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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ks Feb 13. 2019

인생의 모든 부분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전체는 부분들이 한데 합쳐진 것이다

  인생의 모든 부분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신의 주사위에는 한쪽에 납이 박혀 있어서 언제나 같은 결과가 나온다. 세상은 구구단이나 방정식처럼 우리가 어떤 숫자를 넣든 결국은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정확한 값을 돌려준다.
  소리 없이 그러나 확실하게 어떤 비밀이든 밝혀지고, 어떤 죄든 처벌되며, 어떤 덕이든 보상받고, 어떤 잘못이든 바로잡힌다. 이것이 우주의 필연 법칙이고 우주가 살아 있다는 증거이다.

     

  이 문장은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기 신뢰의 힘』에 나오는 글이다. 사필귀정, 인과응보란 말이 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속담도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법이다.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한 사람은 반드시 피눈물을 흘리는 법이다. 이렇게 인생은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나와 언젠가 흙으로 돌아간다. 삶 뒤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삶만 생각하고 살아간다. 삶의 끝에 서 있는 사람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대부분 삶만 생각하고 산 인생을 후회하는 글들이 많다.

  인생은 결국 삶과 죽음이 합쳐진 것이다. 그게 완벽한 인생이다. 하지만, 왜 우리는 삶만 생각하고 죽음은 거의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걸까. 난 아직 이 답을 찾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돈, 명예, 권력을 갖기 위해 치열하게 삶을 산다. 이것들을 모두 갖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혹 모두 가졌다 하더라도 죽을 때 가져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죽어서 입는다는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한다.     

  돈을 더 많이 갖기 위해 덜 가진 사람의 돈을 빼앗고, 권력을 갖기 위해 경쟁자들의 어깨를 밟고 올라선다. 백성이 있어야 임금이 있듯이, 아랫사람이 있어야 윗사람도 있는 법이다. 부모가 있으니 자식이 있고, 자식이 있으니 부모가 있듯이. 인생은 모두 이렇게 상대가 있는데 그걸 모른다. 아니 아는데 무시하고 사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전체는 부분들이 모여야 하는 법이다. 개인이 모여 가정을 이루고, 가정이 모여 지역사회가 되고, 지역사회가 모여 더 큰 사회가 된다. 그 사회가 모여 국가가 되기도 한다. 즉, 부분들이 모여 완전한 하나가 되는 법이다. 근데 왜 그 부분들을 무시하며 살까. ‘너’가 있으니 ‘내’가 있는데 말이다.  

    

  나는 마흔 가운데를 넘어서고 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성공이 아닌 성장을 위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동안 확실하지도 않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수많은 ‘오늘’을 희생했다. 이 나이가 되어 보니까 그렇게 희생한 하루하루가 더없이 소중했는데 말이다. 앞만 보고 달려온 삶을 후회하며 반성했다. 아내와 함께 해야 했을 시간, 자식들과 함께 해야 했을 시간을 희생했다. 그 시간은 다시는 오지 않는데. 그래서 불투명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오늘’을 잘 살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면 언젠가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그 사람들과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부분일 뿐이니까. 시계를 이루고 있는 여러 톱니 가운데 하나가 고장 나면 시계가 멈춰버린다. 그렇듯 내가 남에게 해를 끼치면 반드시 그 해는 나에게 다시 올 거라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선한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내 주위 사람에게 선한 영향을 미친다면 그 선한 영향이 언젠가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리라 믿기 때문이다. 

  부분들이 모여 전체를 이루므로, 그 부분들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사는 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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