진 것은 틀림없는 진보가 맞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리 근력이 떨어진 것은 퇴보다. 사람들은 약해진 근력을 메우기 위해 운동한다. 퇴보한 것을 메우기 위해 별도로 시간을 또 들이는 셈이다. 전체로 보면 한 걸음 진전과 한 걸음 후퇴가 같이 있는 셈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지도를 보고, 도로에 세워진 알림판을 보며 길을 찾아갔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이란 것이 생겨나면서 이제는 지도나 알림판이 필요 없어졌다. 가고자 하는 곳 바로 앞까지 안내해주니까. 그렇다 보니 지도를 보는 능력이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내가 어릴 적에는 전화번호를 거의 다 외우고 다녔다. 다 외우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수첩에 적었다. 그런데 지금은 휴대전화에 저장되어 있어서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한다. 나의 집이나 가족 전화번호도 잘 외우지 못한다. 에머슨이 말한 대로 기억력이 떨어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 이런 것들은 엄청나게 많다. 땅을 파고 시멘트로 높은 건물을 올리고 공장을 지으면 지을수록 환경은 오염된다. 즉, 환경은 퇴보하는 것이다.
열역학 제1법칙과 제2법칙이란 게 있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해서 증가한다(제2법칙)는 법칙이다.
제1법칙은 에너지 보존법칙이라고 한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우주가 생길 때부터 정해져 있었고 우주의 종말이 올 때까지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에너지는 결코 창조되거나 파괴될 수 없으며, 한 가지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뿐이라는 것이다.
제2법칙은 에너지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옮겨갈 때마다 ‘일할 수 있는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는 더는 일로 전환될 수 없는 에너지의 양을 측정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엔트로피>를 쓴 제레미 리프킨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술을 싸고 있는 신비로운 껍데기를 다 벗겨내고 나면 남은 것은 벌거벗은 변환자뿐이다. 인류가 그 재능을 동원하여 생각해 낸 모든 기술은 자연의 창고에서 꺼낸 에너지의 형태를 바꾸는 변환자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기술은 주변 환경에 더 큰 무질서를 창조하는 대가로 일시적인 ‘질서의 섬’을 만들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 진실이다.
제레미 리프킨도 에머슨과 비슷한 말을 하는 거 같다. 결국, 우리가 만들어 내는 진보는 한쪽에서는 무질서를 만드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심한 비유인지는 모르지만, 차가 없으면 주유소에서 줄 서기, 교통혼잡, 차량 도난, 기름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렇다고 문명이 발전하는 것을 그만두자는 얘기는 아니다. 언제나 반대쪽을 생각하자는 뜻이다.
우리 사회는 직선으로 된 구조가 아니다. 먹이사슬처럼 얽히고설켜 있다. 그래서 진보한다고, 문명이 발전한다고, 새로운 기술이 계속 나온다고 좋아해서는 안 될 거라 생각한다. 톨스토이는 ‘큰 부는 죄’라고 말했다. 한 사람의 부자를 위해 수백 명의 가난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언제나 그 반대쪽을 생각해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발을 딛고 있는 지구의 눈으로 보면 공룡 시대가 지금보다 더 낫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지구를 파헤치고 상처를 입히는 일이 아주 많이 일어난다. 그러니 지구 처지에서 보면 인간보다 공룡이 더 나을 수 있다는 말이다.
에머슨의 ‘사회는 절대 진보하지 않는다’는 문장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