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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Jan 18. 2019

책에서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고민을 해결한다

책은 또 하나의 멘토

  어찌 보면 월급쟁이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일 것이다. 바로 퇴직을 생각하게 되었다. 마흔 가운데를 막 넘어서는 나에게 “뭐 벌써 퇴직을 생각하냐?”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넋 놓고 몇 년을 또 지내다 보면 늦는다. 우리 주위 동료들 얼굴을 보자. 얼굴에서 해맑은 웃음을 본 적 있는가? 아니 자주 보는가? 그리고 웃는 얼굴을 보더라도 그 웃음이 왠지 씁쓸하다고 느낀 적은 없는가? 나는 가끔 동네 주민센터에 일이 있어 갈 때면 그곳에 근무하는 공무원들 얼굴에서 환하게 웃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들은 그리고 내 동료들은 지금 자기 자리에서 무슨 생각으로 앉아 있는 것일까? 그들도 나처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더욱 나를 두렵게 했던 것은 한때 같이 근무했던 후배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었다. 1년 내내 나와 같이 근무했고 아침부터 퇴근할 때까지 수시로 보던 얼굴이었다. 남편도 있고 아이도 두 명 있다. 그런 그 친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무엇이 그토록 두려웠기에. 무엇이 그토록 인생을 의미 없는 것으로 만들었기에. 여기에 같이 일하는 친구, 동료들이 뇌출혈 따위로 쓰러지는 것을 보면서 삶에 대한 의미가 나에겐 새롭게 다가왔고 삶이란 것이 두려워만 갔다. 

    

  앞서 말한 모든 것들(지난 삶에 대한 후회, 자식이 살아나가야 할 인생 걱정, 아내 걱정, 미래에 대한 걱정, 주변 동료들의 모습, 동료의 죽음)이 얽히고설키면서 ‘이대로 사는 삶이 좋은가’ ‘내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이 진짜 맞는 건가’ ‘내가 젊어서 생각했던 인생이 이게 맞나’ ‘진짜 내 인생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퇴직 뒤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관 뚜껑 열고 들어갈 때 잘 산 삶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물음들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올바른 물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러한 물음에 대한 답을 찾고자 책을 읽게 되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였고 그것을 해결한 경험자들을 모두 만나 도움말을 들을 수는 없다. 어쩌면 그 사람들을 찾아가 직접 겪은 경험과 해결방법을 듣는다고 하더라도 나와 꼭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법은 괜한 시간 낭비일 뿐이다. 이러한 방법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10명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할 시간이면 수십 권의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100권의 책을 통해 100명의 삶을 들여다본 뒤 그들이 찾아낸 해결방법을 나에게 맞게 고쳐 적용하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에서, 그리고 그것이 남은 내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책을 읽게 되었다. 

    

  나는 내 진짜 인생을 살기 위해 책을 읽고 있다. 진짜 인생이라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은 거짓 인생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겠지만 그런 뜻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내 인생이면 나의 가치관, 내 생각으로 인생을 살아야 했는데 어릴 때는 부모님 생각으로, 일터에 들어와서는 윗사람 생각에 맞추거나 조직에서 요구하는 방식에 맞춰 대체로 살아왔다는 것을 반성한다는 뜻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생각대로만 살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 생각과 내 생각의 비율을 조절할 수는 있을 것이라 믿는다. 지금까지 70대 30으로 살아왔다면 앞으로는 거꾸로 30대 70으로 살아보자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책 속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아주 단순한 생각이 나를 책으로 이끌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정약용 지음, 박석무 옮김, 창비)를 보면 정약용 선생이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 가운데 독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손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책을 읽는 것 한 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러운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드시 벼슬하는 집안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듣고 본 바도 있는 데다 중간에 재난을 만난 너희들 같은 젊은이들만이 진정한 독서를 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다. 그들이 책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뜻도 의미도 모르면서 그냥 책만 읽는다고 해서 독서를 한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삶에 대한 고민’이 나에게는 바로 정약용 선생이 말한 재난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까지 아무 문제없이 남들이 만들어 놓은 안전한 길을 따라 그것이 전부인 양 살아왔다. 어느 순간 그 길이 내가 갈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다 말고 길 한복판에 멈춰 섰다. 그 멈춰 선 모습이 바로 나에게 재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전한 길이란 할 수 있는 한 좋은 대학을 나오고, 할 수 있는 한 좋은 직장에 들어가 될 수 있는 대로 60세까지 버티다 은퇴하여 남은 삶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라는 지침이다. 멈춰 선 내가 다시 어디로 움직일지 그 방향을 정하기 위해 난 책을 집어 든다.

     

  이이(이율곡) 선생이 지은 『격몽요결』(이율곡 지음, 이민수 옮김, 을유문화사)의 ‘독서장’ 편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배우는 사람은 항상 이런 마음을 가지고 다른 사물이 빈틈을 타고 침입해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반드시 이치를 궁리하고 착한 것을 밝힌 뒤에라야 자기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가 뚜렷하게 앞에 있는 것 같아서 진보해 나갈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도에 들어가려면 먼저 이치를 궁리해야 하고, 이 이치를 궁리하려면 먼저 글을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성현들의 마음 쓴 자취와 착한 일을 본받는 것과 악한 일을 경계한 것들이 모두 이 글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 두 학자의 가르침 말고도 글을 읽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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